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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시장이 생긴 후 숲속 마을 동물가족과 마당쇠 동네 가족, 즉 아래 마을 가족들은 5일마다 이곳에 모여 꿀과 피자를 교환했어. 두 마을 가족들의 생활은 이전에 비해 더 풍요로웠지.

그러던 어느 날, 숲속 깊은 데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어.

'음... 제사가 시작된 모양이군.'

아빠 다람쥐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물 컵을 입으로 가져갔어. 아빠 다람쥐는 입이 마르는지 연거푸 물 컵을 비우고 있었어.

숲속 마을 동물 가족들에게는 오랜 풍습이 하나 있어. 해마다 6월이면 숲을 다스리는 산신령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야. 동물 가족들은 모두 산신령님이 돌봐주신 덕분에 지난 1년간 건강하게 지내면서 꿀을 딸 수 있었다고 믿거든.

7일간의 제사기간 동안 동물 가족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 마음을 맑게 해서 깨끗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지. 산신령님은 깨끗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만 받으시기 때문이야.

제사에는 모든 동물 가족이 빠짐없이 참석해. 산신령님을 섬기는 일이 동물 가족들에겐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이거든. 산신령님을 섬기는 일에 소홀하면 다른 가족들로부터 비웃음과 차별을 받아. 그런데도 아빠 다람쥐는 이번 제사에 가지 않을 작정이야.

아빠 다람쥐는 언제부터인가 산신령님이 정말 계시는가에 의문을 품어왔어.

'정말로 산신령님이 계신다면 동물 가족들의 삶이 이렇게 힘들까? 우리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꿀을 따야 하잖아. 추운 날도, 더운 날도, 피곤한 날도, 아픈 날도, 쉬지 않고 꿀을 따야 하잖아.'

아빠 다람쥐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어.

'언젠가 심한 독감에 걸려 집에 누워 있던 아빠 사슴이 빗물로 허기를 채우는 식구들을 보다 못해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꿀을 따러 나섰던 일을 신령님은 알고 계실까?'
'그날 아빠 사슴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뿔이 다 부러진 일을 산신령님은 알고 계실까?'
'그래서 아빠 사슴이 성인 남자의 상징이자 가장의 권위인 뿔을 잃고 '숲속 마을 운영위원회'에서 쫓겨나고 집안에서도 존중받지 못하게 된 것을 알고 계실까?'

그때 몸을 많이 다친 아빠 사슴이 한 달 넘게 집안에 누워만 있는 것을 보면서 아빠 다람쥐는 산신령님은 없다는 생각에 점점 확신을 가지게 됐어. 산신령님이 정말 계신다면 불쌍한 사슴가족이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말야. 아빠가 일을 하지 못하는 탓에 엄마 사슴이 막내 사슴을 등에 업고 꿀을 따러 다녔거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불행한 일이 인자하신 산신령님이 다스리는 숲속 마을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그래서 마침내 아빠 다람쥐는 산신령님은 없다고 결론 내리게 되었어. 그래서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았어.

우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 그건 지금까지 아빠의 삶이 틀렸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니까. 그건 아빠가 지금까지 가정을 잘 못 이끌어왔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니까. 아빠는 지금까지 자존심 하나로 살아왔으니까.

또한 용기가 나지 않았어. 지금껏 산신령님이 우리 가족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고 안심시켜 왔는데,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산신령님이 사시는 산꼭대기 위의 구름 나라로 우리를 데려가신다고 말할 때는 감정에 복받쳐 눈물까지 흘렸는데, 이제 와서 이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앞으로 아빠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로 받아들일 테니까 말야.

게다가 두렵기까지 했어. 산신령님이 없다고 말하면 가장인 나는 '숲속 마을 운영위원회'에서 영원히 쫓겨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산비탈 아래 돌밭에서만 꿀을 따야하므로 가족의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도 사슴 네 아이들처럼 학교도 못가고 숲으로 꿀을 따러 가야할 것이니까.

아빠 다람쥐는 어떻게든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애를 썼어. 하지만 파도처럼 일렁이는 두려움은 아무리 눌러도 잠잠해지지 않았지. 두려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점점 더 커져만 갔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거대한 두려움에 짓눌린 아빠 다람쥐의 마음속에 또 다른 목소리가 돌아다니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야 해. 우리 아이들이 평생 거짓에 속아서 살게 할 수는 없잖아. 아이들이 거짓 권위에 눌려 자신의 인생을 그르쳐서는 안 되잖아. 비록 아빠의 권위가 무너진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해.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거짓의 굴레에서 아이들을 건져내야 해. 아빠라면 그렇게 해야 해.'

아빠 다람쥐는 밤새 고민했어. 두려움으로 가득 찬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어. 그러다 아빠 다람쥐는 마침내 긴 고민의 터널을 빠져나왔어.

세 번째 물 컵을 비운 후, 숲속에서 들려오는 징소리와 북소리를 들으며, 아빠 다람쥐는 가족들을 불러 모았어. 그리고는 마음 속의 말을 다 쏟아냈어. 가족들은 말없이 듣고 있었어.

"그래서 아빠는 이번 숲속 마을 제사에 가지 않기로 했어. 왜냐하면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 산신령님이 아니라 이 꿀이기 때문이야. 우리 가족이 건강해지는 방법은 산신령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싱싱한 꿀을 많이 먹는 거야."

말을 마친 아빠 다람쥐는 한 숨을 크게 내쉬며 막내를 바라봤어.

'막내야, 걱정하지 마. 우린 잘 살 수 있어. 아빠를 믿어.'

그런데 아빠의 흔들리는 시선이 미덥지 못했던지 막내가 토를 달고 나섰어.

"피자도 많이 먹어야 건강할 걸... 우리 선생님이 편식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
"아참, 그렇지. 피자도 많이 먹어야지. 아빠가 깜빡했네."

아빠 다람쥐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아빠 다녀올게."

아빠 다람쥐는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어. 그리고 꿀 병을 지고 고목시장으로 갔어. 꿀과 피자를 바꾸기 위해서지.

고목시장은 미리 도착한 아래 마을 가족들로 왁자지껄 붐볐어. 맨 먼저 아빠 다람쥐를 알아본 골목쇠가 인사를 건넸어.

"어이, 아빠 다람쥐 좀 늦었네. 그런데 왜 혼자야? 나머지 가족들은?"
"응, 그게 어떻게 된 거냐하면..."

아빠 다람쥐는 숲속 마을의 사정을 소상하게 설명했어. 그리고는 아래 마을 가족들이 앞으로 7일간 꿀을 얻을 수 없게 된 데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했어.

"아빠 다람쥐가 미안해 할 일은 아냐. 하지만 뭔가 대책은 필요해. 앞으로 우리 마을 가족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꿀을 얻을 수 있는 대책 말이야."

아빠 다람쥐의 말을 듣고 난 구두쇠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어.

"맞아, 반드시 대책을 세워야 해. 우린 이제 꿀 없으면 못 살거든."

옆에 있던 골목쇠도 거들고 나섰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여기 오는 동안 생각해 봤는데 말야..."

아빠 다람쥐가 아래 마을 가족들을 번갈아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어.

"응, 생각해 봤는데?..."

아빠 다람쥐의 말에 아래 마을 가족들이 귀를 쫑긋하자 아빠 다람쥐가 말을 이었어.

"지금처럼 꿀과 피자를 직접 바꾸는 방식은 불편하고 한계가 있어. 오늘처럼 동물 가족들이 꿀을 가져오지 않으면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또 매번 꿀이나 피자를 여기까지 들고 오는 것도 힘들고..."
"그래서?"
"꿀과 피자의 교환수단을 새로 만드는 거야."
"교환수단?"
"응, 꿀하고도 바꿀 수 있고 또 피자하고도 바꿀 수 있는 그런 거야."
"그게 이름이 뭔데?"
"화폐, 즉 '돈'이라는 것이지."

"그럼 돈(=화폐)을 만들어서 어떻게 하는데?"
"응, 돈을 만들어서, 그 돈을 꿀하고 바꿔. 또 피자하고도 바꿔. 말하자면 돈으로 꿀과 피자를 사는 거지."
"그래서?"
"그런 다음, 사들인 꿀과 피자를 여기 고목시장에 모아 놔. 이렇게 하면 고목시장에는 항상 꿀과 피자가 준비되어 있게 되지."
"그런 다음에는?"
"그리고는 숲속 마을 동물 가족들과 아래 마을 가족들에게 공평하게 돈을 나눠주는 거야. 그리고 꿀이나 피자가 필요할 때 여기 고목시장에 와서 돈을 내고 사가도록 하는 거지."
"와,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럼, 오늘처럼 꿀이 없어서 그냥 돌아가는 일은 없겠구나!"
"그렇지. 매번 꿀 병이나 피자 바구니를 메고 올 필요도 없고. 호주머니에 돈만 넣어서 오면 돼."

"돈하고 꿀을 바꿔주는 일은 내가 할게. 나는 마을에서 농사짓는 것 보다 고목시장에서 일하는 게 더 좋아. 친구들아, 이제 아무 때나 꿀이 필요하면 돈을 가지고 이곳으로 와. 내가 언제든지 꿀로 바꿔줄게."

구두쇠가 굳어있던 얼굴을 활짝 펴며 말했어.

"숲속 동물 가족들이 돈을 가지고 올 때도 언제든 피자로 바꿔 줄 거지?
"당연하지!"

이렇게 해서 숲속 동물 가족들과 아래 마을 가족들은 언제든지 원하는 꿀과 피자를 얻을 수 있게 되었어. 그래서 두 마을 가족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편리하고 행복해졌지.


태그:#제사, #산신령, #독감, #고백,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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