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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출판계에 미디어셀러 바람이 불었다. 미디어셀러란 스크린셀러와 드라마셀러를 합친 말로, 인기를 끈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셜록 홈즈-모리어티의 죽음>, <유성의 연인>, <캐롤>, <룸> 등 소설은 물론 <바다 한 가운데서>와 같은 논픽션, <미생>과 <치즈인더트랩> 같은 웹툰까지가 모두 미디어셀러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미디어셀러로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듯하다. 바로 팟캐스트셀러다. 2012년 <나는 꼼수다> 이후 라디오의 경쟁자로 급부상한 팟캐스트는 정치, 사회부문부터 스포츠, 문화, 코미디, 성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관심을 받아왔다.

그래서일까. 팟캐스트가 책으로 묶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정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뤄가며 지속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팟캐스트의 특성과 팟캐스트 청취자 가운데 상당수가 책을 자주 읽는 독자층이라는 특징이 맛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서점가에 상륙한 강력한 팟캐스트셀러

책 표지
▲ 끝까지 물어주마 책 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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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책으로 묶여 나온 팟캐스트를 모두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마니아층을 확보한 팟캐스트 상당수가 책으로 출판돼 왔기 때문이다.

팟캐스트셀러라 이름붙일 수 있는 유명 저작만 뽑아보더라도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진짜안보>,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과학하고 앉아있네>, <잉글리시 인 코리언(English In Korean)>,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 현대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등 십수 권에 이른다.

미처 다 적지 못한 팟캐스트셀러 목록은 올 한 해 동안 더욱 길어질 게 분명하다. 팟캐스트계 부동의 강자들이 연이어 책을 출간했고 또 출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위즈덤하우스가 펴낸 <끝까지 물어주마> 역시 이 가운데 하나다.

강력한 팟캐스트셀러 가운데 하나인 <끝까지 물어주마>는 잘 나가는(4월 19일 현재 팟캐스트 서비스 사이트 팟빵 기준 2위다) 정치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비롯된 저작이다. 정봉주 전 국회의원부터 최강욱, 이재화 변호사, 하어영 기자까지 네 명의 진행자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책에는 팟캐스트가 진행된 2년여의 시간 동안 다뤘던 수많은 주제 가운데 한국사회를 뒤흔든 주요 이슈 10가지가 선별돼 실렸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떨어질 줄 모르는 전세값, 폭증하는 가계부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쌍용자동차 대법원 판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김영란 법, 국정원 해킹 사건, 일본의 보통국가화, 그리스 경제위기가 그것들이다. 각각이 모두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주제들인 만큼 한국사회의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내다보기 좋은 책이라 하겠다.

한국사회의 민낯을 마주하고도 절망하지 않는 법

팟캐스트 이미지
▲ 정봉주의 전국구 팟캐스트 이미지
ⓒ 정봉주의 전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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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정봉주의 전국구' 방송 내용을 재편집한 대화록 형식이다. 주제별로 구획된 각 장의 앞에 해당 주제에 정통한 게스트나 진행자가 쓴 짤막한 글이 실려 사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다.

본문에선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 박주민 변호사, 코리아연구원장 김창수 박사 등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진단과 분석이 이어진다. 소문난 진행자들의 적절한 개입, 통쾌한 정리는 또 다른 재미다.

<끝까지 물어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사안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 이들이 다룬 주제 가운데 일찍이 다루지 않은 내용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우리 사회가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문제를 알고 있으나 거대한 장벽에 부딪혀 지나친 문제들을 '정봉주의 전국구' 팀이 끝까지 물고 놓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한 각 주제는 끝난 것이 아니다.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다"는 요기 베라의 말처럼.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세 번째 장, '왜 폭증하는 가계부채 내버려두는가?'였다. 폭증하는 가계부채, 특히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빚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활동하는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와의 방송은 한국사회의 맨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사회가 주목하지 않고 통계에서조차 몰아내고 있는 서민의 삶이 어떠한 지경에 이르러 있는지 알리려는 그녀의 노력으로부터 한국사회의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연체가 없는 제도금융권의 가계부채만 1200조에 이른다는 통계. 그리고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수많은 채무자들. 규모도 숫자도 잡히지 않는 부채가 한국사회의 수많은 서민들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동안 국가는, 정부는 어디에도 없다.

정부가 외면하는 현실, 그 현실 가운데서 싸워온 제윤경 대표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세 번째 장은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익히 알고 있음에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의 오늘을 낱낱이 까발린다.

하지만 제 대표와 진행자들이 견지하는 끈끈하고 질긴 태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암담한 현실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는 법을, 변함 없는 현실 속에서도 낙담하지 않는 법을 몸소 보여주는 듯하다.

제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제20대 국회에 들어가게 됐다. 제도권 밖의 문제를 들고 제도권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그녀의 활약을 더욱 유심히 살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끝까지 물어주마>(정봉주, 최강욱, 이재화, 하어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12. / 15000원)



끝까지 물어주마 - 왜가 사라진 오늘, 왜를 캐묻다

정봉주 외 지음, 위즈덤하우스(2015)


태그:#끝까지 물어주마, #정봉주의 전국구, #정봉주, #위즈덤하우스,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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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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