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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습을 드러낸 유해. 희생자의 어금니가 드러났다.
 모습을 드러낸 유해. 희생자의 어금니가 드러났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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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뼈로 추정되는 희생자 유해
 머리뼈로 추정되는 희생자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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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령들의 체백(體魄, 죽은 지 오래된 유해)이 묻혀 있는 앞에 감히 고하나이다. 여기 정의롭고 양심 있는 시민사회 회원들이 영령들의 육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정부를 대신해 나섰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쪼개지고 부서진 유해일망정 저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소서"

김종현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이 23일 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고유문을 통해 밝힌 소망이다. 그는 고유문을 낭독하다 이 대목에서 흐느꼈다.   

고유제에 이어 굴착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해매장 추정지를 헤집었다. 조심스럽게 겉흙을 걷어냈다. 땅속 상황을 살펴 발굴대상지를 확정하기 위해 일부 면적을 정해 파내려갔다.

약 1미터 정도를 파내려 갈 때였다. 공동조사단과 유가족들이 웅성였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유골이 아니었다. 콘크리트 덩어리, 큰 나무 둥치, 플라스틱... 여러 종류의 건축폐기물이다. 한 움큼 흙을 집어 코를 대자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오염된 흙을 매립한 것으로 보인다. 3미터 가까이 파내려 가는 동안 폐기물은 늘어났다. 주변 증언으로 볼 때 약 20년 전 매장 추정지의 땅을 정비하면서 바닥에 폐기물을 채운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층 유해 훼손도 심한 것으로 보였다. 탄식이 쏟아졌다.

"유해 매장지에 어떻게 폐기물을 매립할 수 있나?"

유해 매장 추정지... 파도 파도 건축폐기물

 집단희생자 매장지 위에 매립된 산업 폐기물
 집단희생자 매장지 위에 매립된 산업 폐기물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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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땅을 파 보았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두시간여 만에 작업이 중단됐다. 발굴기간인 일주일동안 매립된 흙과 폐기물을 처리하면서 유해를 발굴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박선주 발굴단장(68,충북대 명예교수)이 매립이 덜한 산 쪽으로 4-5미터 발굴대상지를 옮기도록 지시했다. 박 단장은 지난 2000년 육군유해발굴사업의 책임조사원으로 참여해 국군유해발굴을 진두지휘해왔다. 지난 2007년부터는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단장을 맡아 부인 박데미씨와 함께 전국 민간인집단희생 유해발굴사업을 도맡았다. 이날 작업에도 부인 박씨가 동행했다.

박 단장은 대학을 정년퇴임(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체질인류학)한 이후에도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경남 진주시 명석면 유해발굴 사업에 참여했다. 

다시 굴착기가 움직였다. 약 10여 분이 지났을까? 현장을 지켜보던 발굴팀 노용석 교수(한양대)와 송장건 교수(영남대)가 손짓을 통해 급히 굴착기를 멈추게 했다. 노용석 팀장은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소속으로 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과정을 총괄한 바 있다. 송 교수는 영남대 학생들과 함께 발굴에 참여했다. 

64년 만에 드러난 육신의 흔적... 부서진 머리 뼈, 다리뼈. 치아

 대전 산내골령골 유해발굴 현장
 대전 산내골령골 유해발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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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발굴 첫날인 23일 드러난 희생자 유해 일부
 유해발굴 첫날인 23일 드러난 희생자 유해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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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전 검은 흙이 드러났다. 그 사이로 삭아 부서진 유해가 박혀 있다. 이때부터 발굴팀이 투여됐다. 유해발굴 자원봉사를 자처한 시민들과 영남대 학생들이 두개조로 나눠 호미를 들었다. 호미질이 계속되자 유해의 윤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부서진 머리뼈에 이어 다리뼈 일부가 보였다. 네 개의 어금니에도 햇빛이 스며들었다. 65년 만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조심스레 호미질을 하며 유해를 발굴하고 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조심스레 호미질을 하며 유해를 발굴하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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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던 일부 유가족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박 단장은 "발굴을 좀 더 해 봐야 알겠지만 희생자들이 묻힌 구덩이 일부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땅 속 약 1.2미터에서는 다리뼈의 일부가 보였다. 구덩이 깊이가 1.5미터 가량임을 가늠하게 했다.

발굴 둘째 날인 24일에도 20여 명이 작업에 참여한다. 한편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대책위원회'는 23일 오전 10시 대전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 13-1번지)에서 개토제를 시작으로 내달 1일까지 7일 간 일정으로 유해발굴을 시작했다(관련기사: "골짜기에서 살해된 아버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유해발굴을 벌이는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재소자를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28~30, 1400명, 2차 : 7.3~5, 1800명, 3차 : 7.6~7.17,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희생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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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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