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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온 지 딱 1년된 '청춘호텔' 요리사 김은영씨.
 군산에 온 지 딱 1년된 '청춘호텔' 요리사 김은영씨.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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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회사 그만두고 나랑 같이 '청춘호텔' 하자. 포차(포장마차)여도 장사는 잘 돼. 혼자 하는 거 너무 힘들어. 같이 하자. 월급도 120만 원은 줄 수 있어."

대열씨는 은영씨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군대에서 만났다. 요리를 즐겨했던 은영씨는 조리고등학교를 나온 대열씨와 친해졌다. 서로 '호형호제' 했다. 제대하고는 살기 바빠서 뜸했다. 떡볶이를 좋아한 은영씨는 분식점 매니저로 일하다가 분식 프랜차이즈 회사의 교육담당자가 되었다. 가맹점 점주에게 떡볶이 레시피와 튀김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

자기 일을 좋아하는 은영씨, 대열씨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계획했던 제주도 여행을 갔다.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면서 고민했다. 대열씨보다 앞서서 한 선배는 이름난 요리사에게 은영씨 말을 해놓았다고 했다. "그 셰프 한번 찾아가 봐, 배울 게 많을 거야"라면서. 그런데 이상했다. 월급이 팍 줄어드는데도 '청춘호텔' 일에 끌렸다.  

"스물일곱 살의 눈으로 봤을 때는 잘 될 것 같았어요. (웃음) 잘 못 본 거죠. 대열이는 강남의 한 주차장에서 밤에만 파스타를 팔았어요. 프랜차이즈는 통계를 낸 다음에 메뉴의 가격을 책정해요. 원 재료비 빼고, 임대료와 인건비, 세금을 빼요. 이윤을 얼마나 남길 수 있는지 계산을 하거든요. 근데 대열이는 파스타 한 접시 팔면 얼마 남는지, 체계가 없었어요."

낮에는 주차장, 밤에는 이탈리안 포장마차 '청춘호텔'. 사람들은 "느낌 있다"고 했다. 손님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손에 쥐는 돈은 없었다. 그 상황에서도 대열씨는 은영씨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줬다. 답답한 은영씨는 대열씨에게 "이거 계속 안고 갈 거냐"고 물었다. 하필 건물주인은 100만 원 받던 월세를 두 배로 올려달라고 했다. '청춘호텔'은 끝났다.

아홉 살 때부터 동생 밥 해주던 소년, 은영

서울 강남의 한 건물의 주차장에서 밤에만 파스타를 팔던 대열씨는 은영씨에게 같이 일 하자고 했다. 유명 셰프 밑에서 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은영씨는 이상하게도 대열씨의 제안에 끌리고 말았다.
 서울 강남의 한 건물의 주차장에서 밤에만 파스타를 팔던 대열씨는 은영씨에게 같이 일 하자고 했다. 유명 셰프 밑에서 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은영씨는 이상하게도 대열씨의 제안에 끌리고 말았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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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씨네 식구들은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경기도 평택에서 서울로 이사왔다. 부모님은 맞벌이, 집에는 어린 은영과 그보다 더 어린 동생 혜민이만 있었다. 아홉 살 은영은 계란밥을 하거나 볶음밥을 했다. 접시에 담아서 동생한테 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먹고 나서는 부엌을 깨끗하게 치워놓았다. 퇴근한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 잘 했어. 가스 밸브만 잘 잠가."

10대 소년이 된 은영은 어머니가 빨리 퇴근하기를 바랐다. 집에 와서 쉬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가 사는 곳은 서울 오류동. 목살집 골목이 따로 있었다. 어머니는 그중에서 가장 잘 되는 고깃집에서 일했다. 은영은 어머니가 퇴근하기 1시간 전에 식당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했다. 사장님은 이 기특한 중학생에게 고기를 구워주었다. 

"초벌구이 해서 나가는 집이었어요. 사장님이 토시랑 목장갑 끼고 고기 굽는 모습이 멋있더라고요. 저도 하고 싶었는데 조리고등학교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해서 서울공고 토목과에 갔어요. 근데 적성에 안 맞았어요. 선생님이 저보고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니?' 말했어요. 저는 건방지게 하고 싶은 것만 할 거라고 했죠."

공고 다니는 학생들도 대학입시 준비를 한다. 은영은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잘 하는 걸 따져봤다. 요리, 다음에는 미술. 예술중학교 다니는 동생 혜민이에게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뭔가를 해달라고 조른 적 없는 은영. 망설이다가 "엄마, 미술학원 보내주세요"라고 입을 뗐다. 어머니는 며칠간 고민한 뒤에야 학원비를 내주었다.   

은영은 6개월 동안 그림 공부를 해서 서울 온수동에 있는 어느 대학 시각디자인과에 들어갔다.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작업들이 재미있었다. 친구들이랑 놀러가고 싶은 데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싶은 나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 1학년 마치고 입대 날짜를 기다리면서는 '월 350만 원 보장'이라는 광고에 홀렸다.

"돈 많이 준다니까 친구랑 둘이 찾아갔어요. 길거리에 서서 팬티와 런닝을 팔래요. 1시간 동안은 그냥 서 있었어요. 안 되겠어서 패딩 위에다 런닝을 껴입고는 '무조건 천 원'이라고 썼어요. 한 장 팔면, 저한테 떨어지는 돈이 100원이에요. 월급 350만 원은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도 첫날에는 지나가는 어머니들 붙잡고 120만 원 어치 팔았어요."

시각디자인 전공했는데 "다른 일 찾아보라"는 교수님

군대에서 은영씨는 대열씨와 처음 만났다. 취사병인 대열씨에게 기본 칼질부터 배웠다. 덕분에 요리를 구체적으로 접했다. 그러나 제대하고는 학과 공부에 충실했다. 한 학기 등록금 320만 원, 4학기 동안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과 동기는 120명, 그중에서 10%만 취업을 했다. 교수님은 졸업을 앞둔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에게 "다른 일 찾아봐라"고 했다.

그래서 은영씨는 한식과 양식 자격증을 따고 분식 프랜차이즈 회사에 다녔다. 그 다음에는 대열씨랑 '청춘호텔'을 했다. 망하고 나서도 둘은 2인 1조. 다시 '청춘호텔'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큰돈 벌 수 있어"라는 말을 믿고서 강남의 부동산 회사에 취직했다. 방이 없는 두 사람은 사무실 소파에서 잤다. 한겨울에도 화장실에서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았다.

"진짜 할 짓이 못 돼요. 젊으니까 그렇게 했죠. 스물아홉 살이었어요. 우리도 장사를 해 봐서 세상을 좀 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방면으로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무작정 밤늦게까지 전단지 뿌리고 다녔어요. 손님한테 계약을 따면, 회사에서는 가격에 따라서 돈을 주는 거예요. 고생만 했죠. 결국, 대열이는 부모님 계시는 군산으로 내려갔어요."

은영씨는 부동산 회사에 남았다. 3년을 버티니까 어느새 '실장님'. 완전히 뿌리 내린 그에게 대열씨는 날마다 전화를 했다. "형, '청춘호텔' 같이 하자, 이번에는 동업하자"고 했다. 군산에 눈이 내렸다고, 새로운 메뉴를 만들었다고, 테이블 가득 손님이 들었다고, 6개월간 보고전화를 했다. 끝날 때 하는 말은 항상 "언제 내려올 거야?"였다.

군산에서 '청춘호텔'을 다시 연 대열씨를 보러 왔던 은영씨. 주방에 서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은영씨는 서울에서 겨우 자리 잡은 '실장님'인데 요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군산에서 '청춘호텔'을 다시 연 대열씨를 보러 왔던 은영씨. 주방에 서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은영씨는 서울에서 겨우 자리 잡은 '실장님'인데 요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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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에 군산 왔어요. 대열이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오자마자 '형, 주방 들어와야지' 그래요. 와! 그때 느낌이 팍 터진 거예요. 하고 싶은 거니까요. 토요일에 자고, 일요일 밤에 마지막 손님의 음식까지 하고 서울 갔어요. 운전하면서 계속 생각했죠. 부동산 일은 큰돈을 만지니까 버릴 수가 없어요. 그런데 흔들리더라고요. 제 속을 건드린 거죠."

2015년 1월 3일, 은영씨는 짐 싸서 군산으로 내려왔다. '청춘호텔'은 15평, 뒤에는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짜리 살림집이 붙어 있었다. 은영씨와 대열씨는 거기서 잤다. 일어나면 바로 가게 나가서 음식을 하고 손님을 맞았다. 장사 끝나면 들어가서 잤다. 대열씨와 친한 사이, 그러나 24시간 붙어있는 생활은 답답했다. 다시 군대에 온 것 같았다.

한 달에 쉬는 날은 두 번. 은영씨는 무조건 서울에 갔다. 친구도 없고, 식구들도 없고, 동네마저 낯선 군산에 정이 안 들어서 그랬다. 지방에 내려온 건 생각할수록 후회스러웠다. 대열씨는 "내가 아는 은영이형 맞어? 왜 이렇게 열정이 없어졌어?"라고 따지지 않았다. 마음잡기를 기다리면서 "형이 정신 차려야 청춘호텔이 잘 돼"라고 말했다.    

"4월쯤 되니까 괜찮아졌어요. 밤에 일 끝나고 벚꽃도 보러 갔어요. 초여름까지 신나게 장사했어요. 서울에서 '청춘호텔' 할 때보다 월급을 더 가져갔어요. 근데 메르스가 터졌어요. 사람들이 집에서 안 나오죠. 우리는 '이때다' 하고 공사 들어갔어요. 우리가 자는 방 위쪽에 작은 복층이 있어서 창고로 썼거든요. 예전부터 방을 없애고 2층으로 꾸며보고 싶었어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복층을 만들겠다고 벌인 공사. 한 달 반을 예상했는데 네 달이 걸렸다. 실수할 때마다 뜯고 새로 시작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복층을 만들겠다고 벌인 공사. 한 달 반을 예상했는데 네 달이 걸렸다. 실수할 때마다 뜯고 새로 시작했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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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기간은 한 달 반으로 잡았다. 품삯이 비싸니까 다른 사람을 쓰는 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공구 하나씩만 들고서 방 천장을 뜯어나갔다.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손님들은 "언제 열어요?"라고 물어왔다. 은영씨와 대열씨는 초조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다. '이왕 공사하는 김에 확실하게 하자'면서 자기체면이라도 걸 수밖에. 

날마다 하루 11시간씩 일했다. 공사는 착착 진행되지 않았다. 인테리어 회사는 대개 도면을 뽑아놓고 순서대로 일을 진행한다. 은영씨와 대열씨는 스케치만 한 채로 공사를 했다. 2층 올라가는 사다리는 완성하고 보니까 경사가 급했다. 뜯어내서 다시 용접했다. 일주일간 만든 화장실 물을 내린 순간, 아래층에 있는 당구장으로 쏟아졌다. 

"전문가였으면 순차적으로 진행했겠죠. 모르니까, 우리는 실패를 많이 했어요. 바닥에 에폭시 공사를 했는데 사흘 지나도 안 말라요. 인터넷 찾아보고 다시 뜯어냈죠. 근데 좋을 때도 있었어요. 나무 사와서 목공 공사할 때 진짜 재밌었어요. 단골손님 중에 공방 사장님이 있었는데 쓰라고 공구를 4개월 동안 빌려줬어요. 커피 사들고 오는 손님들도 있었고요."

성곤씨, 은영씨, 대열씨. 성곤씨는 원래 청춘호텔 단골 손님. 공사할 때 도와주러 왔다가 이제 같이 일한다.
 성곤씨, 은영씨, 대열씨. 성곤씨는 원래 청춘호텔 단골 손님. 공사할 때 도와주러 왔다가 이제 같이 일한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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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공사는 네 달 만에 끝났다. 아파트 설비 일을 하는 단골손님 한성곤(32)씨는 은영씨와 대열씨를 돕기 위해 꾸준하게 찾아왔다. 그러더니 아예 전업 선언! '청춘호텔'에서 일을 하며 음식을 배운다. 개업하고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에는 각자 월급 50만 원씩 가져갈 수 있었다. 은영씨 어머니는 "잘 했다. 적자 안 난 게 어디니?"라고 기뻐했다. 

은영씨는 혼자 방을 얻어서 산다. 오전 10시에 출근한다. 주방에서 요리할 때는 무아지경, 잡생각이 없다. 음식을 접시에 담을 때는 행복하다. 대열씨에게 배운 대로 손님들에게 직접 가져다주고 설명한다. "형, 같이 하자"고 끊임없이 조르고 흔든 대열씨가 없었다면, 영영 모르고 지냈을 세계. 오후 3시에 첫 끼니를 먹고, 자정 가까워야 퇴근하는 생활이 좋다.

이제 은영씨는 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 그래도 가끔씩 올라가서 새로운 메뉴를 먹어본다. 하고 싶은 게 있어서다. '청춘호텔'이 자리 잡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음식을 파는 식당도 꾸려보고 싶다. 군산에 온 지 만 1년 된 은영씨, 작은 도시의 매력을 알았다. 서울에서만큼 치열하게 산다면, 더 큰 성취를 맛볼 수 있는 곳. 그는 군산이 맘에 든다고 했다. 

공사 마치고 다시 연 청춘호텔. 재개업 했어도 적자는 아니다. 50만 원씩 월급을 가져갔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공사 마치고 다시 연 청춘호텔. 재개업 했어도 적자는 아니다. 50만 원씩 월급을 가져갔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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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매거진군산> 2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주방에 서자마자 심쿵!, #요리사 김은영, #군산 청춘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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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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