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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없이 찾아온 '코레르 박물관'.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작품에 이어 내 눈을 의심할 작품이 또 나타났으니, 바로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의 '성 안토니오의 유혹'입니다. 온몸에 소름이 쭉 돋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히에로니무스 보스를 이곳 이탈리아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근래에 내 상상력을 온통 자극하고 있는 그, 히에로니무스 보스 말입니다.

'성 안토니오의 유혹'은 제목 그대로 성 안토니오가 홀로 수도 생활을 하던 도중 끊임없이 마귀의 유혹을 받았다는 일화를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주의가 지배하던 그 시절 보스는 어떻게 저런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을까? 상상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그 답을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세세하게 묘사했던 그림들이 사실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들을 소재로 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헤리 멧 드 블레, ‘성 안토니오의 유혹’(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양식), 베네치아 코레르박물관. 작품 명패에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양식으로만 적혀 있어 누구의 작품인지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작품 전체에 보스의 기법이 확인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 성 안토니오의 유혹 헤리 멧 드 블레, ‘성 안토니오의 유혹’(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양식), 베네치아 코레르박물관. 작품 명패에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양식으로만 적혀 있어 누구의 작품인지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작품 전체에 보스의 기법이 확인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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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또다시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림 소개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이름 앞에 사족이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양식(Maniera di Hieronymus Bosch)'. 보스의 그림이면 그림이지 '보스의 양식'이란 사족은 왜 붙여 놓았을까요? 그렇다면 보스의 양식으로 누군가가 그린 또다른 그림이란 말인데 그 작가는 또 누구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보스의 그림 중 내가 알고 있는 '성 안토니오의 유혹'은 세 폭짜리 제단화로 리스본의 '성 요한 성당'에 있는 것 뿐입니다.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어쩔 수 없이 구글링으로 찾아봅니다. 그랬더니 이 그림은 정말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양식으로 그려진 헤리 멧 드 블레(Herri Met de Bles 1510-1560)의 그림이었습니다. 

박물관 측의 무신경 때문인지, 아니면 구글링을 통해 발견한 정보가 부정확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약간의 실망감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누구의 작품이든 이 그림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양식으로 그려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온갖 상상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작품이란 말이죠.

이제 마지막으로 '코레르 박물관'의 대표 작품을 만날 차례입니다. 비토레 카르파치오의 '베네치아의 두 여인'입니다. 당시 베네치아의 최신 유행 의상을 차려 입고 테라스에 앉아있는 두 명의 여인. 어딘지 모르게 지쳐 있는 표정도 특이하지만, 강아지들과 놀아주고 있는 모습도 낯섭니다. 그녀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어딘지도 궁금하죠.

비토레 카르파치오, ‘베네치아의 두 여인’, 베네치아 코레르 박물관. 근래에 이 여인들의 정체가 알려져 조금은 환상이 깨어진 느낌입니다.
▲ 베네치아의 두 여인 비토레 카르파치오, ‘베네치아의 두 여인’, 베네치아 코레르 박물관. 근래에 이 여인들의 정체가 알려져 조금은 환상이 깨어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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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인들. 그래서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은 한때 '두 명의 매춘부'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근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그림은 '석호에서의 사냥'이란 작품의 일부라고 합니다. 원래는 큰 그림이었는데 욕심 많은 화상이 작품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팔아버린 것이죠. 결국 이 두 여인의 정체는 매춘부가 아니라, 남편들이 베네치아 석호에서 사냥하고 있는 동안 기다림에 지친 귀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나니 어쩐지 그림이 오히려 심심해진 느낌입니다. 그것은 앞서 만난 '성 안토니오의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 말처럼, 때로는 섣부른 진실보다 무지의 환상이 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법인가 봅니다.

카르파초의 작품을 끝으로 '코레르 박물관'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천천히 '산 마르코 광장'의 바다 쪽 회랑을 걷습니다. 중간에 만난, 로마의 '안티코 카페 그레코'보다 더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은, 오늘은 잠시 아껴두기로 합니다. 아직 중요한 일정이 하나 더 남았기 때문입니다.

산 마르코 광장의 바다 쪽 입구에서부터 안개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 베네치아의 안개 산 마르코 광장의 바다 쪽 입구에서부터 안개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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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를 헤치고 '산 마르코 광장'을 막 빠져 나오는 순간 나는 다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안개였습니다. 성 마르코의 기둥이 서 있는 '산 마르코 광장'의 바다 쪽 입구에서부터 짙은 해무가 말 그대로 물밀듯 밀려옵니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묘사된 '밤새 진주해온 적군'같은 비밀스러운 안개가 아니라 순식간에 밀고 들어와 '산 마르코 광장'과 베네치아를 점령해버린 나폴레옹의 대군같은 안개입니다.

나는 한동안 멍청히 서서 해무가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내내 눈부시게 푸르렀던 베네치아의 하늘은 이미 보이지도 않습니다. 안개는 저 멀리 눈부시게 빛났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도 지워버렸습니다. 곤돌라들은 서둘러 정박하려는 듯 보통 때보다 속도를 더 내고 바포레토들은 벌써 등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안개 도시 베네치아. 그 명성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나는 안개와 경주라도 하듯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일정 '산 자카리아 성당(Chiesa di San Zaccaria)'에서 이미 이슬비로 바뀌기 시작한 베네치아 안개를 피합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이 건축되기 이전 베네치아의 중심 성당이었던 산 자카리아 성당은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아담한 성당입니다.
▲ 산 자카리아 성당 산 마르코 대성당이 건축되기 이전 베네치아의 중심 성당이었던 산 자카리아 성당은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아담한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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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경, 아직 '산 마르코 대성당'이 건축되기 이전에 지어진 '산 자카리아 성당'은 당시 베네치아 지배층의 예배 장소였으며, 도시의 큰 행사가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모습은 15, 16세기 무렵에 완성된 것으로 로마네스크 양식, 르네상스 양식, 고딕 양식이 혼합되어 있죠.

그리고 이 성당에는 베네치아 화파의 기원이자 색채와 빛을 위주로 한 베네치아 화파의 양식적 특성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습니다. 흔히 '산 자카리아 제단화'로 불리는 조반니 벨리니의 '성 모자와 성인들'입니다.

찾아오는 이가 거의 드문 어두컴컴한 '산 자카리아 성당'의 실내. 입구에 서서 바라보면 양쪽 벽 전체가 수많은 그림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성당 내벽에 틴토레토를 비롯한 쥬세페 살비아티, 도메니코 티에폴로 등 베네치아 화파의 작품들이 걸려있죠. 그중에서도 왼쪽 벽 중앙 부분에 위치한 조반니 벨리니의 '성 모자와 성인들'은 보는 순간 시선을 사로 잡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성당이지만 성당 양 쪽 벽에는 틴토레토를 비롯한 살비아티, 티에폴로 등 베네치아 화파의 작품들이 가득 걸려 있습니다.
▲ 산 자카리아 성당 실내 그리 크지 않은 성당이지만 성당 양 쪽 벽에는 틴토레토를 비롯한 살비아티, 티에폴로 등 베네치아 화파의 작품들이 가득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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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전성기를 맞기 시작한 15세기 초반, 피렌체에서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을 습득한 고령의 벨리니는 자신의 고향, 베네치아 화단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자신과 매부 만테냐, 조르조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싹을 틔우기 시작한 빛과 색채의 마법을 마음껏 펼치고 있었죠. 그리고 그즈음, 벨리니는 여전히 자기를 비롯한 베네치아 미술가들에게 미적 영감을 주고 있었던 '산 마르코 성당'의 황금빛 모자이크를 새로운 양식과 접목하려고 시도합니다. 말하자면 비잔틴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통합인 셈입니다.

조반니 벨리니, ‘성 모자와 성인들’, 베네치아 산 자카리아 성당. 노년의 조반니 벨리니는 이 그림에 그 스스로 시작했던 베네치아 화파의 여러 양식들을 통합하여 보여줍니다.
▲ 성 모자와 성인들 조반니 벨리니, ‘성 모자와 성인들’, 베네치아 산 자카리아 성당. 노년의 조반니 벨리니는 이 그림에 그 스스로 시작했던 베네치아 화파의 여러 양식들을 통합하여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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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 자카리아 성당'의 제단화, '성 모자와 성인들'은 그 시도의 결정체입니다. 브루넬레스키의 투시 원근법이 완벽하게 적용된 배경의 건물. 그런데 건물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것은 원근법 뿐만이 아닙니다. 건물의 층위에 따라 달라지는 색조와 빛 그리고 반구의 천장에 인용된 '산 마르코 성당'의 모자이크가 그 입체감에 깊이를 더하죠.

비잔틴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함께 일구어낸, 그 조화로운 공간 앞에 또 다시 베네치아 화파의 유려하고 우아한 색채가 어우러집니다. 말할 수 없이 온화한 색조를 드러내는 인물들의 의복. 다양한 색채는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교차하지 않는 인물들의 어딘지 우울한 시선과 표정에 이르면 심오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다 문득, 성모자 아래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천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전율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 조반니 벨리니는 오랜 활동 기간 내내 유화 물감의 다양한 색채 효과를 실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빛과 음영, 형상과 공기를 융합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제시한 스푸마토와 비슷한 효과도 만들어냈죠. '성 모자와 성인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부드럽고도 따스한 분위기는 벨리니의 끊임없는 실험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이 아름다운 그림 앞에서 나는 조금전 바깥에서 만난 안개를 떠올립니다. 바다에서 밀려와서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베네치아의 안개. 보통의 안개는 우울함을 몰고 오지만 이 시기 우울함은 사람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흔히 창조적 상상력을 가진 천재의 특성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벨리니는 어쩌면, 세계의 법칙과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묘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천재적 예술가(혹은 그 자신)의 구도적 자세를 앞쪽 좌우의 성 히에로니무스와 성 베드로를 통해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늘 외부의 안개에 휩싸일 수밖에 없지만, 결국은 찬란한 문화의 도시를 일구어낸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간간히 지나는 바포레토의 전조등만 보일 뿐 안개에 싸인 카날 그란데도 고요하기 그지 없습니다.
▲ 베네치아의 밤 안개 간간히 지나는 바포레토의 전조등만 보일 뿐 안개에 싸인 카날 그란데도 고요하기 그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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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벨리니를 만나고 '산 자카리아 성당'에서 나오니 베네치아엔 이미 밤이 내렸습니다. 아니 밤안개가 내렸습니다. 간간히 지나는 바포레토의 전조등만 보일 뿐 '카날 그란데'도 고요하기 그지 없습니다. 거리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있으나마나한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수채화처럼 안개에 젖어 있습니다.

나는 늦은 시간 발걸음을 재촉하는 한 무리의 여행객들 뒤를 따르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은은한 실루엣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짙은 밤안개가 원래도 가로등이 적어 어두컴컴한 베네치아의 좁은 골목들까지 스며들어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모호한, 빛과 어둠의 경계선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네치아의 안개는 정말 사람을 우울하게, 아니 멜랑콜리하게 만드는가 봅니다.

베네치아의 밤 안개는 이토록 은은한 실루엣을 만들어 냅니다.
▲ 안개에 싸인 베네치아의 밤 베네치아의 밤 안개는 이토록 은은한 실루엣을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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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베네치아 7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코레르박물관, #산자카리아성당, #카르파초, #베네치아,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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