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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확산하는 16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화장품 가게들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메르스가 확산하는 16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화장품 가게들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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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처럼 우리도 한국도 다 침몰하는 것 같아요."

이화여대 앞 노점상 노윤호(59)씨의 말이다. 그는 이대 앞에서 18년째 닭꼬치를 팔고 있다. 그의 상점에는 '중국에는 쟈오쯔(중국식 전통만두)가 있고 한국에는 이대 닭꼬치가 있다'는 중국어 홍보 문구가 붙어있었다.

노씨는 "손님의 80% 이상이 중국인"이라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그는 간단한 중국어 회화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며칠 동안 관광객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로 중국인 관광객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노씨는 "사스, 신종플루, 세월호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손님이 너무 없다 보니 옆에 노점상 3곳은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 주말에는 밤늦게까지 영업을 했는데도 음식이 팔리지 않아 버리고 철수했다"며 "하루에 몇 십만 원씩 팔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몇 만 원 팔기도 어렵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16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앞. 평소 이맘때면 이곳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을 시간. 그러나 이날 거리는 한산했다. 대신 상인들의 한숨만이 가득했다. 수 년 전부터 이대 앞은 한국 관광 필수코스로 자리 잡으며, 소위 '외국인 관광객으로 먹고 사는 곳'이 되었다.

이화의 중국어 발음 '리화'가 '돈이 불어나다'는 뜻의 '리파'와 발음이 유사해 중국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이대 정문의 배꽃(이화) 문양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중국인의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지하철 2호선 이대역부터 이화여대 정문까지의 상점가의 간판들이 중국어로 바뀔 정도였다.

그러나 메르스 감염에 대한 공포로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의 초반 예상과 달리 메르스에 4차 감염된 환자도 갈수록 늘면서 타격이 장기화하는 양상이다. 그 여파는 어느 정도일까. 기자가 직접 이대 앞 상점을 찾았다.

"3시간동안 한 개도 못 팔아... 장사하러 나오기 싫다"

서울 서대문구 이대 앞 화장품 가게들이 메르스의 여파로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이대 앞 화장품 가게들이 메르스의 여파로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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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화장품 브랜드숍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평소 중국인들은 이곳에서 마스크 팩, 핸드크림 등 한국화장품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그러나 이날은 개시도 못한 가게들이 다수였다. 직원들은 문 앞을 서성이며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텅 빈 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A 화장품 직원 이아무개(24)씨는 "사은품 나눠주면서 밖에서 손님을 유인하러 나왔는데 사람이 없다"면서 "손님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노점에서 안경테를 판매하는 정아무개씨도 "손님 자체가 없다"며 "중국인 관광객이 70~80% 이상 줄었고, 나머지는 마스크를 쓰고 빠르게 지나가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간적으로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며 "장사하러 나오기가 싫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해 온 이은영씨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이씨는 "16년간 장사를 하면서 지금처럼 매출이 줄은 적은 없다"고 운을 뗐다.

그는 "9시 이전부터 관광버스가 수십 대 오고 관광객들이 문을 열 때부터 들어와서 쇼핑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관광버스도 없고 오늘 문을 열고 3시간이 지났지만, 물건을 한 개도 팔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또 이씨는 "우리 가게는 협찬도 하고 나름 이대 앞에서 단단한 가게"라면서 "그런데 메르스는 도저히 피해가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같이 대로변에 있는 가게들은 그나마 낫고, 작은 골목에 있는 가게들은 아예 일시휴업한 곳도 많다"며 "인건비도 안 나오고 임대료만 내고 있으니 문을 닫는 가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대에서 외국인들 통역 안내를 돕는 서울시 관광협회 안내원들도 텅 빈 거리를 수차례 왔다 갔다 했다.

안내원 김아무개씨는 "평소 하루에 관광객 150명 정도를 안내하는데 최근 3주 동안은 50명도 채 안 된다"면서 "중국인들이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한국에 가지 말라고 방송했다면서 우리에게 '왜 마스크 안 쓰느냐'면서 오히려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루 1000명 오던 식당 7명 뿐... 정부 원망스러워"

16일 서울시 서대문구 이대 앞에 위치한 이화회관의 모습. 평소 1000명의 중국인 관광객 손님을 받지만 이날은 7명만이 예약했다. 메르스 여파로 한국 관광 예약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16일 서울시 서대문구 이대 앞에 위치한 이화회관의 모습. 평소 1000명의 중국인 관광객 손님을 받지만 이날은 7명만이 예약했다. 메르스 여파로 한국 관광 예약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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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이대 근처 식당 상인들도 울상이긴 마찬가지다. 관련 여행사의 관광객 예약은 전부 취소됐고, 이에 관광버스 운전자들도 생계가 막막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메르스 발생 이후 지난 13일까지 방한을 취소한 외국인 관광객은 모두 10만80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중화권 관광객이 75%를 차지한다.

이화회관 사장 김아무개씨는 "6월부터 8월까지가 성수기인데 모든 예약이 취소됐고 장사를 접지도 못하고 허송세월하고 있다"면서 "하루 1000명 가까이 예약손님이 오는데 오늘은 7명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9명이던 직원도 현재 1명으로 줄었다.

김씨는 "사스 때는 잘 잡았는데 정부가 메르스 초기를 놓친 게 너무 원망스럽다"면서 "뉴스를 온종일 보고 있지만, 어느 채널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태는 천재지변도 아니고 인재지변"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취업비자 제외)이 한국 체류 기간에 메르스 확진을 받을 경우 이를 보상하기 위해 내놓은 안심보험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김씨는 "한국이 메르스 많은 나라라고 광고를 하는 꼴"이라면서 "마스크를 이중으로 하고 와서 식사할 때도 안 벗으려고 하는데 저런 정책이 효과가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여행 가이드도, 관광버스 기사도... "하루아침에 실직한 셈"

16일 이대 근처 신촌기차역 주차장. 평소 이곳에 관광객을 태운 수십대의 버스가 주차를 한다. 그러나 이날 7명을 실은 관광버스 두 대만이 덩그러니 주차되어있다.
 16일 이대 근처 신촌기차역 주차장. 평소 이곳에 관광객을 태운 수십대의 버스가 주차를 한다. 그러나 이날 7명을 실은 관광버스 두 대만이 덩그러니 주차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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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이드 김아무개씨는 "40명 팀 예약이 되어있었지만 모두 취소하고 7명만 어제 한국으로 왔다"면서 "갈 때마다 타 여행사들이 데리고 온 관광객들로 붐볐던 남산타워, 경복궁에도 오늘 우리 팀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팀을 맡을 때마다 여행사로부터 돈을 받는데 모든 예약이 취소되면서 앞으로 맡은 팀이 없다"면서 "주위 가이드 모두 하루아침에 실직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관광버스 운전기사들도 시름에 빠졌다. 운전기사 강아무개씨는 "하루 관광버스를 움직이면 20만 원을 받는데 지금 모든 예약이 취소되면서 기사들이 놀고 있다"면서 "관광업이 침체하면 운전기사뿐 아니라 여행 가이드, 음식점 모두 맞물려서 전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메르스, #이화여대, #관광업,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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