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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쉬면서 북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 ‘코모 호수'에 다녀왔습니다. 알프스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빙하 호수인 ‘코모 호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 코모 호수 하루를 쉬면서 북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 ‘코모 호수'에 다녀왔습니다. 알프스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빙하 호수인 ‘코모 호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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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는 하루를 쉬면서 북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 '코모 호수(Lago di Como)'에 다녀왔습니다. 알프스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빙하 호수인 코모 호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호수라면 댐 공사로 인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호수들만 알고 있던 나에게 수 만년에 걸쳐 형성된 자연스러운 지형과, 그 품에 말 그대로 포근하게 안겨있는 인간의 마을들이 함께 만들어낸 경치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화였습니다.

나는 별다른 일정 없이 느릿느릿 호숫가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카페에 앉아 그동안 여행기들도 정리했습니다. 푸니쿨라레를 타고 높은 언덕에 올라 경치 구경도 했죠. 이탈리아에 와서 18일 만에 처음으로 맛본 휴식다운 휴식. 코모 호수와 알프스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에 그동안의 피곤함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름다운 중세 도시, 베로나에서의 하루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베로나의 아레나. 콜로세움의 축소판이라고는 하지만 거대한 경기장.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 베로나의 아레나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베로나의 아레나. 콜로세움의 축소판이라고는 하지만 거대한 경기장.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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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는 하루 종일 아름다운 중세 도시, '베로나(Verona)'에 머물렀습니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출발하여 초고속 열차를 타고 통 안개로 뒤덮인 들판을 달려 1시간 반 남짓 걸려 도착한 베로나의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찬 베로나 시내를 걸어 이름도 좀 거시기한 '브라 광장(Piazza Brà)'에 도착해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아레나(Arena di Verona)'에 들렀습니다. '콜로세움'의 축소판이라고는 하지만 거대한 경기장.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또한 축소판이라는 베로나의 아레나가 이 정도인데, 로마에서 만났던 콜로세움의 원래 모습은 또 어떠했을지 상상하니, 그 거대한 규모가 다시 한 번 떠오릅니다.

베로나에서는 미술관이나 성당 같은 곳보다 베로나 거리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줄리엣의 집(La Casa di Giulietta)'. 실제로 줄리엣의 집이 아니라 베로나 시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곳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의 고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베로나에 줄리엣의 집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할 정도로 잘 꾸며 놓았습니다.

정원 한 쪽엔 줄리엣의 동상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자들이 모두 '망측하게도' 그녀의 한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나도 남들처럼 사진을 찍어 볼까 했지만, 수많은 여행자들의 손길이 스쳐 지나간 줄리엣이 가엽게 느껴지기도 하고, 남자 혼자 쑥스럽기도 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 베로나. 이곳에 '줄리엣의 집'을 꾸며 놓았습니다. 그리고 정원 한 쪽에 자리잡은 '줄리엣 상'엔 저렇게 조금은 민망스러운 모습으로 사진찍는 사람들이 늘 이어집니다.
▲ 줄리엣 상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 베로나. 이곳에 '줄리엣의 집'을 꾸며 놓았습니다. 그리고 정원 한 쪽에 자리잡은 '줄리엣 상'엔 저렇게 조금은 민망스러운 모습으로 사진찍는 사람들이 늘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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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온 시기. 브라 광장을 비롯한 베로나 곳곳의 광장들 '에르베 광장(Piazza dei Erbe, 정말 사랑스러운 광장이었습니다)', '시뇨리 광장(Piazza dei Signori)'엔 장이 섰습니다. 곳곳에서 이름은 모르지만, 맛있어 보이는 길거리 음식들도 맛보고 기념품도 샀습니다. 그리고 잠시 '모던 미술관(Galleria D'Arte Moderna)'에 들르긴 했지만, 이탈리아의 다른 현대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 금세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문 닫힌 '성 아나스타샤 성당(Basilica di Santa Anastasia)'을 지나 '아디제 강(fiume adige)'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강변의 '고대 로마노 극장(Teatro romano di Verona)'을 지나 '산 피에트로 성(Castel S. Pietro)'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별 준비없이 올라와, 이게 아닌데 하는 순간, 점점 베로나의 참 모습이 펼쳐집니다.

'산 피에트로 성'에서 바라본 베로나의 전경. 구름 사이로 간간히 스며오는 햇빛과 반짝이는 아디제 강, 그리고 안개에 휩싸인 베로나 시가지는 영화 속의  중세 도시, 그 자체였습니다
▲ 베로나 전경 '산 피에트로 성'에서 바라본 베로나의 전경. 구름 사이로 간간히 스며오는 햇빛과 반짝이는 아디제 강, 그리고 안개에 휩싸인 베로나 시가지는 영화 속의 중세 도시,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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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찌푸린 날씨. 하지만 베로나의 진짜 모습은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간간히 스며오는 햇빛과 반짝이는 아디제 강, 그리고 안개에 휩싸인 베로나 시가지는 영화 속의  중세 도시 그 자체였습니다.

배경은 다르지만 해리포터와 그 친구들이 마법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닐 것 같은 풍경입니다. 나는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치에 넋을 잃어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래오래 머물렀습니다. 이후 천천히 걸어 '두오모(Duomo di Verona)'와 '베키오 성(Castel Vecchio)' 등을 둘러보고 짧은 베로나 여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베네치아(Venezia)에 입성했습니다. 아! 베네치아! 이 도시를 어떻게 소개해야 될까요?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서 바라본 베네치아의 중심, '산 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 '대종루'입니다.
▲ 베네치아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서 바라본 베네치아의 중심, '산 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 '대종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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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밝힌 적 있지만, 이번 이탈리아 미술 기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는 피렌체였습니다. '두오모'와 '우피치'가 있고, 마사초, 보티첼리,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천재들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 피렌체. 지금도 두오모의 쿠폴라에서 내려다보았던 그 오렌지 빛 지붕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뜁니다. 나는 내 평생의 꿈의 도시, 피렌체 때문에 '오르세'와 '루브르'와 파리와 프랑스를 포기하고 이탈리아에 온 것이었죠.

그런데 베네치아에 도착하는 순간,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베로나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본토에서 길게 이어진 단 하나의 통로를 지나 베네치아 본섬의 '산타 루치아 역(Stazione di Venezia Santa Lucia)'에 발을 딛는 그 순간에 나는 베네치아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꿈의 세계(이탈리아가 나에게는 꿈의 나라였으니까요)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마법의 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역 정문을 나서자 이내 눈앞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 자동차들로 가득한 도로가 아닌 푸른 수로 위를 유유히 지나가는 배들. 그 수로 위에 그림처럼 '떠 있는' 건물들. 특히 '산타 루치아 역' 바로 맞은편 '산 시메오네 피콜로 성당(Chiesa San Simeone Piccolo)'은 베네치아를 찾은 여행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한 첫인사를 보냅니다. 나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걸음을 멈춘 채, 운하와 배들과 건물들이 만들어 내는 마법 같은 풍경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지체할 수는 없지요. 다른 도시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베네치아에서의 첫 날. 오늘은 오후 내내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관람할 예정입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넙니다. 그리고 호텔에선 체크인만 하고 짐도 풀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막상, 베네치아의 골목에 들어서니 '아카데미아 미술관'까지 찾아갈 길이 막막합니다. 아직 베네치아 특유의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Vaporetto)'도 어떻게 타는지 모르고 해서 그냥 지도에만 의지해 걸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호텔에서 미술관까지의 경로를 지도를 통해 몇 번이나 숙지했건만 미로 같은 베네치아 골목길은 초보 여행자에게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골목 구석구석까지 이어져 있는 작은 운하들을 건널 때마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어 심지어 미술관 뒤를 그냥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패드의 구글 맵을 이용해 겨우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e dell'Accademia)'에 도착했습니다. 

만만치 않은 작품들, 뇌를 깨우다

골목 구석구석까지 이어져 있는 작은 운하들을 건널 때마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 여기는 베네치아 입니다.
▲ 작은 운하 골목 구석구석까지 이어져 있는 작은 운하들을 건널 때마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 여기는 베네치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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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언급했듯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은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뉩니다. 마사초와 지오토 이후 정확한 선과 구도로 대상의 형태를 완벽하게 그려내는 드로잉을 회화의 기본으로 삼았던 피렌체 화파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면 받았던 색채와 빛에 더 중점을 둔 베네치아 화파가 그것이죠. '우피치 미술관'이 피렌체 화파의 본산이라면, 이곳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베네치아 화파의 본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세기 말부터 동방 무역으로 얻은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로 성장한 베네치아는 14~15세기를 거치면서 해상무역공국으로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 베네치아에서는 피렌체와 북유럽의 플랑드르, 동방의 비잔틴 예술까지 융합된 독특한 미술 양식이 형성되는데, 바로 '베네치아 화파'입니다.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조반니 벨리니와 젠틸레 벨리니 형제, 그들의 매부인 만테냐, 카르파치오,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동안 피렌체와 밀라노를 거치면서 한 번씩은 만나본 작가들이지만 이곳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말 그대로 그들 '베네치아 화파'의 명작들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비토레 카르파치오, ‘아라라트 산에서 순교자 만 명의 십자가형과 영광’,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아르메니아에서 반란군과 전투를 벌였던 만 명의 로마 병사들이 배신을 당해 아라라트 산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일화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 아라라트 산에서 순교자 만 명의 십자가형과 영광 비토레 카르파치오, ‘아라라트 산에서 순교자 만 명의 십자가형과 영광’,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아르메니아에서 반란군과 전투를 벌였던 만 명의 로마 병사들이 배신을 당해 아라라트 산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일화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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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비토레 카르파치오의 작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라라트 산에서 순교자 만명의 십자가형과 영광>이란 긴 제목의 작품입니다. 초기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명인 카르파치오는 벨리니 일가, 특히 젠틸레 벨리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특히 세밀화 기법으로 다양한 소재를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넓은 공간에 수많은 인물들을 자유롭게 배치한다거나,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소재와 화면 구성으로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많이 남겼죠. 특히 작품 속에 베네치아 풍속을 많이 반영해 당시 베네치아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 작품, <아라라트 산에서 순교자 만 명의 십자가형과 영광>은 원래 '성 안토니오 성당'의 제단을 장식하고 있던 것으로, 근래에 새롭게 복원된 작품입니다. 아르메니아에서 반란군과 전투를 벌였던 만 명의 로마 병사들이 배신을 당해 아라라트 산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일화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아라라트 산과 숲, 들판을 배경으로 한 명 한 명 섬세하게 묘사된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첫머리부터 만만찮은 작품을 만나고 나니 더 정신이 번쩍 듭니다.

다음으로 만날 작가는 당연히,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조반니 벨리니입니다. 지난주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에서 만난 <피에타>의 작가죠. 그런데 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는 그의 또 다른 피에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브레라 미술관'의 <피에타>가 절제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지극한 슬픔을 표현했다면, 이 <피에타>는 조금 더 선명해진 색채로 절제된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조반니 벨리니. 그의 이 ‘피에타’는 '브레라 미술관'의 '피에타'보다 조금 더 선명해진 색채로 절제된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피에타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조반니 벨리니. 그의 이 ‘피에타’는 '브레라 미술관'의 '피에타'보다 조금 더 선명해진 색채로 절제된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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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벨리니의 이 작품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조각 <피에타>와 꼭 닮아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앉은 채로 이미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육체를 무릎 위에 안고 있는 구도가 동일하죠.

예수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만이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에서 마리아와 예수만을 분리시킨 이 구도는 사실 13세기 독일에서 제작된 채색 목조가 그 시초입니다. 그러다가 14세기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과 함께 전 유럽으로 확산된 것이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자상이 아기의 순수성과 마리아의 인자함을 통해 생명의 신성을 표현한 것이라면, 그 반대의 피에타는 신성의 극단적 슬픔을 묘사함으로써 죽음의 신성을 표현한 것이죠.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그림으로 피에타를 제작했는데, 미켈란젤로는 그 자신이 밝힌 정체성대로 독일식 채색 목조를 본받아 조각 작품을 남겼던 것입니다. 물론 이상화된 인물을 통해 슬픔의 종교적 초월성을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조각보다 벨리니의 작품은 훨씬 더 현실적인 인물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반니 벨리니는 이외에도 여러 점의 피에타를 더 남겼는데 시기마다 조금씩 그 구도와 표현 방식이 달라집니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피에타로 미켈란젤로의 작품보다 5~6년 정도 이후에 제작된 것입니다.

24세에 불과한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벨리니도 알아본 것일까요? 아니면 일흔 살의 노(老) 대가, 벨리니의 끊임없는 자기 혁신의 결과였을까요?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르네상스를 이끌어간 대가들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태그:#코모호수, #베로나, #베네치아, #아카데미아미술관,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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