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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궁금증의 시작은 이렇다. 동네에서 환경운동을 꾸준하게 한 사람을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10년을 알고 지낸 사람인데 돈벌이도 아닌 이 일을 왜 이리 꾸준히 하는지 궁금했다. 세 시간을 인터뷰하면서 그간 이해되지 않았던 퍼즐이 맞춰졌다. 그이는 고등학생 시절 1980년 광주를 경험한다. 군인이 달려와 아가씨의 머리채를 탁 낚아채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 경험으로 그이는 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어렴풋이나마 한 사람의 삶을 통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더 오랜 세월을 알고 지냈더라도 알기 어려웠을 것을 인터뷰를 통해 단숨에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과거에 대해 내가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난 사람인 양 그렇게 부모님을 생각했었다. 부모님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귀한 자식이었고 꿈을 가진 아이였을 것이다. 부모님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부모님을 한 인간으로 더 잘 이해하게 될 듯싶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해방과 전쟁을 겪은 팔순 부모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서 선물로 드리면 좋을 거 같았다. 그 긴 세월을 두 분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자면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니다. 날로 약해지시는 팔순 부모님을 보면서 꾸준하게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못내 항상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이유로 꾸준하게 친정에 가게 된다면 일거양득이 될 것 같았다.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좋은 이유가 늘어났지만, 마음먹은 대로 몸이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는 사이 한두 달이 지났다.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리려고"

악착같이 아끼던 아버지는 물건 버리는 걸 무척 싫어하셨다.
 악착같이 아끼던 아버지는 물건 버리는 걸 무척 싫어하셨다.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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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가 철원으로 겨울 철새 기행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철새 기행을 다녀온 아이는 나에게 본 것을 주절주절 이야기했다.

"엄마, 오늘 백마고지에도 갔었어. 그런데 백마고지가 6.25전쟁 때 엄청 중요했던 곳이래. 고지 주인이 스무 번도 더 바뀐대. 그리고 고지에 포탄을 얼마나 많이 떨어뜨렸는지 높이가 1m나 내려갔대."
"백마고지가 영화<고지전>의 배경이잖아. 외할아버지 부대도 백마부대야. 엄마도 할아버지한테 백마고지 이야기 들었어."

아버지의 군대생활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버지가 몇 살에 고향을 떠나 월남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친정에 전화했다.

"49년이지 뭐."

그럼, 전쟁 나기 한 해 전, 아버지 나이 열아홉에 고향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월남한 아버지는 군인이 된다. 전쟁의 위험이 높던 시기라 나이를 속여 징집을 피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발적으로 입대한다. 왜 군에 들어갔는지 물었다.

"그거야, 먹고 살 게 없으니까 들어갔지."
"그럼 제대는 언제 하신 거예요?"
"가만 보자 그러니까 58년에 했지.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보는데?"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리려고."

아버지는 웃으셨다. 그런데 반기는 목소리는 아니다.

열아홉이면 고등학교 3학년 나이다. 우리 집 첫째보다 두 살 많은 나이다.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부모도 친지도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이남으로 내려왔다. 뿌리가 뽑힌 삶이다. 아버지를 떠나 보낸 할머니는 또 어떠셨을까?

아버지가 월남할 때 할머니 나이가 몇이었을까? 계산하니 서른아홉이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할머니가 맏아들을 떠나 보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환갑 즈음의 나이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어 낸 것처럼 아버지를 보내고도 그리 크게 가슴앓이를 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당시의 할머니 나이가 되고 또 나라면 내 아이를 떠나보내고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자 서른아홉의 할머니가 떠난 맏아들이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이 눈앞에 훤히 펼쳐졌다. 집 떠난 뒤 연락도 없고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아들 생각에 단 한 끼도 맘 편히 드신 날이 있었을까?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주무신 날은 있었을까? 평생 자식을 걱정하며 그리워하고 사셨을 거다.

아버지는 또 어떠한가? 열아홉, 그 어린 나이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남한 땅에 떨어져서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살아왔다. 명절만 되면 남들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아버지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홀로 뒷산에 올라 고향 쪽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벌써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과연 지구상의 어떤 죄인이 이런 벌을 받을까?

아무리 죄인이라도 '부모상'이 있으면 상을 치르게 일시 석방을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60년도 넘게 가족을 만나기는커녕 생사 확인조차 못 하고 살아왔다. 이런 심한 벌을 받는 죄인이 세상 천지에 또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악착같이 절약하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다

그즈음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책 <쥐>를 읽게 되었다. 만화가는 유대인 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그걸 만화로 그렸다. 아들은 돈만 밝히는 구두쇠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난 아버지의 과거를 들으며 조금씩 아버지가 왜 그렇게 지독한 구두쇠가 되었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저자는 아버지가 가게 주인을 사기꾼이라 몰아치는 모습을 보면서 벽을 느낀다.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의 아버지 모습이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난 뒤 알았다. 닮은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물건을 버리는 것을 무척 싫어하셨다. 생각해 보니 부모님 부부싸움의 대부분은 "그거 어디 있어?" 하는 아버지의 추궁으로 시작되었다. 물건을 찾아서 아버지 앞에 대령을 못 하면 온 가족은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어야했다. 결국 그 난리는 "물건 하나 간수 못 하는 집구석"이라는 아버지의 훈계로 끝이 났다.

아버지는 당연히 물건을 새로 사는 것도 싫어하셨다. 엄마가 부업을 해서 번 돈으로 냉장고를 집에 처음 들여놓았을 때도 엄마는 아버지에게 혼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아버지가 2층에 있던 냉장고를 발견했던 순간, 집안은 날아다니는 물건으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도 열아홉 이른 나이에 고향을 떠나 힘겹게 살아온 아버지의 생존본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세상천지에 믿고 의지할 곳은 돈밖에 없었을 것이다. 악착같이 절약해서 돈을 모았다. 그 힘으로 남한에서 자리 잡고 또 우리를 키웠다. 자식의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 모습 이면엔 역사적 사건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전쟁이 개인들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부모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작업인지 나는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부모님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리고 부모님을 꾸준하게 찾아뵐 계기를 만들고 싶어서 인터뷰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이 작업은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에 대한 증언이기도 한 가치 있는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은 진솔한 이야기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나에게 느끼게 해 주었다. 취재용 녹음기를 구입했다. 마음을 먹고 나니 조급한 마음이 생겼다. 부모님의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좋을 때 인터뷰를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부터 먼저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덧붙이는 글 | 2012년도 이야기 입니다.



태그:#부모님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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