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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년 베네치아에서 염색공의 아들로 태어난 자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 1518~1594). 그는 본명보다 '어린 염색공'이란 뜻의 별명 '틴토레토'를 더 좋아했습니다. 틴토레토는 어린 시절 티치아노의 문하로 들어갔지만, 티치아노는 천방지축에 재능만 뽐내길 좋아하는 제자를 내치고 맙니다. 이후 그는 '미켈란젤로의 드로잉과 티치아노의 색채'를 미적 목표로 삼고 거의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앞서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작품 <노예를 구출하는 성 마르코의 기적>을 통해 베네치아 시민들의 인정을 받게 되죠. 하지만 베네치아는 여전히 회화의 군주, 티치아노가 지배하는 세상. 틴토레토는 권력자나 부유한 귀족들로부터는 외면받습니다.

부유한 귀족들로부터 외면받은 틴토레토

틴토레토 <영아 살해>.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평신도 단체인 산 로코 스쿠올라의 회당. 틴토레토는 24년 동안 이곳을 장식할 그림을 그렸습니다.
 틴토레토 <영아 살해>.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평신도 단체인 산 로코 스쿠올라의 회당. 틴토레토는 24년 동안 이곳을 장식할 그림을 그렸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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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올라 같은 평신도 단체나 동업자 조합이 주문한 작업을 이어가며 스스로의 양식을 확립해 나간 틴토레토. 그림 그리기 자체를 너무 좋아했던 그는, 주문자의 입맛에 맞게 다른 화가의 양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는가 하면, 짧은 기간 동안 여러 편의 작품을 함께 제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작업 방식은 갈수록 권력자들과 비평가들의 외면을 받습니다. 지나친 다작에다 너무 빨리 작업을 마쳐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죠. 거기다 때마침 등장한 젊은 베로네세가 화려한 귀족적 화풍으로 권력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틴토레토는 더욱 좌절하게 됩니다.

틴토레토, <이집트에서의 성모 마리아>.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헤롯왕의 폭정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한 예수 가족. 낯선 이방의 나라에서 불안한 마음을 틴토레토는 이처럼 어둡게 표현했습니다.
 틴토레토, <이집트에서의 성모 마리아>.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헤롯왕의 폭정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한 예수 가족. 낯선 이방의 나라에서 불안한 마음을 틴토레토는 이처럼 어둡게 표현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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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1564년, 베네치아의 가장 큰 스쿠올라였던 '산 로코 대신도회'가 자신들의 회당을 장식할 작품을 공모합니다. 베로네세를 비롯한 수많은 베네치아의 화가들이 그 공모에 참여했죠. 그런데 틴토레토는 스케치만 제출해야 된다는 규칙을 어기고 다른 작가들이 스케치에 골몰하고 있는 동안 아예 유화를 완성해서는 벽 한 쪽에 설치까지 해버립니다.

기증받은 물품은 내칠 수 없다는 스쿠올라의 규약을 이용한 틴토레토의 계략이었죠. 우여곡절 끝에 '산 로코 대신도 회당'의 내부 장식을 맡게 된 틴토레토. 이후 그는 24년 동안 오로지 이 작업에만 매진합니다.

많은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닌 이 작업을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처럼 여겼던 틴토레토. 1587년, 그는 마침내 50여 점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화와 천장화 작업을 완성합니다. 이 위대한 여정이 완성되자 베네치아인들은 그제서야 틴토레토를, 70세에 가까운 노 거장을 티치아노의 후계자이자 베네치아 화파의 적장자로 인정하게 됩니다.

틴토레토, <빌라도 앞에 선 예수>.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한없이 고독해 보입니다.
 틴토레토, <빌라도 앞에 선 예수>.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한없이 고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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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에 걸쳐 이루어낸 틴토레토의 위대한 업적. '산 로코 대신도회당'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소름이 돋고 숨이 멎습니다. 1층 매표소를 지나자 바로, <수태고지>, <동방박사의 경배>, <영아 학살>, <이집트로의 도피> 등 틴토레토의 명작 8점이 쉴 틈 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계단을 통해 2층에 오르자 또 다른 명작, <최후의 만찬>('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것과는 또다른 작품)과 <그리스도의 승천> 등을 비롯한 크고 작은 수많은 작품들이 모든 벽면과 천장을 빼곡히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틴토레토의 가장 중요한 작품, <빌라도 앞에 선 예수>와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 특유의 색채와 빛, 역동성, 드라마틱한 구성을 엿볼 수 있는 틴토레토의 대표작들이라 부를 만한 대작이고 명작입니다. 특히 24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작품을 지날 때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틴토레토의 화풍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잠시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에도 밝혔듯이 혁신과 노력 없이 현상 유지에 급급한 태도를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라며 비하하곤 합니다. 미술사에서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이후 아직 바로크 시대가 도래하기 전인 16세기 후반의 미술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70세 가까운 노 거장이 돼서야 인정받은 틴토레토

틴토레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매너리즘의 대가 엘 그레코로부터 세계 최고의 그림이란 찬사를 받은 이 대작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후의 사건들을 한 화면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틴토레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매너리즘의 대가 엘 그레코로부터 세계 최고의 그림이란 찬사를 받은 이 대작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후의 사건들을 한 화면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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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의 화가들은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지 않고 르네상스의 화풍을 모방하면서 약간의 기교를 더한 수준에 그쳤다는 점에서, 현실에 안주한 사조라며 18세기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것이죠. 즉, "르네상스 화가들의 솜씨에는 미치지 못했고, 바로크와 같은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 내지도 못했다"며 '현실에 안주한', '천박한', 나아가 '한물간' 미술로서 비판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비난이 합당한 것이었을까요? 르네상스라는 미술사 아니 인류사의 가장 핵심적 사건 이후 이어진 양식에 대한, 그처럼 혹독한 비난이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요? 나는 이곳 '산 로코 대신도 회당'의 틴토레토의 작품들을 보면서 단연코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더구나 틴토레토의 화풍은 피렌체나 로마의 다른 매너리즘 작가들과도 확연히 구분됩니다.

그리고 앞서 만났던 로소 피오렌티노나 브론치노, 엘 그레코 같은 매너리스트들도 누구 못지 않은 혁신적인 화풍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개성과 혁신과 각고의 노력은 무시한 채, 르네상스와 바로크라는 크나큰 분기점들과 비교해서 새로운 화풍을 억지로 '매너리즘'이라 규정짓고 비하한, 18, 19세기 비평가들과 미술사가들이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스쿠올라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배고프고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볼 수 있게, 그림으로 된 성서를, 그것도 저토록 아름답게, 24년이라는 세월을 바쳐 창조해 낸 작가, 틴토레토.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는 자꾸 1층에서 만난 <이집트로의 도피>가 눈에 밟힙니다.

틴토레토, <이집트로의 도피>.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요셉의 모습에서 틴토레토가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요?
 틴토레토, <이집트로의 도피>.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요셉의 모습에서 틴토레토가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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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요셉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거부할 수 없는 신의 말씀. 그 엄청난 운명을 요셉은 어떤 심정으로 견뎌냈을까요? 아니면 마리아에 대한 사랑이었을까요? 신의 말씀으로 태어났다는, 누구의 씨인지도 모를 자식을 낳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신의 말씀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을까요?

다시 그림 속 요셉을 봅니다. 추격하는 로마 병사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마리아와 예수를 노새에 태우고 자신은 지팡이도 챙기지 못한 채 황급히 이집트로 달아나고 있는 요셉. 그 늙은 요셉의 모습에서 틴토레토가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런가 하면, <빌라도 앞에 선 예수>의 한없이 고독한 모습에는 틴토레토 자신의 고독함이 스며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도, 죽은 후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틴토레토. 하지만 후대의 화가들은 그를 '화가 중의 화가'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저 위대한 매너리스트, 엘 그레코는 틴토레토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를 세계 최고의 작품이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까? 그런 사람은 반드시 이곳 '산 로코 대신도 회당'에 와서 틴토레토의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매너리즘 미술'을 통해서 오히려 새로운 시각을 얻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여행 선배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미술관과 성당들을 돌아다니며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간혹 만나게 되는 근, 현대 미술은 왠지 시시하게 느껴지고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된다는... 실제로 나도 피렌체나 토리노, 베로나 등에서 몇몇 근, 현대 작품들(그중엔 심지어, 모딜리아니도 있었습니다)을 접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죠.

그래서 출발 전 일정을 짤 때, 베네치아의 일정 중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Collezione Peggy Guggenheim)'을 넣을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미술 기행'이라는 이번 여행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냐는 것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좁은 골목과 다리를 건너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오로지 현대 미술 작품들만으로 구성된 미술관으로 향하는 기분은 묘합니다. 그것도 이탈리아에서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 베네치아에 자리 잡은 현대 미술관은 그 외관부터 궁금합니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오길 잘했다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베네치아에 와서 30년간 머물렀던 페기 구겐하임의 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입니다. 그래서 규모도 아담하고 소박한 가정집의 느낌이 듭니다.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베네치아에 와서 30년간 머물렀던 페기 구겐하임의 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입니다. 그래서 규모도 아담하고 소박한 가정집의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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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해 잘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 '구겐하임'.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은 페기 구겐하임이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구겐하임 미술관을 뉴욕에도 있는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규모도 크고 가장 유명합니다) 베네치아에 와서 30년간 머물렀던 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미술관보다 규모도 아담하고 소박한 가정집의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전율에 전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시시하게 느껴지는, 현대 미술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에는 몬드리안, 칸딘스키, 샤갈, 피카소, 파울 클레, 잭슨 폴록, 후안 미로, 자코메티, 루치오 폰타나, 살바도르 달리, 마크 로스코,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르네 마그리트까지. 현대 미술의 숱한 영웅들의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단 한 작품만이라도 내 생애 직접 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이들의 작품들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탈리아 미술 기행'이라는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아 작품들과 작가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전시실 거의 끝자락에서 만난, 이탈리아 현대 미술의 슈퍼스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는 언급해야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폰타나도 아르헨티나 출신이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한 '이탈리아 미술'은 아니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기 직간접적으로 이탈리아와 관계를 맺었던 외국 작가들도 소개했던 만큼, 어린 시절 이탈리아로 이주해 와서 밀라노의 '브레라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평생 이탈리아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 폰타나는 충분히 다룰 만한 인물입니다.

하얀 색 수성 페인트가 칠해진 텅 빈 캔버스. 그 캔버스에는 어떤 형상도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캔버스에 남겨진 것은 놀랍게도 칼자국. 그것은 물감의 흔적이 아닙니다. 5개의 날카로운 칼자국이 캔버스를 찢어 놓은 것입니다. 폰타나가 제시한 새로운, '공간 개념, 기대'입니다.

루치오 폰타나, <공간 개념, 기대>.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하얀색 캔버스에 남은 것은 붓자국이 아니라 5개의 날카로운 칼자국입니다. 회화사에 전체에 대한 부정적 혁신입니다.
 루치오 폰타나, <공간 개념, 기대>.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하얀색 캔버스에 남은 것은 붓자국이 아니라 5개의 날카로운 칼자국입니다. 회화사에 전체에 대한 부정적 혁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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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투시 원근법이든, 현대 입체주의든, 그 어떤 묘사 방식을 택하더라도 결국은 2차원, 평면일 수밖에 없는 '회화'. 폰타나는 그 평면의 캔버스를 찢음으로써 유럽 회화 전통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회화'의 근본 중에서 근본이라 할 수 있는 평면을 부정함으로써 말 그대로 새로운 공간 개념을 기대하게 한 것이죠. 그것은 자기 혁신마저도 뛰어넘는 회화사 전체에 대한 부정적 혁신입니다. 이제 회화는 더 이상 평면의 예술이 아닌 것이죠.

그래서 폰타나의 작품 앞에 서면, 그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소름과 전율이 일어납니다. 캔버스를 찢어낸 칼자국의 날카로움이 섬뜩하기도 하지만, 그 칼자국에서 흘러나오는 새로운 개념이 온몸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자신들의 전(全) 역사를 이처럼 완벽하게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개척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폰타나의 작품을 끝으로 전시실에서 나와 미술관 내에 마련된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많은 서양인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작은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동양인이라곤 나 혼자 뿐이었습니다. 나는 수많은 서양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때론 눈물을 훔치고, 때론 미소 지으며, 한 작품 한 작품 놓칠세라 보고 또 보았죠. 베네치아에서 만난 또 다른 행복. 내가 베네치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입니다.

마리노 마리니, <도시의 천사>.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뒤편 카날 그란데와 면해있는 곳에 저렇게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 1901~1980의 명작 <도시의 천사>가 조금은 야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마리노 마리니, <도시의 천사>.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뒤편 카날 그란데와 면해있는 곳에 저렇게 마리노 마리니Marino Marini 1901~1980의 명작 <도시의 천사>가 조금은 야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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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나는 오늘 오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에서 지오토를 만났습니다. 이어서 '산 로코 대신도 회당'에서 틴토레토를 만났죠. 그리고 방금 전 20세기 현대 미술의 수많은 영웅들을 만났습니다. 르네상스의 시초인 지오토와 르네상스의 끝자락인 틴토레토, 그리고 수 백년 후의 현대 미술들까지, 서양 회화 600년의 역사를 하루 동안에 온몸으로 느낀 기분입니다. 정신이 아득합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파도바에서 베네치아로 돌아오고 있을 시간입니다. 그런데 파도바를 스쳐 지나왔다는 후회스러움은 전혀 없습니다. 언젠가, 다음이 또 있으리라 다짐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지금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의 카페테리아에 앉아 있는 내 눈앞에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마치 뒤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밤의 베네치아에 눈이 내립니다.

눈 내리는 베네치아. 파도바에서 지오토를 만나고, 산 로코 대신도 회당에서 틴토레토를, 그리고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현대 미술의 영웅들을 만난 오늘. 베네치아의 밤에 선물처럼 눈이 내립니다.
 눈 내리는 베네치아. 파도바에서 지오토를 만나고, 산 로코 대신도 회당에서 틴토레토를, 그리고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현대 미술의 영웅들을 만난 오늘. 베네치아의 밤에 선물처럼 눈이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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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이제 종반부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모레는 5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멀리 남쪽, '나폴리'까지 가야 됩니다. 나폴리에서 4박 그리고 로마에서의 마지막 2박. 그것도 '소렌토'와 '포지타노', '폼페이'에, '바티칸'까지 만만치 않은 일정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나는 내일 라벤나에 가지 않고, 베네치아에서 하루 더 머무르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 베네치아는 2014년 12월 27일, 오후 7시 30분. 밤의 베네치아에 눈이 내립니다.

(20-1, 나폴리 1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산로코대신도회당, #틴토레토, #페기구겐하임미술관, #베네치아,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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