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마, 우리 아들~"통곡하던 어머니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다 끝내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번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아무개(19)씨 발인이 9일 오전 이뤄졌습니다. 김씨는 특성화고 졸업생입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특성화고. 이런 특성화고에 재학하는 학생은 30만 명이고, 이 중 3분의 2 정도는 취업 전선에 뛰어듭니다. 이들은 김씨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옆동네 1318>에서 좌담회를 기획했습니다. 상업계 특성화고 졸업생 한 명과 공업계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 두 명, 공업계 특성화고에 다니는 기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기자말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하청 문제나 '메피아' 문제가 드러났다. 하지만 언급되지 않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바로 취업해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노동을 이어가는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사고의 피해자가 되는 현실이다.
손에 펜 대신 인두기를, 니퍼를, 그리고 키보드를, 계산기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특성화고 졸업생이 겪는 비애, 그리고 특성화고 제도 자체의 문제점,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서 말이다.
충남 천안에 있는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는 고3 K씨, 경기 고양시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는 고2 E씨, 경기 수원시의 한 특성화고를 졸업해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고 있는 스무 살 Y씨, 세 명을 서울 대방동의 한 모임공간에서 지난 4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월급 140만 원, 밥 못 먹더라도 구의역 그 친구처럼 했을 것"
- 구의역 사고 피해자가 특성화고 출신이었다. 실제 특성화고를 출신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떤가.Y: 구의역에서 사고를 당한 청년의 월급이 140만 원 정도라고 한다. 특성화고를 다니는 입장에선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이고, 정말 회사 잘 간 것이다. 난 산업기능요원 복무 끝날 때까지 세전 100만 원을 받는다. 세금 떼면 88만 원 세대보다 못하다. 나였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밥을 못 챙겨먹더라도 그 친구처럼 그 회사를 갔을 것이다.
E: 사람들이 특성화고를 추천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대졸자도 가기 힘든 기업을 특성화고 학생이 대졸자에 비해 쉽게 갈 수 있다고 한다. 난 이 말에서 반박하고 싶다. 대졸자도 가기 어려운 기업인데 특성화고 졸업자가 가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겠는가.
K: 대기업의 경우에는 특성화고 졸업해 취업한 사람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조건이 있는데, 군대를 다녀오라고 한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면 재계약을 안 한다. 복직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다행히도 들어갈 수 있는 비율이 있는데, 많아야 20%다. 아는 형은 중소기업 사원이 되어 군대를 다녀왔는데 회사가 부도가 나질 않나, 회사가 나몰래 이사를 가고 번호도 바뀌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E: 학교에 취업의뢰서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바에야 차라리 알바를 주 5일로 8시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정말 고졸취업자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노동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다.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환경미화원이 되지 말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회의 인식이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에 취업할 사람들은 우리 입장에서 정말 잘나가는 '정규직 공무원'으로 보인다.
- 특성화고는 4대보험만 적용이 되면 취업으로 인정한다. 취업의 질을 안 보고 양만 따진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Y: 취업이 잘 된다, 뭐 이런 말들이 있는데, 실상을 파고 보면 과대포장 그 자체다. 같은 학교 다니던 친구는 제약회사 갔다가 지문이 사라져서 퇴사했다. 머그컵도 제대로 못들 정도이다. 보니까 거기에서 일하던 웬만한 사람들이 지문이 사라져 있더라.
K: 취업에도 급이 있다. 대기업 밑은 중견기업, 중견기업 밑은 강소기업, 강소기업 밑은 중소기업, 중소기업 밑에는 소기업, 그 밑은 영세업체다. 그마저도 안 되면 새벽에 남구로역에 모이는 신세다. 그야말로 하나의 피라미드다. 다들 대기업으로, 공기업으로 가려는 이유가 있다. '열정페이'로 조그만 기업에 일하러 갔는데, 숙소도 컨테이너 박스에 대충 차려놓고, 사흘 동안 고생만 하다가 왔다.
Y: (취업하는 대신)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회유를 한다. 요즘에는 일 학습 병행제, 선취업 후진학, 학점은행제, 사이버대학, 재직자전형(산업체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특성화고 졸업생이 지원할 수 있는 대학 입학 전형)도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제도를 이용해보려고 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이버대학을 나오고, 학점은행을 수료한다고 해서 대학 졸업자와 비슷한 취급을 받을 수도 없고.
K: 재직자전형이 조금 어이없다. 어떤 대학은 야간대가 없어서 일하면 도저히 다닐 수가 없는데, 야간대가 있는 학교도 야근하면 못 간다. 양해해 주는 회사조차도 거의 없다. 사실상 있으나 마나다.
<카트> 보여줬다고 항의... 노동 교육은 전무하다
- 언론에서 그나마 주목하는 것은 공업계열 고등학교 졸업자들의 현실이다. 상업계열 고등학교 역시 공업계열 고등학교보다 낫지는 않을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공업계열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보다 더 박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Y: 흔히 말해 회사에서 '바리스타' 역할을 하게 된다. 바리스타 외에도 청소부 아줌마도 되고, 김비서도 되고, 박기사도 된다. 다시 말해 믹스커피도 타오고, 사무실 청소도 하고, 비서 역할도 하고, 대리운전도 한다. 잡일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운전면허가 있다는 사실을 아직 회사는 모른다. 알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 봐도 비디오기 때문이다.
수습기간은 누구나 겪게 되고, 이런 일은 대졸자도 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졸자가 잠깐의 수습기간을 거치고 일에 투입되는 데 반해 전문적인 일에는 숙련되었다고 할 수 있는 고졸자는 수습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다. 나도 수습을 10개월 정도 했었는데, 그 때 월급이 세전 50만 원 정도였다. 야근은 야근대로 시키면서, 잔업은 또 잔업대로 시키면서, 주말도 회사에 상납까지 하면서 말이었다. 말이 좋아 수습사원이지, 10개월짜리 노예였다.
K: 고졸들은 헬조선을 외칠 수조차 없는 존재다. 사회부터가 암묵적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인간 취급을 안 해주기 때문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잉여인간"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사회문화 전반에 대졸자 미만은 사람취급하지 않는 풍토가 퍼졌다. 자연스럽게 자괴감이 든다. 그리고 고졸자는 대졸자나 대학 재학생에 비해 무언가를 할 시간도 적다. 잔업에, 야근까지 하고 나면 무언가 할 시간이 아예 안 난다. 대졸자보다 더 심하다.
- 사망 등 산재처리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 해결할 방법은 다들 알고 있나. 애초에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학교도 많을 것이고, 실제로 보상을 받은 사례도 매우 적은 것으로 안다. E: 성희롱 예방교육 정도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싫어요',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정도다.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산재처리나 노동법, 노동과 관련된 갈등이 있을 때 해결할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기 말 기간에 교사가 영화 <카트>를 보여줬다가 학부모에게 항의를 받았던 사례가 있었다.
Y: 취업했다가 사고로 인해 손이 절단된 선배가 있었다. 다행히 봉합 수술을 하긴 했지만 산재처리는 못 받고, 보상금만 받고 끝난 것으로 안다.
- 특성화고 자체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K: 졸업 뒤에 애프터서비스가 없다. 하물며 물건도 A/S를 해주는 마당인데 취업 나가고, 졸업하면 그걸로 끝이다. '너는 사회인이니까 알아서 해라'다. 공립 특성화고는 졸업 후에 학교로 오면 일자리를 주선해 주지만, 사립은 확실히 없다.
Y: 현실은 시궁창이다. 졸업 후에는 학교 차원의 일자리 주선도 없다. 취업이 되어 현장실습 형태로 회사에 갔다가 퇴사하면 '애들 면접 기회를 뺏는다', '왜 다시 그만두고 나오냐'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학교 차원의 징계를 먹인다. 회사가 아무리 악덕 업체여도 그렇다.
K: 언론에서 '특성화고의 화려한 변신', '특성화고 가서 인생 역전한 누구누구씨' 이러면서 홍보 기사를 작성한다. 나와 같이 공기업을 준비하던 친구가 과로사로 죽었다. 학교에서 너무 과도한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과도하게 공부하다가 죽었다. 공부는 공부대로, 자격증은 자격증대로 준비하다 보니 커피도, 에너지드링크도 엄청나게 마셨는데, 그것 때문에 죽은 것 같다.
'꼬우면 대학가라'가 불가능한 이유는
- "그렇게 안 좋은 대우가 꼬우면 인문고를 가서 대학을 갔어야지 왜 실업계를 나오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K: 공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던 이유가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인문계에서 배우는 국영수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3년 동안 시간 낭비하는 대신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가 대학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공업계에서는 수능에 대한 교육 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능을 보는 데 큰 애로사항이 있다. 무엇보다 특성화고 출신자를 뽑지 않으려는 대학이 많다.
E: 대학에 가기 위해 마련한 돈도 없는 가정이 꽤 많고, 배우려면 돈이 들고, 돈을 벌려면 배워야 한다. 알바를 해서 돈을 벌어서 배워라? 최저시급만 받고 일하면 하루 먹어 하루 살 돈 밖에 안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해도 배울 시간이 없다. 무리하게 배워서 아파도 청춘이라고 하는 세상인데, 뭘 더 바라나.
Y: 집에 빚이 많다. 집에 빚이 많아서 학자금 대출 같은 것도 어렵다. 부모님의 '등골브레이커' 역할도 철이 드니까 못하겠더라. 그래서 일하는 것이다. '꼬우면 대학 가라'는 사람들이 대학을 갈 돈을 주면 갈 것이다.
K: 일학습병행제는 회사가 반을 주고, 내가 반을 내는 방식인데, 어떤 회사가 등록금 반을 뚝 떼서 일 덜하고 공부시키겠느냐. 싼 인력이 비싸지는 것도 원치 않을 것이고 말이다.
- 마지막으로 고졸자 문제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E: 해외로 빠져나가는 고졸 인력도 굉장히 많다. 기능올림픽에서 수상한 사람이 국내의 연금을 포기하고 해외로 뜨는 것만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또 해외로 안 나가면 인정을 안 한다. 그리고 해외에서 성공해서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열 받아서 해외로 나가면 욕한다. '헤븐조선'에서 돈 많은 자는 뭘 해도 칭찬을 받고, '헬조선'에서 모든 전문인력은 뭘 해도 욕먹는 존재다. 이런 풍토가 해결되면 좋겠다.
K: 항상 보여주기 식으로 제도를 고치려 하지 말고, 처음부터 재정비했으면 좋겠다. 특성화고 교육제도도 이명박 대통령 때 많이 발전했다가 지금 들어서 갑자기 지원이 뚝 떨어지지 않았는가. (2012년, 서울시교육청은 '특성화고 체제개편 지원사업'으로 23개교에 총 39억 원을 지원했으나 2014년엔 12억 원만 배정했다. -편집자주) 지원은 끊기고 보여주기식 제도만 있다. 특성화고를 키운 결과 특성화고에 입학하는 학생의 성적이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없어 안타깝다.
Y: 짧고 굵게 끝내겠다. '대한민국은 다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에 자국혐오가 심한 것은 이유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옆동네 1318은 우리 사회의 '멋진 청소년'이라면 누구라도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제보는 trainholic@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