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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 사흘 째, 오늘은 하루 종일 '산 마르코 광장' 주변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제 '두칼레 궁전'에서 나와 바로 옆,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 성 마르코를 기리는 성당인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으로 향합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여러 성물과 성 마르코의 유해를 안치할 목적으로 9세기에 건축을 시작한 이 성당은 11세기에 롬바르디아 양식이 가미되었고 이후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이 혼재된, 전체적으로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입니다. 그리스 십자가의 형상을 본 딴, 이른바 바실리카 양식의 화려한 이 성당엔 총 5개의 돔이 있는데 십자가의 중앙부와 4부분에 돔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지금까지 로마와 피렌체, 그리고 밀라노를 거치면서 봐 왔던 바로크 양식, 르네상스 양식, 고딕 양식의 성당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돔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중 2개의 돔이 보수 공사 중이라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 성 마르코의 유해가 모셔진 성당으로 비잔틴 양식의 성당입니다.
▲ 산 마르코 대성당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 성 마르코의 유해가 모셔진 성당으로 비잔틴 양식의 성당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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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꼭 봐야할 것은 두 말 할 필요없이 비잔틴 성당 특유의 황금빛 모자이크입니다. 성당 내외부의 모든 천장이 성 마르코의 생애와 구약성서, 신약성서의 내용들, 여러 성인들의 삶을 소재로 한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가까이에서 보기 전에는 모자이크란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는 점입니다.

그 정교함을 확인하기 위해 박물관 형태로 개방해 놓은 성당 2층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모자이크를 확인합니다. 새끼 손톱만한 모자이크 조각들, 소름이 돋습니다. 이렇게 작은 조각들을 붙여서, 이런 섬세한 작업을, 이렇게 대규모로 완성하기 위해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공력을 들였던 것일까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황금빛 모자이크는 비잔틴 제국 마지막 수도였던 라벤나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 황금 모자이크 1 산 마르코 대성당의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황금빛 모자이크는 비잔틴 제국 마지막 수도였던 라벤나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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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대성당의 섬세한 황금 모자이크를 보면, 국제 고딕 양식의 회화가 어디에서 탄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황금 모자이크 2 산 마르코 대성당의 섬세한 황금 모자이크를 보면, 국제 고딕 양식의 회화가 어디에서 탄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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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국제 고딕양식은 물론이고 근대 신인상파, 점묘파들도 이 모자이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적어도 베네치아 화파의 색채와 빛에 대한 감각의 또다른 원형이 이 '산 마르코 성당'의 모자이크란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종교적 신성을 위해 주 배경은 황금빛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인물들과 대상들을 이루고 있는 색색의 유리와 돌조각들도 수시로 변하는 빛의 각도에 따라 그에 못지 않은 화려함을 뽐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베네치아 화파의 미적 전통은, 도시를 둘러싼 자연 환경과 수 백 년을 이어온 비잔틴 미술의 전통, 그리고 바다 위의 도시로 모였다가 흩어졌던 수많은 이방의 나라의 다양한 문화들이 이룬 '모자이크'를 통해 완성된 것입니다.

새끼 손톱 만한 조각들로 이처럼 거대하고 섬세한 모자이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 황금 모자이크 부분 새끼 손톱 만한 조각들로 이처럼 거대하고 섬세한 모자이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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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오늘 내 눈 앞에 사정없이 펼쳐지고 있는, 대체 불가능의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 자체도 그 다양한 것들이 모여 이룬 거대한 '모자이크'입니다. 물론 이 아름다움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시련이 역사란 이름으로 흘러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제, '산 마르코 성당'을 나와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으로 향합니다. '코레르 박물관'은 '산 마르코 성당'의 맞은편, 그러니까 '산 마르코 광장' 좌우의 긴 회랑 건물 끝에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하고 나서 거주지로 이용했던 곳이기도 하죠.

지금은 2, 3층을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는데 2층엔 주로 옛 베네치아의 동전들과 고문서, 지도 등이 전시되어 있고, 3층 회화관에는 베네치아 화파들의 작품을 비롯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무시하지 못할 명작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베네치아 시립 박물관인 이곳은 나폴레옹 점령 당시, 나폴레옹의 집무실로 사용된 곳이기도 합니다.
▲ 코레르 박물관 베네치아 시립 박물관인 이곳은 나폴레옹 점령 당시, 나폴레옹의 집무실로 사용된 곳이기도 합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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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시립박물관이기도 한 이 '코레르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틀 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잠시 만난 카르파치오의 대표작 한 작품 정도만 알고 있는 정도였죠.

그래도 기왕 '산 마르코 광장 패스'를 구입했으니 들어나 가보자 하는 심정으로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카르파치오의 작품 외에도 전혀 기대하지 못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관심도가 낮은 2층의 전시실들을 빠른 걸음으로 스쳐지나 3층으로 올라온 나는 베네치아의 풍속과 역사를 담은 그림들을 훑어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낯선 작가들이고, 썩 눈길을 끄는 작품도 없어서 약간 실망감마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작품이 눈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Düre 1471-1528)입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하늘에서의 싸움 ? 용과 싸우는 성 미카엘’, 베네치아 코레르 박물관. 성경책의 삽화로 요한계시록의 한 장면을 묘사한 목판화입니다.
▲ 용과 싸우는 성 미카엘 알브레히트 뒤러, ‘하늘에서의 싸움 ? 용과 싸우는 성 미카엘’, 베네치아 코레르 박물관. 성경책의 삽화로 요한계시록의 한 장면을 묘사한 목판화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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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끝자락인 15세기 말, 독일에서 태어나 스스로를 장인이 아닌 지식인이자 르네상스인으로 인식한 뒤러는 예수상을 닮은, 사진보다 더 정교하고 사실적인 자화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죠. 오늘날까지 독일 회화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뒤러는 그림 뿐만 아니라 판화가로도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나는 그의 판화 대표작 '멜랑콜리아'를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의 바탕화면으로 꾸며 놓았을 만큼 그의 판화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곳 '코레르 박물관'에서 그의 목판화 작품을 만난 것입니다.

'하늘에서의 싸움 – 용과 싸우는 성 미카엘'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성경책의 삽화로 미카엘 천사와 용이 하늘에서 전투하는, 요한계시록의 한 장면을 묘사해 놓은 것입니다. 이전부터 뒤러의 판화 작품들에 주목해 온 나로서는 그의 작품을 실제 보는 것만도 황홀한 기분입니다. 더구나 동판화가 아닌 목판화로 이렇게 정교한 묘사가 가능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마치 현대의 컴퓨터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뮌헨 알테 미술관.
▲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뮌헨 알테 미술관.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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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뒤러는 20대 초반과 30대 초반 무렵 두 차례 이탈리아 여행을 경험했는데 이곳 베네치아는 그의 첫 여행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은 북유럽 화가 최초의 이탈리아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뒤러는 그 여행을 통해 베네치아 화파를 비롯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세례를 흠뻑 받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뒤러의 이탈리아 여행을 북유럽 르네상스의 기원으로 평가하기도 하죠.

이 작품은 1차 이탈리아 여행 후 제작한 그의 초기 걸작 중 하나입니다. 판화이니만큼 이곳 '코레르 박물관' 말고도 여러 곳에 같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래 중앙 부분에 'A'자와 'D'자로 만든 뒤러의 서명이 새겨진 것들만 원판을 통해 제작된 것이라 합니다.

뒤러의 작품에 이어서 만날 작가는, 바로 피터 브뤼겔 2세입니다. 로마에서부터 나를 놀라게 했던 북유럽 최고의 풍속화가 집안, 브뤼겔 일가의 장남인 그는 얀 브뤼겔의 형이자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지옥의 브뤼겔'이란 별명의 그 피터 브뤼겔입니다.

피터 브뤼겔 2세, ‘동방박사의 경배’, 베네치아 코레르 박물관. 북유럽 최고의 풍속화가 집안답게 동방박사의 경배를 겨울 풍경으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 동방박사의 경배 피터 브뤼겔 2세, ‘동방박사의 경배’, 베네치아 코레르 박물관. 북유럽 최고의 풍속화가 집안답게 동방박사의 경배를 겨울 풍경으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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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의 작품, '동방박사의 경배'가 예고도 없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예수 탄생의 순간 별의 움직임을 보고 경배를 드리기 위해 베들레헴의 마굿간까지 찾아왔다는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수없이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브뤼겔의 이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바로 배경이 눈 쌓인 겨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북유럽의 풍속화를 그린 집안이라는 점과 예수 탄생, 즉 크리스마스가 겨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 이 작품은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 있는, 저 위대한 아버지 피터 브뤼겔의 '베들레헴의 인구 조사'와 거의 같은 구도로 그려져 있어 모작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인구 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에 도착한 마리아와 요셉이 마굿간에서 예수를 낳았다는 성경의 내용을 차례로 그림에 옮긴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버지와 아들이 당시 플랑드르를 배경으로 예수 탄생 연작으로 제작한 것이지요. 중심 소재를 화면의 한 구석에 배치하는 브뤼겔 집안 특유의 장면 구성이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할 작품이 또 나타났으니, 바로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의 '성 안토니오의 유혹'입니다.

(18-3, 베네치아 6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산마르코대성당, #코레르박물관, #알브레히트뒤러, #베네치아,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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