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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언제부턴가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유일하게 위로가 되곤 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책을 펼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누군가를 만나 말을 나누어도 마음은 공연히 헛헛해지곤 했다. 그럴 때 늘 가까이 친구처럼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만큼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현재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글쎄, 벽처럼 굳건히 버티고 서서 밀쳐낼 수도, 밀려날 수도 없는 세상과 힘겨루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진이 다 빠지고 마는데, 어떻게 매 순간 '직시'할 수 있을까!

현실의 긴장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는 이완의 쉼표가 내겐 드라마였던 모양이다. 사람과의 부딪힘을 직접 겪지 않아도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사연을 말하고, 나는 그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우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누는 연애를 했다.

드라마 대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언제나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내 존재의 이유인 것 마냥 곱씹었으니까. 그런데 왜 일까? 아스라이 멀게 그리던 꿈을 내 옆 자리에 옮겨 오려고 할 때면 마음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꿈은 현실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먼발치에서 그리며 살아갈 파랑새를 잃어버리고 마니까. 그렇게 제대로 시도해 보지도 못한 채 나는 드라마 대본을 쓰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어쩌면 아직도 온전히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쁜 사람은 욕할지언정 내 마음 안에서 키워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여전히 도덕적 당위에 사로잡혀 있었다. 반드시 인간은 어떠해야 한다는 헛된 관념이 뇌의 한 켠에 똬리를 틀고 제집마냥 안착해 있었다.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헛된 관념으로 도덕적인 돌팔매를 끝없이 던지는 '정직하고 고결한 우리'가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물론 '우리'의 욕망과 모순을 꿰뚫어 보는, 혹은 그걸 이용하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2015년 2월 16일, 처음 꽃을 피운 시간

불효 소송이라니! 저런 게 실제로 존재하나 싶어 흥미를 갖게 된 KBS2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의 마지막 회를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한 편의 드라마가 주는 울림이 현실의 밋밋한 존재인 나에게 너무나 크게 와 닿았던 것이다. 내 안의 무언가를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나를 사로잡은 이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쓸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그렇게 쓴 글은 하나의 기사가 되어 <오마이스타>에 실렸다. 처음으로 메인 하단에 기사와 이름을 올린 날이었다. 마음이 벅차올랐다. 내가 쓴 기사의 가치를 인정받은 듯했고, 내 기사를 읽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함께 드라마를 보고, 공감하고, 마음을 나눌 통로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나는 어쩌면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다채로움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말이다.

드라마 장면과 네이버 뉴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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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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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tvN드라마 <하트투하트>와 MBC드라마 <킬미, 힐미>에 대한 기사를 썼다. 상처받은 이들이 치유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킬미, 힐미> 기사는 메인 중앙에 올라 내가 쓴 기사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얻었다.

'다음'이나 '네이버'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가 검색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뜻밖에 공감 댓글들을 발견하고 기사를 쓰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 가졌을 이야기들을 풀어내 공감의 계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었던 내가, '시민기자'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얻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한 뒤엔 그 경험을 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내게도 글로써 빚어낸 소통의 경험은 그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를 가름한다.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엮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슷하지만, 다르게! 다르게 생긴 우리가 저마다의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해 가듯, 그렇게 어우러져서 한 세상의 다채로운 꽃을 피우듯이.

덧붙이는 글 | '거짓말 같은 이야기' 응모글입니다.



태그:#드라마 , #공감 댓글, # 오마이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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