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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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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북한의 권력을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남이 쥐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살당한 인물은 김정남이 아니라 그의 이복동생 김정은이었을 수도 있다. 

'김정남 암살' 사건은 독재국가, 전제국가에서 흔히 벌어져 온 '정적에 대한 물리적 제거'의 전형적 모습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KCIA(한국 중앙정보부)가 김대중을 납치했고 김대중은 쓰시마 해협 어딘가에 떠 있는 소형 선박 위에 있다는 걸 알아냈다. 하비브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내 자기는 김대중 납치에 대해 알고 있으며 김이 죽는다면 미국과 서울의 관계가 끝장날 우려가 있으니 김을 살릴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 압박했다.

정오가 조금 지나 비행기 한 대가 김을 태운 배 위를 낮게 날았다. 그 뒤에 납치범들은 곧바로 그의 손발을 풀어주고 마실 물도 건넸다. 그날 밤늦게 김대중은 서울의 자기 집 근처 길에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발견됐다.

후일 김대중 대통령은 그 비행기는 CIA가 보낸 것이며 자기의 석방을 명령한 것도 CIA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나는 김 대통령에게 그건 CIA의 비행기가 아니라 그를 죽이지 말고 풀어주라는 서울의 명령을 전달하는 한국 정부의 비행기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2015년 4월, 도널드 전 그레그 전 주한대사의  '역사의 파편들 (Pot Shards: Fragments of a Life in CIA, the White House, and the Two Koreas)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이었던 도널드 그레그 전 대사의 증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납치 사건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김대중 살해 미수 사건'이라야 맞다"(김대중 자서전)고 규정하는 근거의 하나다.

북한이 박정희 독재정권을 능가하는 스탈린 식 전체주의 국가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정적에 대한 물리적 제거'라는 측면에서 볼 때, '김대중 납치 사건'과 '김정남 암살' 사건의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일까. 또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살해한 진보당 조봉암 사건과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태조 이방원이 왕이 되기 위해 이복동생인 방석을 죽인 조선 초의 '왕자의 난'과 역시 왕이 되기 위해 수양대군이 동생 안평대군과 조카 단종을 죽인 '계유정난'과 북한 김씨 왕조의 '김정남 암살' 사건은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반복된 똑같은 사건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마이TV  <장윤선의 팟짱>에서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분석하고 평가한 것이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규탄받아야죠", 김정은이 "공포정치를 해왔다"는 대목은 무시

괴한으로부터 습격받은 직후 김정남의 모습.
 괴한으로부터 습격받은 직후 김정남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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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그리고 국민의당은 정세현 전 장관이 "북한의 암살을 정당화했다"며 비판했다. 이들은 "그 사건을 보며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건 권력 장악한 사람들의 속성이구나", "우리가 김정은의 이복형을 죽이는 것에 대해, 비난만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그런 역사가 있었으니까..."라는 발언들을 문제 삼고 있지만, 이는 전형적인 '맥락을 거세한 침소봉대' 주장이다.

정 전 장관은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정치라는 것 그 자체 틀에서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라고 한 바로 앞에 "물론 규탄받아야죠"라는 전제를 달았다. 또 김정은 정권이 "공포정치를 해왔기 때문에"라고 규정했고, "김정은의 무자비한 숙청에만 관심 갖는데 김일성도 그런 것 엄청 많이 했다"고 말해, '무자비한 숙청'이 북한 정권의 대를 이어온 행태라는 점도 분명히 지적했다. "5년마다 한 번 선거로 절대권력자를 뽑기 때문에 그런 꿈을 못 꾸죠"라며, 반북론자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체제우위에 대한 확인도 빼놓지 않았다. (관련 기사: "김정은, 중국의 김정남 보호만으로도 위협 느꼈을 것")

정세현이 문재인의 자문단 위원장이 아니라면

이런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논란을 확대시키기 위해 그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고 햇볕정책론자라는 점을 재환기시키면서 '종북'이라는 표찰까지 씌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2015년 3월 발생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 피습사건에 대해 북한이 '전쟁광 미국에 가해진 응당한 징벌'이라는 논평 등을 통해 개입하자 "북한이 천지 분간 못하고 물색없이 나서는 경우가 있는데, 북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필요가 있는지 모르지만 남 쪽에게는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며 "북한은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에서 빠져라"라고 요구하는 등 북한에 대해 할 말을 해온 인물이다.

다른 당들은 그렇다 쳐도 김대중 대통령의 유업을 계승하겠다는 국민의 당까지 나서서 그를 비판하는 것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지금이 대선 기간이 아니고, 그가 현재 1위 예비후보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자문단 위원장이 아니라면 이렇게 했을까.


태그:#정세현, #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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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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