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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둘째주까지 국내의 거의 모든 특성화고는 지방경기대회를 개최하느라, 또 참전하느라 눈코뜰 새 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청소년 기능인들이 모여 기량을 뽐내는 지방경기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을 첫 목표로 시작해 전국대회 수상, 나아가 세계 여러 국가가 참가하는 기능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고등학교 3년을 모두 희생하는 이들. 대부분의 특성화고의 한켠에 자리잡고있는 이들을 우리는 '기능반'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매년 지방경기대회에 출전하는 수만 명의 기능반 학생들 중 금·은·동색 트로피를 얻는 학생은 겨우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전국경기대회에 나가서도 걸러진 그 극소수의 학생들이 또 고배를 마십니다. 기능올림픽 출전권을 받는 학생 수에 기능반 학생들의 수를 비견한다면, 이는 '로또'와 비견할 수준의 경쟁입니다.

청소년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동네 1318] 안에 작은 기획 하나를 더 넣어봅니다. 전국 각 특성화고의 다양한 기능반 학생들을 다섯 차례에 걸쳐 인터뷰하고, 마지막 차례에는 기능반 제도의 맹점과 기능인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다뤄봅니다. 이 작은 기획의 이름은 '청소년기능인'입니다. 첫 번째에는, 제 모교이기도 한 용산공업고등학교의 옥내 제어 기능반에 소속된 학생들을 인터뷰해봤습니다. - 기자 말

아무리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어렵다지만, 기능경기대회만은 1970년대 첫 금메달이 한국에서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통로'로 많은 이들의 흠모 대상이 돼 왔다.

지금은 관심이 많이 식었지만, 산업화 붐이 일어났던 시절이었던 1970년대에는 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던 수상자들과 대통령이 오찬을 가지고, 수상자들이 서울 시내를 카퍼레이드 하는 등 이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지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맞먹었을 정도였다고 하면 될까.

가장 오랫동안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한국에 메달을 안겨준 효자종목인 옥내제어 종목은 여러 번의 금메달 수상을 이뤄내면서 대한민국이 종합 우승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하는 법, 이들은 지방대회에서 수상을 하고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10월에 있을 전국대회를 대비해야만 한다. 전기라 체력소모가 커 중간중간 먹을 것을 먹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팽겨친 채 요동치는 드릴과 매일 씨름하고 있다.

여러 밤을 새우고 여러 날을 집에 가지 못한 채 연습한 결과로, 이번 서울지방경기대회의 옥내제어 부문에서 금메달과 동메달 하나씩을 수상, 전국대회 출전권을 따낸 용산공업고등학교의 기능반 학생들을 지난 14일 만나봤다. 사실 이들과는 거의 매일 얼굴을 마주치고 다니니 '만난다'보다는 '따로 시간을 냈다'는 표현이 조금 적합하지 싶기는 말이긴 하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왼쪽부터 최동규 씨, 구희원 씨, 정선오 씨, 안혜민 씨, 양희건 씨. 이 중 오영재 씨는 사정이 있어 빠졌다고 한다.
▲ 기능경기대회 수상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학생들 왼쪽부터 최동규 씨, 구희원 씨, 정선오 씨, 안혜민 씨, 양희건 씨. 이 중 오영재 씨는 사정이 있어 빠졌다고 한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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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매일 학교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사이라 막상 각잡고 인터뷰를 하자니 쑥스럽긴 하다. 자기소개와 어떻게 기능반에 들어왔는지 계기를 들려달라.
최동규 : "용산공업고등학교 1학년이다. 옥내제어 기능반에 소속되어 있다. 2월에 KBS 다큐멘터리에서 세계기능올림픽에 출전한 사람들을 찍은 이야기를 보고 기능반에 들어오게 되었다."

양희건 : "용산공업고등학교 새내기다. 가족들에게 기능반에 웬만하면 들어가라는 권유를 받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지원했다."

오영재 : "이번에 1학년으로 입학한 용산공업고등학교 학생이다. 학교에서 기술을 배워가려고 왔는데, 옥내제어 기능반에 대해 입학 하고 처음 알고 바로 기능반에 들어왔다."

안혜민 : "용산공업고등학교 1학년 옥내제어 기능반이다. 학교 교실 앞의 기능반 홍보문을 보고 기능반에 들어오게 되었다."

구희원 : "2년째 기능반실에 있었다. 2학년이다. 이번에 열린 서울시 지방경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었다. 입학 전부터 기능반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기능반에 들어왔다."

정선오 : "용산공업고등학교 3학년이다. 옥내제어 기능반에 소속되어서 작년에 울산에서 열린 전국경기대회에 보조선수로 출전했었고, 올해엔 서울시 지방경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선생님의 권유로 들어와 3년째 기능반실에서 훈련하고, 먹고, 자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옥내제어'가 생경한 당신에게

- 옥내제어라는 분야에 대해 설명해주면 좋겠다. 전기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정선오 : "옥내제어라는 분야에 대해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우리 주변에 있는 이야기이다. 건축물 안에 있는 전등을 비롯해 콘센트 등, 전기를 다루는 모든 실내를 컨트롤하는 분야다. 가장 비슷한 것을 뽑자면 아마 '전기기능사' 취득자가 하는 일이 옥내제어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구희원씨가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여 찍은 사진. 앞에 만들어지고 있는 이것이 옥내제어판이다.
 구희원씨가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여 찍은 사진. 앞에 만들어지고 있는 이것이 옥내제어판이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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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내제어 훈련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 하루 일과가 어떤가.
정선오 : "학교에 오는 시간부터가 다르다. 보통 학생들이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8시 10분인데, 기능반은 오전 7시까지 도착해야만 한다. 7시에 청소를 하고 점심시간까지 작업을 하면 1시간 정도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다시 오후 1시께부터 오후 5시께까지 작업을 계속하면 저녁이다. 저녁에 1시간 정도 쉰다.

보통 작업은 일찍 끝날 때도 있고 빨리 끝날 때도 있는데, 빨리 귀가할 일이 없는 이상 오후 10시 전후까지 PLC 작업이나 보조작업을 한다. 작업이 길어진다면 새벽까지 작업을 하게 되는데, 막차가 끊기면 여기서 밤샘작업을 한다고 보면 된다. 어중간하게 끝나면 기능반실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구희원 : "나는 3학년과 거의 비슷하다. 3학년처럼 기술을 손에 제대로 익힐 때고 같이 지방대회에 나간 터라, 거의 똑같은 일과를 보내고 있다."

최동규 : "오전 5시에 일어난다. 학교 도착하면 7시다. 아침 조례 시간까지는 청소하고, 선배들 재료를 챙긴다. 오후 4시까지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다. 오후 4시에 기능반실에 도착하면 이미 완성된 작업물을 철거한다.

철거하면서 선배들의 작업물을 직접 어떻게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원래의 작업물을 반대로 돌려놓으면서 자연스럽게 공구나 재료의 위치도 익히고, 나중에 작업할 때의 요령을 알 수 있다."

"몸 많이 상하지만... 전문성 얻을 수 있어"

아침먹고 작업, 점심먹고 작업, 저녁먹고 작업. 마치 어촌의 굴 까는 작업장과 비슷한 작업이 아닐까. 작업표 뒤로 캐비넷 안의 이불이 보인다.
▲ 빡빡한 하루일과표. 아침먹고 작업, 점심먹고 작업, 저녁먹고 작업. 마치 어촌의 굴 까는 작업장과 비슷한 작업이 아닐까. 작업표 뒤로 캐비넷 안의 이불이 보인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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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반 생활의 장단점을 묻고 싶다. 어찌 보면 '특목고의 야자시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부담감이 크지 않는가.

정선오 :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집에 한 달에 한 번 들어가면서 부모님을 뵈지도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못하고, 기능반을 하면서 몸이 많이 상한다. 매일 고속절단기를 쓰면서 나오는 가루를 들이마시고, 내내 요동치는 드릴을 잡으니 말이다.

하지만 장점도 많다. 다른 학생들보다 더 먼저 취업할 수 있는 취업우선권이 주어지고, 사회를 기능경기대회를 통해 더 빨리 경험할 수 있다. 기술 연마도 할 수 있고, 학교장 추천서도 주어진다. 기능반 생활을 하면서 기능반 인원들과 단합력도 기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구희원 : "중학교 때 자신이 어떻게 살았던, 되돌릴 수 있는 좋은 길이 기능반 생활인 것 같다. 선배와 후배와의 돈독한 관계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메달을 땄지만, 메달을 못 따게 된다면 3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양희건 : "어쩔 땐 집보다 여기가 편할 때도 있다. 집안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고 회피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오래 떨어져 지내다보니 어느 정도 상쇄되긴 한다."

최동규 :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러 가는 게 많이 힘들다. 너무 일찍 나온다고 해서 어머니가 아침에 저녁 도시락을 싸 주신다. 장점이 있다면, 취업에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동급생보다 전문성에서는 우위에 서니 말이다."

정선오씨가 컨트롤박스를 조정하고 있다.
▲ 지방기능대회 본대회에 나간 정선오씨 정선오씨가 컨트롤박스를 조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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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에 나갔었던 정선오씨와 구희원씨에게 질문하겠다. 선오씨는 보조선수 경력까지 합치면 두 번, 희원씨는 한 번 출전을 했다. 약 4박 5일씩의 대회에 참여하는 동안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정선오 : "전국대회는 선수들의 대기시간이 길어서 지치는 경우가 많고, 관리위원과 선수들의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도 많다. 관리위원들이 다들 학생 자원봉사자들이니 선수들과 관리위원이 나이차가 '쌤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조선수는 재료 분배를 돕고, 선수의 작업을 돕는 역할을 하는데, 보조선수의 도움으로 부정행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회가 시작한 뒤 꽤랜 시간이 지나서 들여보내준다.

그때 보조선수로 참전했었는데, 아홉 시간을 경기장 밖에서 대기하다 들어갔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기능경기대회에 참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구희원 : "훈련을 하면서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은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경기에 참전하면서 처음으로 다급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됐다. 배관도에 배치하는 기구를 실수로 부숴먹었었다.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홀 가공(전기에서, 컨트롤 박스에 배관을 연결하는 구멍을 뚫는 것) 실수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후 경기 때 메달을 딸 수 있다는 확고한 느낌이 들면서, 다시 자신감이 생겼다. 그 자신감 덕분에 결국 메달을 딸 수 있었다.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이었다."

- 보통의 성인 전기기술자보다 전기에 더 많은 시간을 청소년기에 소모하니, 체력 소모가 심할 것 같다. 실제로 본인도 자격증을 대비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달렸으니 말이다. 나만의 체력 보충 팁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구희원 : "친구를 만나면서 활기를 되찾는다. 다른 또래처럼 노래방도 가고, PC방도 좀 가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오히려 힘을 쓰면서 스트레스도, 뭉친 체력도 풀어지는 것 같다. 사실, 1학년들은 지금 큰 작업에 투입되지 않고 있어서, 그렇게 체력을 소모할 일도 없는 것 같다."

오영재 : "아침에 5시에 일어나는 건 딱히 특별한 약이 없다. 그냥 골골대면서 다니고 있다."

정선오 : "쉴 때는 그냥 내내 푹 쉬는 것이 체력 보충이다. 부모님이 왜 주말에 피곤하시다며 TV만 보면서 누워있는지 이해가 되더라."

- 마지막으로, 전기를 전공하는 공업계열 학교의 동급생들, 그리고 옥내제어 분야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달리는 후배, 동급생들을 위해 응원의 한 마디를 해달라.
안혜민: "기회는 한 번밖에 없으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각자 최고의 결과를 냈으면 한다."

양희건 : "전국에 있는 모든 기능인들이 메달을 하나씩은 가지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희원 : "살면서 딱 한번, 심지어는 그 한번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기회가 기능올림픽 출전이다. 열심히, 그러니까 이번이 삶의 마지막이라고 여기고 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 오디션 프로그램의 광고멘트와는 다르게, 일생에서 진짜 처음이자 마지막인 기회이지 않는가."

최동규 : "우리 학교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선배들, 꼭 메달 땄으면 좋겠다. 꼭 열심히 해서 좋은 기업에 취업하면 좋겠다."

오영재 : "각자의 길에서 각자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정선오 : "자기가 이 분야의 최고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최고라고 생각하면 진짜 최고가 되는 법이다."

그들의 '훈장'

이들이 생활하고 작업하는 터전, 옥내제어 기능실
 이들이 생활하고 작업하는 터전, 옥내제어 기능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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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반에 있는 학생들의 '꿈'은 기능경기대회에 우선하고 있다. 어찌보면 올림픽을 위해 달리는 운동선수 만큼이나, 아니면 아이돌을 위해 무한정의 연습에 매진하는 연습생과 비슷하다.

이들의 꿈 안에는 다른 모든 자신의 꿈을 포기한만큼의 꿈이 들어가 있다. 그만큼 메달을 위해, 즉 숙련된 기술을 갖기 위해 자신의 시간, 특히 가족들과 함께하고 친구들과 함께할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메달의 수는 단 세 개로 한정돼 있고, 모두가 메다을 목에 거는 건 큰 욕심일지 모르지만 이들이 하나만은 얻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다. 다름아닌 자신이 이 일을 열심히 한 데에 대한 보상, 자신이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훈장'이다. 나만의 훈장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번 기능대회에 참여한 고등학교 기능반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수상실적이 없어도 좋습니다. 제보는 trainholic@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



태그:#기능인재, #기능반, #고등학교,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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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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