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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최측근인 강태용(54)씨가 16일 오후 5시 57분쯤 중국에서 압송돼 대구지검에 도착했다. 강씨가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수사관들에 이끌려 대구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최측근인 강태용(54)씨가 16일 오후 5시 57분쯤 중국에서 압송돼 대구지검에 도착했다. 강씨가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수사관들에 이끌려 대구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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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지난 2008년. 부모님이 사기 당하는 동안 자식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에 대한 뉴스를 듣고 있었다. 공식 집계 피해액이 2조 5천억 원이고 피해자 수는 수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해자는 주로 노년층.

노년층 피해자에겐 아마 자식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보통의 경우라면 노년 부모는 자식에게 투자 상의를 할 것이다. 설령 부모가 투자 상의를 하지 않다 하더라도 자식이 눈치를 챌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피해자 수가 많아졌다는 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정에 간 어느날, 갑자기 조희팔 사건이 생각났다.

"엄마, 엄마 주변에도 조희팔 사건에 투자한 사람 있어? 피해자가 엄청나게 많대?"
"엄마도 물렸어."

엄마의 답을 듣고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엄마는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엄마가 어떻게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투자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사기를 당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엄마는 아니다.

"진짜야? 도대체 누가 엄마한테 그걸 소개했어?"
"교인이."

엄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같은 종교를 믿는 교인이 투자 소개를 했나 보다.

"그럼 얼마나 손해 본 거야?"
"아버지랑 합치면 500만 원 정도. 아버지가 먼저 시작했고 엄마는 마지막에 했어."

역시 아버지가 먼저 시작을 하셨구나. 500만 원이라니 적지 않은 돈이다. 이번 사건 피해자의 자식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나도 한심한 자식 중 한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투자하기 전에 나에게 물어만 봤어도 어떻게든 말렸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일은 미주알고주알 나한테 상의하던 엄마가 왜 그 일은 말씀을 안 하신 걸까? 생각해 보니 내게 말 했으면 반대할 걸 뻔히 예상해서 부모님이 상의를 안 하셨던 것 같았다. 사실 아버지가 이번과 비슷한 사기를 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엄마까지 거기에 말렸다는 것이 이상했다.

"엄마, 걔네들이 뭐라고 그랬어?"
"뭐라고 그랬냐 하면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의료기기 투자 말고 어떤 것도 이 정도 수익을 낼 사업은 없다고 그랬어."
"의료기기를 사서 어떻게 수익을 내?"
"병원이나 찜질방 그런데 빌려주고 돈을 받는대."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같은 종교를 믿는 분 중에 먼저 투자를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매일 꼬박꼬박 삼사십만 원이 입금되는 통장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거짓말 같은 말이었지만 통장을 보는 순간 아버지는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매일 입금되는 내역이 찍힌 통장을 보자 아버지는 투자에 대한 확신이 들었던 듯싶다.

한 계좌 투자금이 400만 원. 아버지가 먼저 투자를 했다. 곧 아버지 통장에 매일 돈이 입금되었다. 꼬박꼬박 아버지 통장에 찍히는 입금내역을 보면서 의심이 많았던 엄마도 2008년 여름에 400만 원을 투자를 하게 되었다.

투자원금과 이익금이 분할로 입급이 되었다.
 투자원금과 이익금이 분할로 입급이 되었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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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엄마 통장에도 투자원금과 이익금이 분할로 입급이 되었다. 1차 투자가 끝나고 엄마는 400만 원을 재투자했다. 두 번째 투자 이익금이 들어오다가 10월 24일 입금이 멈췄다. 그리고 두 달 뒤 주범들이 중국으로 잠적했다. 이 사건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 수는 수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희팔 오른팔 잡혔다는 소식에...

2008년 조희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난 7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 사건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주범들은 중국으로 도망을 쳤고 심지어 조희팔의 장례식 동영상까지 보도 되었다. 물론 사망 조작설이 떠돌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조희팔의 오른팔이 중국에서 송환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시 수사가 활개를 띠게 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렸다. 그리고 얼마 뒤 친정에 갈 일이 있었다. 친정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조희팔 사건 돈이 입출금된 통장 어디 있어?"
"그건 왜?"

엄마는 통장을 보여주기 꺼리는 듯 보였다.

"아이들한테도 보여주게 그래야 아이들은 그런 사기 안 당할 거 아니야?"

엄마는 지난 통장 십여 개를 꺼내 하나하나 뒤졌다.

"야 이건가 봐. 여기 매일 돈이 입금되었지? 어디서 엄마한테 이렇게 매일 돈을 주겠니?"

돋보기를 한 손에 든 엄마가 나에게 통장을 건넸다. 찬찬히 살폈다. 매일 삼사십만 원이 입금되어 있다. '400만 원 투자해서 삼사십만 원씩 며칠을 받은 거야? 이거 다 합치면 총 얼마를 돌려 받은 거야? 와 수익률 대단하다. 이런 투자처 있으면 나도......'

내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그렇게 흘러갔다. 짧은 순간 기분이 묘했다. '아이고, 정신 차려! 이건 사기 사건이 기록된 통장이야.' 통장을 본 일분도 안 되는 시간에 내 마음도 이렇게 흔들리는데 부모님은 오죽했을까? 사건이 터지기 전에 누군가 내 눈 앞에서 이 통장을 흔들었다면 투자를 안 하긴 힘들었을 거 같다.

신문 판촉하는 아저씨들이 내 눈앞에 만 원권 다섯 장을 흔들면 나도 순간 혹해서 눈이 돈으로 돌아간다. 노인들뿐 아니라 누구나 매일 수십만 원씩 입금된 통장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거 같다. 이렇게 사기꾼들이 피해자를 낚는 거구나.

조심성 많은 엄마도 충분히 사기당할 수 있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만 엄마가 그 돈을 모으기까지 그 과정을 아는 나는 그게 속이 상했을 뿐이었다. 팔순이 넘은 엄마는 꼬부랑 허리를 해가지고 세탁기 헹굼 물 버리는 게 아까워 그 물로 걸레를 빨고 변기 물로 재활용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아껴 모은 돈을 사기꾼들 입에 500만 원이나 톨톨 털어 넣어줬다니 너무 속이 상했다.

"엄마는 피해 신고는 한 거야?"
"뭘 그런 걸 해. 돈 돌려받지도 못할 텐데. 그리고 우린 남들에 비해 그렇게 큰돈도 아니고."

하긴 신고하러 경찰서로 다니는 게 일이긴 하다. 그럼 우리 부모님처럼 피해 신고 안 한 사람들까지 다 따지면 피해 액수와 피해자 수는 더 늘어 날것이다. 사기 수법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노인들이 사기 피해자가 되는 걸 막을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부모님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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