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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컴퓨터 공학 전공 대학생 권병주 씨. 7월 26일에 밀양에서 출발하여 남해와 서해, 그리고 강원도로 건너 동해안을 타고 원점 복귀했다. 태풍 솔릭이 일던 8월 22일까지 28일간을 달렸다. 그의 몸엔 손목과 발등에 짙은 밴드가 남아있다.
▲ 뜨거웠던 여름을 달린 젊은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컴퓨터 공학 전공 대학생 권병주 씨. 7월 26일에 밀양에서 출발하여 남해와 서해, 그리고 강원도로 건너 동해안을 타고 원점 복귀했다. 태풍 솔릭이 일던 8월 22일까지 28일간을 달렸다. 그의 몸엔 손목과 발등에 짙은 밴드가 남아있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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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역시 꾸준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 다만 지나간 봄과 여름엔 여행이라기보다 운동에 가까웠다. 따지고 보니 지난해 봄 한강, 낙동강 종주 이후론 여행이라 할 만한 나섬이 없었던 것 같다.

새롭게 개척하는 길이 아니고 익숙한 길을 다니다 보니 길을 바라보는 것도 건성건성.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드디어 자전거 타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열리고 있다. 작년 말에 고금도와 신지도, 그리고 완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개통되었다. 이 섬들을 돌아 강진만을 한번 돌아볼까 싶어 코스를 만들어 보려 검색을 했다. 내가 가려던 코스를 8월 초에 달린 청년의 블로그에 접속하게 된 것이다.

그가 이 코스를 달린 게 한 달쯤 후인 오늘이었다면 그 길 어디에선가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가 이즈음에 달리고 있음을 알았다면 하루쯤 같이 다니며 여러 가지 물어보고 응원의 동반 라이딩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인다.

그는 이 코스가 포함된 여정의 전국일주 무전여행을 자전거로 8월을 달렸다.
 
수많은 고개를 넘었고 여러번의 펑크를 해결해야 했다.
▲ 28일간 달렸던 병주씨의 자전거 수많은 고개를 넘었고 여러번의 펑크를 해결해야 했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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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게 길 나선 한 청년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23살의 밀양 청년 권병주씨의 여행을 소개해보고 싶어 블로그를 뒤졌고 인터뷰를 통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캐물었다.

병주씨는 무더위가 한참이던 7월 26일 자신의 집이 있는 밀양을 출발해, 통영, 남해, 구례, 보성 등을 통해 남해안을 훑었다. 한밤중에 목포에 도착한 그는 그 길로 제주로 향하는 배에 자전거를 실었고 마라도와 우도가 포함된 4일간의 일정을 돌아 다시 목포로 왔다.

영산강을 타고 광주를 거쳐 전주에 올라갔고 다시 보령, 화성, 인천을 거쳐 스스로가 반환점으로 삼은 임진각까지 달렸다고 한다. 서해안도 그가 달린 길이 되었고 이제 서울에서 한강과 북한강을 달려 춘천에 도달했다. 여기서 다시 험난한 강원도의 산과 고개를 넘어 진부령을 넘었다.

그리고 북쪽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통일 전망대를 찍고 동해안을 달려 자신의 고향인 밀양으로 달렸다.

모두 28일간의 여행을 마친 것은 8월 22일이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어떻게 관통할 것인지 설왕설래하던 시간이었다.

수건 석장, 속옷 세벌, 베개 등과 텐트를 자전거 뒷바퀴 위에 걸쳐 짐을 꾸렸다. 현금 10만 원을 챙기고 출발한 그는 '지금은 자전거 전국일주 무전여행 중'과 '에라 모르겠다~ 일단 저질렀으니 가즈아~!!!'라는 문구를 인쇄소에서 만들어준 깃발에 담았다. 그리고 깃발을 뒤에 달고서 호기롭게 출발했다.

그가 초반에 설정한 여행의 원칙은 식당에 가서 자신의 신분과 여행 취지를 설명하고 얻어먹은 만큼의 일을 해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잠은 가져갔던 텐트를 공원이나 정자 같은 곳에 치고 노숙하는 식의 일정을 이어갔다.

"안녕하세요, 자전거로 무전여행 하는 대학생입니다. 실례하지만 청소나 잡일 같은 일손을 도와드리고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용기를 내어 말을 내뱉었고 초반의 실적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8번 거절당하고 9번째 만에 성공한 마산 어느 식당에서의 이야기도 사실 성공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이고~ 이 더운 날에 뭔 쌩 고생을 하노? 퍼뜩 앉아라, 밥 갖다 줄꾸마"라고 말한 식당 여사장님의 타박처럼 젊은 청년이 기특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니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자식에게 먹이는 심정으로 내어준 경우가 더 많았을 것 같다.

실제 병주씨가 얻어먹은 대가로 일을 해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개는 짠해서 음식을 내주고 도와줄 일거리가 마땅치 않아서 마음을 써준 한 끼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병주씨에게 마음을 써준 사람들은 다양하였다. '식사를 줄 수는 없고 밥과 김치를 내줄 테니 가져가서 먹으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군대식으로 물을 봉지에 담아 불려 먹는 라면을 먹으려 하니 물 좀 데워 주십사' 하는 궁상에 라면을 끓여주고 김치와 밥을 내준 경우도 있었다. 물론, 거절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지만 병주씨는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청한다고 그들이 도와줘야 하는 건 아니니깐~'

식당을 찾아 '밥을 얻어먹고 대가로 일을 해 준다'와 '텐트에서 야영하기'가 중심이 되었던 초반의 전략이었다. 날이 거듭되면서 지치고 힘에 부침을 겪었고 스스로와의 싸워낸 결과로 수정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을 지금처럼 망설이며 부끄러워하다가 더 이상 여행을 지속하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한다. '남의 시선에 의식하지 않고 나의 인생을 사는 방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물었고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텐트를 쳤고 자전거를 빨랫줄과 연결해 빨래를 말렸다.
▲ 제주에서 야영했던 아침 텐트를 쳤고 자전거를 빨랫줄과 연결해 빨래를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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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지속할 수 있을까?

잠자리는 교회, 성당, 마을회관 등에 부탁해서 자고 텐트는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펼치기, 식사는 유통기한이 경과하여 폐기하는 음식물이나 식품을 편의점에서 구해 먹는 것.

두 가지가 바뀌면서 병주씨는 자신감이 충전되기 시작하고 발걸음이 경쾌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병주씨에게 남은 음식을 주어야 할 이유나 공감이 오가지 않았을 뿐이고, 또 누군가는 주고 싶어도 줄 음식이 없었기에 못 주었을 뿐이다. 그것에서 좌절하거나 원망하는 건 병주씨의 몫이 아니었다. 좀 더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나아가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으로 치환되어 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단단해질수록 성공률은 높아졌다고 한다.

행색과 깃발에 적힌 '무전여행'을 알아보고 일부러 말을 건네 와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경우도 생긴다. 자신이 가진 음식을 건네주기도 하고 사양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여행을 잘 마치라며 꼭 필요할 때가 있지 않겠느냐'며 1만 원, 2만 원씩을 손에 쥐어준 경우도 생겼다.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했다는 어느 아저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을 소개하고 많은 격려를 하며 자신이 운영하는 매점에서 컵라면과 만두, 삶은 계란을 내주기도 했다.

여행에 행운과 즐거움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가 달린 28일 동안 행운과 즐거움만 있을 리 없다. 서산에서 화성으로 넘어가는 날은 이번 여행의 최대 고비였다. 여행 기간 동안 여러 번 경험한 펑크가 이날따라 반복되었다고 한다. 익숙해졌을 법 한데 이날따라 잘 안 된다. 결국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다. 그리고 달리는데 다시 펑크, 이번엔 튜브를 교체해야 했다.

여분의 튜브가 없어 근처 마을까지 끌고 갔다. 다행히 자전거 수리점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자전거로 전국일주 무전여행을 하는 학생입니다. 혹시 자전거 수리 부탁해도 될까요?"라는 병주 씨의 말을 공짜로 수리해달라는 청으로 오해한 주인아저씨가 다짜고짜 인상을 쓰며 나가라고 했단다.

누구의 오해가 문제인지는 따질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수리비 2만 원을 지불하고 마음 내키지 않는 걸음을 시작하는 병주씨의 마음이 많이 상한 것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수 없는 시련, 수많은 펑크를 겪고 그때마다 해결해야 했다. 펑크를 해결하지 못하고 갈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이란 없으므로... 서산에서 화성으로 가는 길은 매우 힘든 길이었다고 한다.
▲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피하고 싶어도 피할수 없는 시련, 수많은 펑크를 겪고 그때마다 해결해야 했다. 펑크를 해결하지 못하고 갈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이란 없으므로... 서산에서 화성으로 가는 길은 매우 힘든 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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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했던 곳까지 못 가고 야간에 겨우 도착한 곳이 화성시 궁평항. 이날따라 잠잘 곳을 구하지 못해 화장실 옆 폐 매점 평상에 텐트를 쳤다. 개수대가 없어 씻지도 못하고 잠든 새벽, 마을에 사는 사람이 '여기에 텐트를 치면 안 된다'라고 말해 그나마 마음 편한 잠을 못 자고 텐트를 옮겨 설치한 후 나머지 잠을 잘 수 있었다.

'포기'라는 단어를 많이 되뇌었다.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갈까? 이놈의 자전거를 그냥 부셔버려? 아님 그냥 다 버리고 걸어가?"라고 블로그에 기록해두기도 하였다.

안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생기면 마음도 몸도 지치기 마련. 하지만 쭉 이어지지는 않았다. 인천에서 10번 넘게 교회마다 전화를 돌렸다. 마지막이라고 마음 먹고 전화를 건 곳에서 '8시 이후에 오면 방을 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편의점에서 폐기하는 음식물을 구하는데 운 좋게도 상태 좋은 도시락 2개를 구했다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수능을 마치고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고 군대 다녀온 뒤인 올봄에 비로소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처음 해보았다는 병주씨에게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곳은 역시 강원도라고 한다. 해발 500미터가 넘는 큰 고개를 하루에도 여러 번 넘어야 했다. 타고 넘기도 했고 끌고서 넘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태풍이 오기 전날 밤늦게 서둘러 여행을 마치기 위해 밀양의 집에 도착했고 부모님과 가족들은 '기특하고 장하다'라고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런 미친 일을 왜 하려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던 친구들도 누군가는 '참 대단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미친 일이야~'를 말하기도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온 병주씨를 달리 보게 된 것 같다고 한다.
 
누군가는 젊은이에게 잠자리를 내주었고 누군가는 음식을 나눠주었다. 길에서 만난 고마운 인연들을 동의를 구해 사진으로 남겼다고 한다.
▲ 길에서 만난 사람들 누군가는 젊은이에게 잠자리를 내주었고 누군가는 음식을 나눠주었다. 길에서 만난 고마운 인연들을 동의를 구해 사진으로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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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났던 이유와 가지고 돌아온 생각

병주씨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 자전거를 처음 탔고, 수능이 끝난 후 밀양 근처를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서는 부산, 창원, 김해까지로 범위를 넓혀보았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때 무전여행에 관한 어떤 게시글을 읽었고, 군 복무 시절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한 어떤 이의 책을 보고서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드디어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나섰다. "극한 환경 속에서 내가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잘 적응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풍경 위를 원 없이 달려보고 싶었습니다"라며 여행의 목적을 소개한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서질 않았는데 "친구와 함께 미국을 횡단해보고 싶은 계획을 준비해보려고 해요"라며 자전거 여행을 이어 나갈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평택으로 가던 때였던 것 같고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라며 "제주도에서 여러 번 마주쳐 마치 여행을 같이 했던 느낌이 드는 중년부부와 서울에서 쉬고 있던 중에 식사를 사주시고 자전거까지 손봐주신 무료대여소의 아저씨 3분, 그리고 영덕에서 잠시 동행했던 제주에서 오셨던 아저씨와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행운이 깃든 시간을 회상하기도 한다.

"GPS가 이상하게 잡혀서 총거리가 3357km로 나오는데 제주도로 오가던 거리와 몇 가지를 감안해보면 3000Km가 조금 못 되는 것 같아요. 하루 평균 100km 정도를 달린 것 같네요"라며 자신의 여정을 소개하는 병주씨. "텐트에서 잘 때는 벌레와 높은 습도 때문에 괴로웠지만 밤하늘과 바닷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어 나름 좋았습니다. 물론 교회나 마을회관에서 편하게 자는 것도 좋았죠"라며 모든 기억을 긍정 속에 담아두려 하기도 한다.

"제가 낯가림과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 처음엔 도움을 청하는 것이 힘들었죠. 당연히 거절도 많이 당했습니다. 근데 거듭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도움을 청하는데 힘들지 않고 성공하는 경우가 점점 높아지더군요.

예전엔 남에게 거절당하는 걸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남의 눈치를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이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조언해준 게 '나도 정말 이런 여행을 하고 싶은데 그때 못해서 후회한다'였거든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여행을 지켜봐주시고 걱정도 하셨을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여행중 만나 도움을 주신 많은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10만 원을 가지고 떠났던 병주씨는 여행 중에 이런저런 정성을 담은 12만 5천 원을 받았고 자전거 수리와 찜질방에서 잔 며칠, 그리고 비상식량을 구입하기 위해 사용한 7만 5천 원을 제외하고 5만 원이 더 생겼다고 한다. 남은 돈 5만 원은 자신의 돈이 아니니 유니세프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달린 28일을 보다 자세히 참조해보고 싶은 사람은 '빵주'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kwonbj1224)를 접속해 살펴보고 또 다른 도전을 설계해도 좋겠다.
 
총거리 3000여 km를 달렸다.
▲ 28일간의 기록 총거리 3000여 km를 달렸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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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전거 여행,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 #권병주 자전거 여행, #자전거 무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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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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