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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요가를 배워요
▲ 등원을 기다리던 다섯살의 1,2월 책으로 요가를 배워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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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육아철학이 있는 건 아니었다. 프리랜서 작가이다 보니 출퇴근을 하지 않아 아이들을 보육기관에 빨리 보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굳이 까닭을 찾아보라면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엄마 대신 할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낸 유년의 한나절 때문일지도. 이렇게 이유를 대기엔 늘 이 점을 미안해하시는 친정엄마가 마음에 걸린다.

늦잠 때문에 미룬 어린이집 입소

그래, 순전히 내 늦잠 때문이다. 연년생에 가까운 두 살 터울로 세 아이를 낳다 보니, 늘 젖먹이가 있었다. 아침 등원 시간에 맞춰 하나 업고 하나 유모차 태우고 하나 걸려 어린이집에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젖먹이들은 늘 밤에 수시로 깼고 나는 늘 잠이 부족했다. 가뜩이나 잠이 많은 내게 아침은 너무나 고단한 시간이었다.

이런 연유로 까꿍이도 여섯 살에 병설 유치원에 갔고, 산들이도 여섯 살에 구립어린이집에 갔다. 아이들도 여섯 살이 되어서야 어딘가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직장에 나가지 않지만 늘 바쁘고 피곤한 엄마 대신 삼남매가 어울려 잘 놀아 어린이집을 셀프로 다닌다며 웃곤 했다.

아홉살, 까꿍이가 그랬다. "참 세월 빠르다. 어제 태어난 거 같은데 복댕이가 어린이집에 가다니!"
▲ 복댕이에게 초점책을 보여주는 다섯살의 까꿍이 아홉살, 까꿍이가 그랬다. "참 세월 빠르다. 어제 태어난 거 같은데 복댕이가 어린이집에 가다니!"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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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산들이가 작년에 어린이집에 가고 나자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복댕이는 심심해졌다. 태어나 혼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던 아이가 갑자기 혼자가 된 것이다. 육아와 함께 하는 글 작업은 수시로 밀리기 일쑤였고, 나는 늘 마감에 쫓겼다. 그런 엄마의 등을 보며 형과 놀며 시간을 보냈는데 형마저 어린이집에 가고 나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복댕이.

엄마를 독차지 한다는 기쁨에 처음 며칠은 내게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까꿍이가 혼자였던 때 모니터 화면에 뽀로로 동영상과 한글파일을 함께 띄워놓고 겨우 글을 쓰곤 했는데, 복댕이 네 살에 다시 그렇게 일을 했다(그렇게라도 일을 하려 애를 쓰다 결국 접고 아이와 놀고, 일은 기약 없이 밀리는 게 다반사였던 날들).

혼자 남아 엄마를 독차지했었지.
▲ 작년 봄, 형아가 어린이집에 가고 혼자 남아 엄마를 독차지했었지.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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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다섯 살에 가자!

가뜩이나 누나와 형의 모든 것이 부러운 복댕이인데 스무 명이 넘는다는 누나, 형의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워졌다. 등하원에 맞춰 형의 어린이집에 가면 부러움에 큰 눈이 더 커지곤 했다. 막내는 다섯 살에 어린이집에 가야할 것 같았다. 두 돌 넘게 모유를 먹었던 위의 둘과 달리 두 돌에 모유를 스스로 끊었던 복댕이는 어린이집도 일찍 가고 싶어 했다.

늦게 구립어린이집 입소을 신청해서 여섯 곳의 어린이집 모두 대기번호 30~40번 대에서 멈춰 섰다. 아무래도 여섯 살이 되어야 자리가 날 것 같았다. 그러다 산들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대기번호가 수직상승을 했다. 맞벌이, 다자녀 점수에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형제자매 점수가 더해져 대기 번호 3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다섯 살 반의 티오는 단 두 명. 나도 2016년 하반기부터 안팎으로 일이 많아져 복댕이를 어린이집에 안정적으로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섯 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간다고 철썩 같이 복댕이도 나도 믿었는데, 대기번호 3번은 좀처럼 2번이 되지 않았다.

옆 동네 미사하남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계속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 가는 아이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작년 11월까지 3번이었던 복댕이의 대기번호가 12월에 극적으로 1번이 되었다. 온 가족이 기뻐했다. 복댕이 다섯 살, 어린이집 시대가 드디어 열린 것이다! 남들은 영어유치원, 사립유치원에 보낸다 하지만, 아홉 살 까꿍이도 교육보다는 보육이 먼저인터라 저녁 7시 30분까지 눈치 보지 않고 보육이 가능한 '구립어린이집 만세!'다, 나는.

소풍 간 누나 형이 부러워 마당에서 혼자 간식을 먹는다.
▲ 네 살 복댕이 소풍 간 누나 형이 부러워 마당에서 혼자 간식을 먹는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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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어린이집 가요!

다섯 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간다고 했는데, 복댕이는 다섯 살이 되고 두 달이 다 되도록 집에만 있어야 했다. 1월과 3월은 무슨 차이가 있길래, 나이는 1월에 한 살 먹고, 학년은 3월에 올라가는지, 아이들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2학년과 어린이집 최고 형님반이 되는 까꿍이와 산들이도 마찬가지. 봄이 계절의 시작이라고 대충 설명을 했지만, 그 기준이 모호하긴 나도 마찬가지.

그렇게 지겹게 1, 2월을 보내고 드디어 3월 3일, 어린이집에 가는 날! 작년 산들이에게 만들어 주었던 낮잠 베개와 같은 원단으로 (형아와 모든 게 같아야 하는 동생) 복댕이 베개를 만들고, 칫솔, 에디슨 젓가락, 여벌옷, 이불 가방 등 준비물을 챙겼다. 형이 신던 옥상 놀이터용 실내화도 물려받았다. 그래도 첫 시작인데 싶어 실내화는 새로 사줄까 싶었지만 형아에게 작아진 옷과 신발을 물려받는 게 뿌듯한 복댕이는 형아의 실내화를 신을 만큼 자란 자신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맙다, 학교 갈 땐 새 꼭 운동화 사줄게).

사진으론 산들이가 첫날 같다. 첫날부터 적응 500% 복댕이
▲ 어린이집 등원 첫날 사진으론 산들이가 첫날 같다. 첫날부터 적응 500% 복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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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입학 하루 전, 오며 가며 만나는 모두에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자랑을 늘어놓는 복댕이. 어린이집 준비물이 든 가방을 몇 번이고 확인을 하고서야 잠이 들었다. 등원이 결정 된 후 장난삼아 몇 번이고 복댕이에게 '엄마가 보고싶지 않을까?', '엄마는 네가 보고싶겠다'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저녁에 집에 오잖아. 주말에는 어린이집 안 가고. 그러니까 참고 있어."

사실 복댕이보다 내가 더 기다리던 등원이었는데 막상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마음이 묘했다. 까꿍이와 산들이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래서 막내인가 보다. 그러나 입소 하루 전 복댕이 담임에게 부탁에 부탁을 거듭해 적응기간 없이 등원 첫날부터 낮잠 자고 오후 간식 먹고 5시 하원을 허락 받았다. 산들이는 처음 이틀 점심 먹기 전 하원, 다음 이틀 점심 먹고 하원, 나흘의 적응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낮잠을 재웠는데, 막내는 그런 거 없다. 허전한 마음은 허전한 거고, 현실은 또 다르니.

첫날부터 적응 500%

형과 함께 가는 어린이집 첫날. 다행히 산들이 작년 담임이 복댕이 담임이 되었다. 산들이와 함께 복댕이 교실에 먼저 갔다. 산들이에게 동생 인사를 시켰는데 산들이는 말문을 못 열고 복댕이가 우리 형아라며 인사를 시켰다. 이제 어린이집에서 복댕이 보호자는 너라고 했던 말이 책임감 강한 산들이에게 부담이 된 건지, 숫기 없는 성격이 여전한 건지.

복댕이보다 산들이에게 더 마음을 쓰며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나오는 길, 몰래 복댕이 교실을 들여다 보았다. 처음 보는 장난감을 꺼내놓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이미 적응 500%였다. 괜히 눈물이 났다. 셋 다 보내고 나면 훨훨 날 줄 알았는데…….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덩그러니 집에 혼자 남으면 제 2의 산후우울증이 온다던 선배 엄마들의 말이 조금 이해된다. 갑작스런 퇴사의 느낌이랄까.

짐도 실어주고... (다리가 부러질 거 같다고 돌아오는 내내 울먹였지만)
▲ 엄마 따라 시장도 보러가고 짐도 실어주고... (다리가 부러질 거 같다고 돌아오는 내내 울먹였지만)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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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히고, 미뤄둔 글을 쓰러 도서관에 앉았는데 영 마음이 잡히지 않아 육아일기를 쓰는 막내의 등원 첫날, 자유부인 첫날. 복잡미묘한 마음을 드라마 대사로 갈음해본다.

"너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네가 원에 가고 없는 날은 적당히 더 좋아질 것 같구나. 이제 너도 나도 친구들이랑 사회 생활하자. 씩씩하게 잘 지내렴. 아직 혼자 똥 못 닦는 건, 미안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께 부탁하자. 안 되면 형아처럼 집에 와서 두 번 세 번 싸자. 니 말대로 우리 저녁에 만나자."



태그:#육아일기, #프리랜서, #보육기관, #구립어린이집,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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