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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보험설계사가 40만 명이 넘어요. 은행 점포 안에 보험사가 들어가면 우리 다 그만두란 얘기예요. 은행이 자기네 계열사 보험을 강매하다시피 할 게 뻔하잖아요. 보험을 예금으로 착각하고 가입하는 불완전판매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겁니다."

보험설계사 A씨의 말이다. 정부가 은행, 증권 상품을 함께 취급하는 복합금융 점포에 보험사까지 입점시키겠다고 밝히면서 보험설계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소비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보험 상품을 판매하던 방문 설계사들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복잡한 보험 상품 특성상 '불완전판매'나 '꺾기' 관행이 더 심해질 거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보험 설계사들 "계열사 보험 권유하고 꺾기 강요할 수도"

무턱대고 찾아 온 친구에게 가입한 보험상품의 증권과 설계서
 무턱대고 찾아 온 친구에게 가입한 보험상품의 증권과 설계서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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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재 한국보험대리점협회 부장은 25일 "은행 안에 보험사가 입점하면 설계사들이 가져가야 할 몫을 은행을 포함한 금융지주회사가 가져간다"면서 "설계사들의 소득과 일자리 감소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 부장은 "은행 안에 들어오는 보험사는 상품 판매에 대한 규제와 판매 인원 제한도 없게 된다"면서 "또 은행들이 자사 금융지주 계열사 보험사에 손님을 넘기면서 방카슈랑스 25% 제한은 깨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카슈랑스' 제도 도입에 따라 은행 창구에서도 증권이나 보험 상품을 팔 수 있지만 같은 금융지주 계열사나 자회사 제품 판매에 몰리는 걸 막으려고 특정 보험사 상품 판매 비중을 2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또 지금은 보장성 보험이 아닌 저축성 상품만 팔 수 있다.

하지만 은행 창구 옆에 아예 보험사가 입점하는 복합 점포에선 은행 직원이 고객에게 계열사 보험 가입을 유도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방카슈랑스 25% 제한은 무의미해진다.

또 보험설계사들은 복합 점포 안에서 보험을 판매할 경우 불완전판매, 꺾기 등의 부작용도 크게 늘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부장은 "은행은 저축성 보험, 연금 보험 등을 판매하는데 '5년 후 수익률이 100%다' 이런 식으로 강조해서 보험을 적금인 줄 알고 가입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보통 설계사들은 보험을 팔 때 평균 4, 5회 고객을 찾아가서 위험 보장 등에 관해서 설명한다"면서 "그러나 바쁜 창구에서 은행원이나 보험사 직원들이 복잡한 보험상품을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른바 '꺾기' 관행이 심화할 우려도 있다. '꺾기'는 중소기업·저신용자 등 협상력이 낮은 대출자에게 대출을 대가로 자사 금융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불공정 행위를 뜻한다.

보험설계사 B씨는 "은행 직원이 대출해줄 테니 보험 창구에 가서 보험 하나 가입하라고 권유하면 대출이 급한 사람이 그걸 거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금융위원장 "고객 편의가 중요"... 시민단체 "금융지주사 특혜"

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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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점포 내 보험사 입점에 대해선 여야 국회의원 모두 한 목소리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보험을 복합점포에 포함하면 금융회사들이 자사 상품만 권유하고, 꺾기를 강요할 수 있고 보험설계사의 대량 실업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도 "25% 방카슈랑스 제한을 그대로 유지해도 입점 보험사 우회 방식을 쓸 수 있다"며 "복합점포는 보험설계사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신중함을 주문했다.

그러나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고객들의 편의가 중요하다"며 복합점포 내 보험사 입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나타냈다. 임 위원장은 "보험 지점이 벽을 허물고 있을 때 고객의 편의성이 더 확대된다"면서 "복합점포에서 방카슈랑스 25% 제한이 반드시 지켜지도록 감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복합점포가 40개가 안 된다"면서 "그런데 왜 보험설계사 생계까지 보험업계에 연결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작 시민단체는 "금융위 정책은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소비자를 멍들게 하고 시장 혼란을 초래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위가 은행들의 수익 기반이 약화되자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도와주려고 시급한 현안은 제쳐놓고 중요하지도 않은 복합점포를 신속히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보험은 장기 상품이고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워 가입하기 전에 충분히 따져 보고 신중하게 가입해야 하는 '삼고초려' 상품"이라면서 보험설계사와 면담을 통한 가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복합점포의 보험 판매는 금융소비자에게 필요한 보험 대신 은행에 유리한 보험만 판매하게 되므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 된다"면서 "금융위원장이 각계의 강력한 반대와 국회 제동에도 고집스레 강행하는 것은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특혜로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복합점포, #방카슈랑스, #금융위원회, #보험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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