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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국적인 풍광의 해변

어진(仁) 사람들의 도시(川) 인천, 그 중에서도 가장 선하고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사는 섬이 있다. 덕적(德積)도다. 이 섬의 원래 이름은 '큰물섬'이었다. 깊고 큰 바다에 떠 있는 섬이란 뜻이다. 그 이름처럼 덕적의 바다는 깊고 맑고 풍요로우며 신비롭다. 이 섬을 하늘에서 보면 두 날개를 활짝 펼친 나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비보다 더 아름다운 섬이 덕적이다.
 
덕적군도는 덕적도를 중심으로 41개의 유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땅 모양이 언뜻 날개를 활짝 편 나비를 닮았다.
▲ 덕적군도 덕적군도는 덕적도를 중심으로 41개의 유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땅 모양이 언뜻 날개를 활짝 편 나비를 닮았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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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는 덕적군도의 중심섬이다. 덕적도 외에도 굴업도, 문갑도 등 크고 작은 유무인도 41개가 점점이 떠있다. 이곳 바다의 민어는 유명했다. 임금님 진상품이었다. 어민들에게도 여름철 보양식으로 사랑받았다. 민어 파시(시장)가 설 정도로 많이 잡혔지만 70년대 들어서면서 대형선단의 싹쓸이 조업으로 민어 씨가 말랐다.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빚어낸 재앙이었다.

진리도우선착장이 덕적도의 관문이다. 대합실엔 덕적바다역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붙였다. 바로 옆에 작은 장터가 있다. 지난 2017년 도서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개장한 주말장이다. 3월부터 11월까지 영업한다. 주민들이 제철 수산물이나 말린 표고버섯, 해당화주 등 덕적도에서 나는 특산품을 판다. 하지만 코로나가 휩쓸고 간 시장의 풍경은 신산하다. 내가 방문한 지난 1일~2일까지 분위기는 사실상 개점휴업상태다.
 
주민들이 덕적도 특산품으로 파는 주말장이다. 코로나가 휩쓸고 지난 자리는 신산하기 그지 없다.
▲ 덕적바다역시장 주민들이 덕적도 특산품으로 파는 주말장이다. 코로나가 휩쓸고 지난 자리는 신산하기 그지 없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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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선착장에 내리면 녹색버스 세대가 맞아준다. 각각 서포리, 북리 그리고 소야도를 오가는 마을버스다. 하루 예닐곱 번씩 운행한다. 운임은 어딜 가도 1천 원이다. 소야도는 지난 2018년 개통한 다리 덕에 덕적도와 한 몸이 됐다. 배로 건너던 바다를 차 타고 건너게 됐다. 단, 걸어서는 못 간다. 인도가 없기 때문이다. 자가용이 없으면 버스를 타야 한다.

덕적도의 갯벌은 다른 곳과 달리 모래 갯벌이다. 그래서 물이 맑다. 파랗다 못해 검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 섬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은 서포리에 있다. 수백 년 된 소나무와 해당화 숲에 둘러싸인 해변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모래는 참 잘고 곱다. 밀가루처럼 보드랍다. 모래사장은 물경 30만 평이다. 경사도 완만해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다.
 
눈을 돌리는 어느 곳이든 이국적이고 황홀한 풍광이 피어나는 최고의 해변이다,
▲ 서포리 해수욕장 눈을 돌리는 어느 곳이든 이국적이고 황홀한 풍광이 피어나는 최고의 해변이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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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주변에는 오토 캠핑장, 샤워장,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소나무 숲에서 야영도 할 수 있다. 짠 바닷물이 미치지 못하는 외곽지역의 모래에는 풀이 자라고 있다. 하얀 모래밭 위의 녹색 초원은 다소 생경해 보이지만 나름 잘 어울린다. 사방 어디로 눈을 돌려도 이국적이고 황홀한 비경이 펼쳐진다. 세계적인 유명 휴양지 못지않다.

해수욕장 주변 마을에는 민박과 식당들이 꽤 있다. 인구 천 명 남짓한 작은 섬마을인데도 편의점까지 문을 열었다. 덕적도가 비단 여름철만이 아닌 사시사철 관광지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두부가 주메뉴지만 제철 생선구이를 포함한 가정식 백반으로 관광객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송림가든, 외관만으로도 노포의 포스가 작렬하는 바다반점 등이 유명하다.

섬이라고 바다만 즐길소냐
 
덕적도 남쪽에 있는 비조봉 정산에서 본 해안가 풍경이다. 산은 낮지만(291m) 경사가 가파르고 산세가 다소 험하다.
▲ 비조봉 정상에서 덕적도 남쪽에 있는 비조봉 정산에서 본 해안가 풍경이다. 산은 낮지만(291m) 경사가 가파르고 산세가 다소 험하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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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이지만 바다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섬 곳곳에 트래킹 코스와 자전거 길을 잘 닦아 놓았고, 북쪽의 국수봉과 남쪽의 비조봉의 등산로도 잘 정비해 두었다. 산길은 그리 길진 않고 경사도 3백 미터 남짓하지만 가파르다. 정상으로 갈수록 난코스가 이어진다. 하지만 힘들게 오른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방 절경은 산행의 고단함을 단번에 날려준다.

덕적도 산을 즐기는 코스는 대략 3개다. 비조봉에서 국수봉까지 다녀오는 종주 코스는 12km쯤 되고 네댓 시간이 걸린다. 비조봉을 넘어 섬 북쪽의 소재해변을 지나 능동자갈마당에 이르는 길은 10km 정도다. 밧지름 해변에서 비조봉을 타고 서포리 해수욕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있다. 3km 남짓하다. 하지만 재삼 강조해 말하거니와 짧다고 절대 얕잡아 보면 안 된다.

자전거 길도 훌륭하다. 진리 선착장 오른편으로는 MTB 전용도로까지 냈다. 4.3km로 짧은 게 다소 아쉽다. 왼편으로 돌아가 서포리 해안도로를 질주하는 기분은 달려 본 사람만 안다.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선착장에서 시작해 서포리 해수욕장을 지나 벗개 쉼터에 이르는 11.3km 구간을 애정한다. 이개마을과 북리 마을로 곧바로 질러가는 9km짜리 중급코스도 인기다.
 
밧지름 해수욕장의 해송 숲. 캠핑이 가능하다. 어디에 텐트를 쳐도 은은한 소나무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 밧지름 해수욕장 해송숲 밧지름 해수욕장의 해송 숲. 캠핑이 가능하다. 어디에 텐트를 쳐도 은은한 소나무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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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사람들의 고향 사랑

섬의 중심마을인 진리 입구에는 초중고등학교가 한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 덕적고에는 언뜻 섬마을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야구부다. 전교생이 14명으로 줄어 폐교 위기에까지 몰렸던 학교가 역발상적으로 야구부를 선택한 거다. 지난해 12월 창단한 야구팀은 섬 전체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실력도 쟁쟁해 창단 5개월 만에 전국대회 16강에 올랐다.
 
1919년 4월9일 덕적도에서 벌어진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이 외딴 섬마을에서도 만세소리가 울려퍼졌다는 사실은 깊은 울림을 준다.
▲ 덕적기미3.1독립만세기념공원 1919년 4월9일 덕적도에서 벌어진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이 외딴 섬마을에서도 만세소리가 울려퍼졌다는 사실은 깊은 울림을 준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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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엔 작은 공원 하나가 있다. 덕적기미3.1 독립만세기념공원이다. 이 외딴 섬마을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울림이 전해진다. 3.1운동 가담혐의로 일경의 수배를 받던 임용우 선생이 덕적도로 피신 와 같은 해 4월 9일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고 한다. 당시 덕적군도 전체에 만세운동의 불길이 요원하게 번졌다고 전해진다.

운동을 주도한 임용우 선생은 투옥되어 모진 고문 끝에 3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고 말았다. 덕적도 주민들은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9년 3.1운동 독립만세 기념비를 세웠고 옹진군은 지난 2020년 이 주변에 대한 공원화 사업을 추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우 선착장 언덕에 있던 충혼탑도 옮겨와 6.25 전쟁으로 산화한 젊은 넋들을 기리고 있다.

진리 마을 한가운데에는 '호박회관'이 있다. 이 역시 도서특성화 사업이 일환으로 만든 곳이다. 경로당으로 쓰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이름 그대로 이 섬에서 나는 호박과 단호박으로 만든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다. 양갱, 쿠키, 찐빵 등이 잘 팔린다. 달달한 단호박 식혜도 인기다. 실내를 카페처럼 꾸며 제품 제조과정을 직접 보며 매장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도서 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문을 열었다. 덕적에서 나는 호박과 단호박으로 양갱, 쿠키, 식혜 등을 만들어 판다.
▲ 덕적도 호박회관 도서 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문을 열었다. 덕적에서 나는 호박과 단호박으로 양갱, 쿠키, 식혜 등을 만들어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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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 주민들은 덕이 많을 뿐 아니라, 애국심과 애향심으로 똘똘 뭉친 분들이다. 일제에 항거하여 분연히 독립 만세운동을 전개했고, 한국전쟁 당시엔 맨몸으로 적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후손들은 그런 조상들의 얼을 잊지 않으려 충혼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했다. 학교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국내 유일의 섬마을 고교 야구부를 창단하기도 했다.

솔직히 섬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그곳까지 가기에도, 그곳에서 살기도 그렇다. 하지만 그래서 섬사람들의 고향 사랑이 더 각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섬을 떠난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사는 분들께 죄송스러워서, 그곳에 사는 분들은 언젠가 돌아올 가족과 친구를 위해 그렇게 애틋한 마음으로 섬을 지키는 건 아닐까. 그렇게 이래저래 섬은 사랑이다. 덕적도는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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