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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화파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아카데미아 미술관'. 화파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를 본 후 이제 그가 남긴 특이한 작품들을 만납니다.  조반니 벨리니와 안드레아 프레비탈리와 함께 그린 <알레고리>(Allegorie) 연작입니다. 정확하게 누구의 작품인지 여전히 논란이 많은데 일단은 아카데미아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정보를 참고했습니다.

다섯 개의 작은 패널로 이루어져 있는 이 연작은,  크기도 작고 조명도 거의 비추지 않아서 하마터면 놓칠 뻔한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보는 순간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성화나 화려하고 웅장한 베네치아의 모습을 주로 그려왔던 조반니 벨리니가 이런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피치 미술관'에서 벨리니의 '성스러운 알레고리'를 만났던 기억도 납니다. 

보는 순간 상상력 무궁무진, 해석이 필요없는 그림들

조반니 벨리니, '우울의 알레고리',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다섯개의 작은 패널로 이루어진 조반니 벨리니의 '알레고리' 연작 중 한 편입니다.
▲ 우울의 알레고리 조반니 벨리니, '우울의 알레고리',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다섯개의 작은 패널로 이루어진 조반니 벨리니의 '알레고리' 연작 중 한 편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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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벨리니(또는 안드레아 프레비탈리), '행운의 알레고리',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 행운의 알레고리 조반니 벨리니(또는 안드레아 프레비탈리), '행운의 알레고리',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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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벨리니, '지혜의 알레고리', 베데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라 껍질속에서 힘들게 나오는 사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제목 그대로 '알레고리(은유0'입니다.
▲ 지혜의 알레고리 조반니 벨리니, '지혜의 알레고리', 베데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라 껍질속에서 힘들게 나오는 사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제목 그대로 '알레고리(은유0'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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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신비로운 파란 구슬을 안고 있는 여신과 천사들이 함께 있는 패널은 <우울의 알레고리>입니다. 그리고 브로치를 들고 서 있는 여인과 천사들은 <허영의 알레고리>, 수레를 탄 바쿠스가 전사에게 과일을 건네는 패널은 <영웅 미덕의 알레고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작품은 의견이 분분한데, 눈을 가리고 구(球) 위에 서서 양손에 물병을 들고 있는, 날개 달린 여신은 <행운의 알레고리>, 커다란 고둥에서 나온 남자를 뱀이 휘감고 있는 모습은 <지혜의 알레고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굳이 이런 해석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온갖 상상이 일어나니 말입니다. 

'알레고리' 연작을 보다가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그동안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해석을 낳아왔던 수수께끼 같은 작품, 조르조네의 <템페스트>(tempest, 폭풍)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내가 이곳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조르조네, '폭풍',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자연을 명확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운서양 회화사 최초의 풍경화라고도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 폭풍 조르조네, '폭풍',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자연을 명확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운서양 회화사 최초의 풍경화라고도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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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반라의 여인과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목동처럼 생긴 남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하늘 멀리 번개가 내려칩니다. 이 작품 이전에 자연을 이처럼 명확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작품이 없다고 해서 서양 회화사 최초의 풍경화라고도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도대체 등장인물들이 누구인지, 배경은 어디인지, 번개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수많은 해석과 억측을 낳은 한 작품이기도 하죠.

그림을 보면 인물들은 평온하기 그지없습니다. 왼쪽의 남자는 군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목동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옷을 벗은 여인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아담과 이브? 요셉과 성모 마리아? 아레스와 비너스? 그냥 평범한 목동과 집시 여인?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목처럼, 저 멀리 폭풍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번개가 섬광을 발하며 구름을 찢고 있습니다. 전면의 인물들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죠. 그런데 이 작품을 보자마자 나는 마치 작품 속 번개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다양한 도상 해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조르조네 자신이 다양한 해석을 예상하고 그린 작품이란 생각도 듭니다.

사실 이 작품은 그 도상학적 해석 못지않게 표현 기법도 중요합니다. 우선 인물을 비롯한 형상들이 윤곽선이 아니라 빛과 색채를 이용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예비 드로잉 없이 물감을 칠하면서 구상을 완성한 것이지요. 베네치아 화파 특유의 기법입니다.

그런데 그 색채는 화면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장치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전경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갈색과 붉은색은 초록의 중경을 거쳐 에메랄드빛과 청록빛의 원경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색채들이 장면에 따라 하나씩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면 전체에 통일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저 번개의 섬광이 있습니다. 그 섬광으로 하여 이 작품에는 대기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대기가 식물들과 앞의 인물까지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번개의 빛이 화면 전체에 생명력을 부여해 주고 있는 것이죠.

말하자면, 조르조네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인물이나 의미를 위해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풍경과 인간을 하나로 생각하고 그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혁신적인 태도입니다. 위대한 미술사가 곰브리치에 의하면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원근법의 창안과 거의 맞먹는 새로운 영역을 향한 하나의 발돋움"입니다. 조르조네로 인해 "이제부터 회화는 소묘에 채색을 더한 것 이상의 의미"가 된 것이죠.  

그런데 조르조네는 자신이 제기한 혁신의 성과를 꽃피우지도 못하고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흑사병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피렌체의 마사초처럼 말이죠. 하지만 조르조네의 성과는 심지어 그의 스승이었던 조반니 벨리니도 받아들였고, 이후 제자였던 티치아노에게 이어져 베네치아 화파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제, 베네치아 화파 전성기의 주역들을 만날 차례입니다. 방을 옮기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가장 큰 전시실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3명의 거장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 거장의 그림, 실제로 보니...

티치아노, '피에타'(부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티치아노는 죽어가는 예수를 바라보는 늙은 니고데모의 모습으로 자신을 그려 넣었습니다.
▲ 피에타 (부분) 티치아노, '피에타'(부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티치아노는 죽어가는 예수를 바라보는 늙은 니고데모의 모습으로 자신을 그려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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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만날 작품은 티치아노의 <피에타>입니다. 티치아노! 혹시 기억하는지요? 이탈리아에서의 첫 날,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만났던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의 작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났던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작가, 그 티치아노 말입니다. 베네치아 화파의 대가이자 회화의 군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기사 작위까지 수여하며 전속 초상화가로 임명했던 티치아노. 그가 죽기 직전에 남긴 그림이 바로 이 작품, <피에타>입니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나는 다시 한 번 서양 미술사(정확하게는 이탈리아 미술사)를 훑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 당돌하게도 이런 글을 남겼죠.

"한 사람의 생애에 미술사가 되풀이 되고 있었다."

그것은 며칠 전 만났던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와 바로 이 그림, 티치아노의 <피에타>를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화집으로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불경스럽게도 티치아노가 90세 가까운 나이라서 필력이 떨어지거나 노안이 와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도 잠시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나타난 <피에타>는 그런 게 아닙니다. 가로 세로 3미터가 넘는 큰 화면 가득 티치아노의 정신이 살아 있습니다. 아주 작은 붓자국에도 티치아노의 땀과 숨결이 느껴집니다.

말년에 이른 노 거장은 자신의 유언처럼 남긴 작품이자 자신이 묻힐 카펠라를 장식하기 위해 그린 이 작품에까지 그 스스로 완성했던 젊은 시절의 화려한 스타일을 허물고 무채색으로 죽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인물들은 백 년 후 바로크 작가들이나 삼 백 년 후 인상파 작가들의 주인공들처럼 거치디 거친 터치로 마무리 되어 있습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티치아노는 이 그림의 마지막 과정에서 붓이 아니라 손가락을 이용하여 선을 긋거나 면을 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빛을 조절하기 위해 과감히 붓을 버리는 혁신을 시도한 것이죠. 아흔 살 미켈란젤로가 그랬듯, 티치아노도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예술을 안고 스스로를 혁신해 나갔던 것입니다.

죽어가는 예수를 바라보는 늙은 니고데모의 모습으로 자신을 그려넣은 티치아노. 그를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납니다. 인간에게 위대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극복해 가는 것. 죽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해 갔던 티치아노의 정신이 게을러 빠진 내 영혼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티치아노에게서 받은 감동은 다시 그의 제자였던 틴토레토에게로 옮아갑니다. 흔히 매너리즘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틴토레토. 이 곳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는 '성 마르코 연작' 2편을 비롯하여 그의 대표작들 여러 편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성 마르코 연작을 봅니다. 잘 알겠지만 성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입니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성 마르코의 유해를 훔쳐와서 안장한 곳이 바로 베네치아의 중심, '산 마르코 성당'입니다. 그리고 성당이 있는 곳이 '산 마르코 광장'이죠. 며칠 전 나는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에서 <성 마르코의 시신을 발견하다>를 만났습니다. 이곳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는 그 전편과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성 마르코의 시신 피신>과 <노예를 구출하는 성 마르코의 기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틴토레토, '성 마르코의 시신 피신',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 성 마르코의 시신을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까지 모셔오는 과정을 담은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 연작' 중 한편입니다.
▲ 성 마르코의 시신 피신 틴토레토, '성 마르코의 시신 피신',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 성 마르코의 시신을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까지 모셔오는 과정을 담은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 연작' 중 한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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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성 마르코의 시신 피신>은 두 개의 에피소드가 결합된 작품입니다. 이교도들의 손에 순교당한 뒤 화장당할 위기에 처한 성 마르코의 시신. 그런데 그 순간,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내리칩니다. 시신을 방치한 채 도망치기에 급급한 이교도들. 그 틈에 기독교인들이 성 마르코의 시신을 수습하여 교회에 모셨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800여 년 후,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어렵게 성 마르코의 시신을 찾아낸 베네치아 상인들이 그림처럼 몰래 시신을 빼돌려 베네치아로 운구했다고 합니다.

주인공을 화면의 중앙이 아닌 오른쪽에 치우치게 배치한 구도. 투시원근법을 이용한 건물들 사이로 단축법으로 그려진 성 마르코의 시신과 운동감 넘치는 인물들. 틴토레토 특유의 극적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16-3. 아카데미아 미술관 3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조르조네, #티치아노, #아카데미아미술관, #틴토레토,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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