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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입원하신다."

언니에게 온 문자다. 며칠 전 팔순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CT 촬영을 했다. 검사결과가 나오기로 한 목요일, 아버지가 입원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께서 '게실염'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해야 한단다. 언니는 입원 수속을 밟을 수는 있지만, 다른 약속이 있어 입원준비물을 챙겨 드릴 시간이 없다고 했다. 옷가지를 챙겨다 줄 사람이 나 말고는 없겠다.

친정집은 마침 공사 중이다. 부모님은 아랫집 사람들에게 누수 때문에 몇 차례 항의를 받고 누수를 잡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엄마는 공사를 살피느라 병원에 올 기운도, 시간도 없을 것이다. 슬리퍼도, 보호자도 없이 병실에 덩그러니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오후 5시, 중학생 둘째에게 여덟 살 막내를 맡기고 집을 나섰다. 친정까지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 병원은 친정에서 30분을 더 가야 한다. 친정에 도착한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아버지 속옷 좀 챙겨 주세요."
"네가 챙겨가. 엄마가 아버지보다 더 아팠어. 그런데 네 아버지는 입원하고 나는 이게 뭐냐? 공사도 나한테 다 떠넘기고."

엄마는 잔뜩 화가 나 있다.

"전기공사 하는 사람도 내가 할머니라고 얼마나 괄시 하는지 몰라. 집도 팔고 물건도 다 버리고 이젠 방 하나짜리 작은 집에서 살고 싶어. 청소하는 것도 무서워."

게다가 열흘 전엔 아버지가 언니 따라서 중국으로 여행까지 다녀오셨다. 엄마는 몸이 안 좋아 여행에 따라갈 엄두도 못 냈는데, 여행 다녀온 아버지가 앓아누운 것이다. 결국, 공사 관리도 엄마의 몫이 됐다. 그러니 엄마가 화를 낼만도 하다.

아버지의 옷가지를 챙겨 친정을 나섰다. 병실에 도착하니 6인실이다. 환자 보호자인 아주머니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 가운데 침대에 커튼이 쳐져 있다. 아버지 자리인가 보다. 커튼을 살짝 열며 "아버지"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주무신다. 섬처럼 외롭다. 보호자도 없이 여태 혼자서 얼마나 쓸쓸하셨을까?

아버지도 돌봐드려야 하고, 어머니도 돌봐드려야 하고

아버지의 입원, 그리고 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
 아버지의 입원, 그리고 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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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에게 다음 날 의사 회진 시간을 묻고 다시 아버지 병실로 왔다.

"빨리 가. 어서 집에 가."

아버지는 병원에 혼자 있어도 되니 내게 빨리 집에 가라는 게다. 방학이지만 학교에 가는 고등학생 첫째 때문에 병실에서 잠을 자긴 쉽지 않을 듯하다. 이 큰 병원에 아버지만 혼자 두고 가려니 마음이 좋지 않다. 병실을 나서면서 같은 병실 아주머니들에게 더 깍듯하게 인사했다. 우리 아버지 좀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도 들어있는 인사였다.

다음 날, 금요일엔 언니가 병원에 가서 의사와 함께 아버지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토요일에는 맞벌이하는 오빠랑 새언니가 병원에 온다고 한다. 병원에 있는 아버지도 걱정이지만, 혼자 있는 친정엄마도 걱정됐다. 혼자서 밥은 잘 챙겨 드시는지. 저녁 때 마침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가 전화를 안 받으신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걱정이다. 소화는 잘하는지."
"제가 내일 아침에 반찬 해서 가 보려고요."

아버지가 좋아하신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두 분이 통화도 못 하셨을 거다. 두 분 다 귀가 안 좋다. 전화를 끊고 친정에 전화했다. 한참 있다가 엄마가 받는다. 엄마에게 다음 날 아침에 찾아뵙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올 거 없어. 너 오면 엄마 더 힘들어. 네가 오는 게 다 일이야."
"반찬 해 갈게."
"다 힘들어. 오지 마."

말씀은 오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렇다고 친정에 안 가볼 수는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가 남긴 죽은 싫다

토요일, 반찬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오전 9시 친정에 도착했다. 엄마가 진짜 화를 내면 어쩌나 걱정하며 현관에 들어섰다. 작은 체구의 엄마가 삼계탕을 드시고 있다.

"어, 정민이니? 아침 안 먹었지? 같이 먹어."

다행이다. 본래의 엄마로 돌아오셨다. 엄마는 무릎이 아파 침 맞으러 한의원에 가신다. 나는 설거지하고 청소를 했다. 그리고 친정을 나와서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 계신 아버지에게 들렀다 가라는 거다.

"오빠가 올 텐데, 왜?"

아침 일찍 나오느라 아이들 아침도 못 챙겨주고 나온 게 마음이 걸렸다.

"언제 올지 모르잖아? 그리고 점심에 죽 나온다고 했는데 아버지 조금만 드셔야 돼. 안 그러면 또 탈 나."

한숨이 나왔다. 언니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뭐든 버리는 걸 싫어하신다. 특히 먹을거리를 버리는 일은 없다. 분명 죽도 싹싹 다 드실 거다.

병실에 도착하니 아버지 침대에는 여전히 커튼이 쳐져 있다. 아버지는 주무신다. 단식 때문에 기운이 없어서 그런 거 같다. 며칠 새 얼굴이 더 여위고 까칠해 보인다. 이내 점심인 죽이 나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양이 많다.

"아버지 죽 반만 드셔요. 이거 다 드시면 안 돼요."
"그럼 네가 먹을래? 버리기 아깝잖아."

솔직히 부모와 자식 간이지만 아버지가 남긴 걸 먹고 싶진 않다. 그런데 안 먹을 수가 없다. 내가 아버지가 남긴 죽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드니 아버지가 좋아하신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얄밉기까지 하다.

"아버지, 내가 이거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내가 안 먹으면 아버지가 먹을까봐 먹는거야."

아버지는 아무렴 어떠냐 하는 얼굴로 웃으신다.

부모님께서 언제 이렇게 연로해시졌지...

내가 병원을 나온 뒤, 오빠네가 아버지 병원과 엄마에게 들렀다. 병원비 중간 정산도 하고 갔다. 그리고 저녁에는 언니가 병원에 다녀갔다. 하지만 일요일엔 아무도 가지 못했다. 홀로 있을 두 분이 내내 걱정됐다. 마음에 돌을 얹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오전 퇴원 하라고 하는데 엄마한테 전화 좀 해줘라."

알겠다고 답을 하며 내 머릿속은 온통 '퇴원 때 누가 모시러 가나?' 이 생각뿐이다. 나는 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럴 때 '내가 모시러 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단번에 말씀드리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죄송하다. 그래도 우리 중 누군가는 가야 한다. 아버지도 그게 궁금하실 거 같다.

"언니 오빠한테 전화해서 누가 모시러 갈지 이야기할게요."
"그래 고맙다."

언니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언니가 가겠다고 한다. 그래도 언니가 직장생활을 안 하니 다행이다.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의 4박 5일 길지도 않은 입원 기간 동안 부모님 두 분을 살피는 일이 쉽지가 않다. 연세에 비해 건강한 편인데도 말이다.

월요일 퇴원수속을 밟는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예약을 잡는데 내가 언제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묻는다. 언니는 내가 가능한 시간으로 다음 외래 예약을 잡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엄마 혼자만으로 힘겨운 것처럼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것도 자식 혼자서는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부모님이 언제 이렇게 연로해지셨는지 모르겠다. 이젠 부모님이 건강하셨던 때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지나고 나면 이 정도 편찮으신 지금 이 순간도 그리울 것이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덧붙이는 글 | 2014년 여름의 이야기입니다.



태그:#부모님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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