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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에서 잠시 살아볼 생각에 흥이 난 언니들,억지춘양시장을 접수해본다
▲ 언니들, 춘양시장 접수하다 춘양에서 잠시 살아볼 생각에 흥이 난 언니들,억지춘양시장을 접수해본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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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 일대 화려한 거리를 누비던 그 발들이 억지춘양시장을 막아선다. 말 잘못했다가는 한 대 맞을 태세이기도 하다. 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 

저 패션은 무엇인고, 소위 몸뻬 냉장고바지다. 글로벌 마켓 아마존에서도 팔리는 몸뻬. 디자인도 다양하고 신축성도 끝내준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올콜(all call)이다. 주름도 안 가, 가격도 저렴해. 그래서 골라 골라 물개박수 짝! 다리 박자는 환상의 화음인가 보다. 탱고가 따로 있으랴. 가는 사람 눈길을 홀리는 이름하여 화려한 '꽃가라'. 정열적인 탱고의 여인만 못 할 것도 없다. 가격도 끝내준다. 단돈 5천 원!

언니들은 춘양으로 달려왔다

5년 전 광릉숲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관리센터장으로 근무할 때이다. 예약해야만 오는 국립수목원과 적게는 한 시간씩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광릉숲을 내 집 마당처럼 매일 보며 살 수 있었던 축복이 넘치는 때였다. 숲에 대한 지식이 얕았던 필자는 지인의 설득력 있는 꼬드김에 넘어가 혜화역에 위치한 서울대 간호대학이 운영하는 산림치유 교육 주말반에 등록했다. 

우리 반 학생들은 60이 훌쩍 넘어 은퇴를 하신 분부터 플로리스트, 간호사, 한의사, 숲해설사, 공무원, 그리고 필자 같은 문외한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50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다시 돌아온 캠퍼스는 신선했다. 서른이 넘도록 밤이 깊도록 공부했고 날이 새도록 놀았던 그 거리였지만 마흔이 넘어 돌아온 그 거리는 확실히 새로웠다. 

산림치유지도사 과정 마지막에는 국가자격증 검정시험이 있다. 산림치유 수업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시험은 화성과 수성처럼 완전히 딴판이었다. 현타한 언니들은 빛의 속도로 스터디를 결성했고, 나도 물살에 떠밀려가듯 스터디에 합류했다. 그땐 몰랐다. 뻔질나게 혜화를 누비고 다녔던 내가 혜화의 밤을 눈으로만 보리라곤 말이다. 

시험 일인 2월 전까지 긴긴 겨울, 매주 주말 하루 12시간 이상을 공부하며 우리는 소소한 일상까지 공유하는 찐친이 되어갔고, 결국 모두 시험에 합격하고야 말았다. 

필자가 봉화에 가게 되었다니 이제 서울에서는 영영 못 보게 되는 것이냐며 호들갑 떨던 언니들은 나보다 더 나의 오지행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아쉬워서가 아니라 내가 무척이나 부러웠으리라. 눈치 없던 나는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위문 겸 여행 겸 언니들은 결국 빗속을 뚫고 춘양으로 달려왔다. 서벽리 이장님이 운영하는 펜션에 짐을 풀고 우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남편과 자식, 그리고 우리 여인들의 독립에 대해 깊은 토론을 했다.

다들 1인 몇 역을 하며 살아온 인생들이니 낙타처럼 오로지 '마이웨이' 하고픈 간절한 바람들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럴싸한 제안을 나는 했다. 빈손으로 독립해서 어떻게 쿨하게 봉화라이프를 살 수 있는지 말이다. 나는 언니들의 마음에 확실하게 불을 질러놓았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뷔페 집에 가서 호들갑 떨며 생전 처음 먹어본 음식을 폭풍 흡입하듯 우리는 수다에 완전히 몰입되었다. 자정이 넘어간다. 

봉화 사과즙을 차에 싣고 달렸다

빗소리가 지친 나를 감싸 안아주는 것만 같다. 한여름이지만 춘양은 고산지역이라 서늘하다고 이장님이 미리 뜨뜻하게 데워주신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본다. 고슬고슬하고 포근했다. 산중을 적셔주는 빗소리, 우리 외엔 아무도 없는 이곳 춘양면 서벽리 산중에서 우리의 행복은 그렇게 채워져만 갔다. 

사람의 온기, 같은 생각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위로. 참 삶이 버겁기도 하고 우리가 전투적으로 살았나 보다. 도시에 살 땐 비교적 여유가 있었는데 오히려 봉화에 와선 여유를 잃어버린 나, 서울 콩나물시 북적면에 살다 서벽의 정취에 압도당한 언니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봉화하고 있었다. 사실은 필자의 면회 겸 서울 탈출이었으리라. 

동이 트기 바쁘게 금쪽같은 시간인지라 고양이 세수만 서둘러 하고 수목원 오픈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 서벽마을을 통해 춘양목 군락지가 있는 외씨버선길로 곧장 갔다. 외씨버선길은 버선 한 짝 모양이라 해서 이름이 외씨란다. 청송에서 봉화, 울진까지 임도를 따라 이어진 이 길. 봉화에 처음 도착한 날 이 길을 걸으며 꼭 뛰어보리라 했는데.... 종일 굶는다고 하여도 배부를 것만 같은 이 풍요로움, 감사와 기쁨이 솟구쳐오른다.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을까. 

부스스한 여인들은 경건하게 춘양 앞에 예를 갖춘다. '춘양아, 고맙다. 네가 있어 오늘이 참 행복하단다....' (애들은 일어났나? 밥은 먹었나? 이런 생각은 못 본 척하고 말이다.) 뭐 이런 마음이었으리라. 원시림 같은 천연림들은 아니었지만 수십 년 세월 속에 자리 잡은 춘양목들은 우람하고 곧았다. 선비와 같이 곧았고, 여인의 선처럼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길, 춘양목, 그리고 산을 가득 메운 청량한 공기. 이 시간만큼은 우리의 것이었다. 
 
동이 트자마자 춘양목 군락지가 있는 백두대간수목원 뒤편 외씨버선길로 달려간다.
▲ 춘양목 외씨버선길에서, 춘양에 예를 갖추다 동이 트자마자 춘양목 군락지가 있는 백두대간수목원 뒤편 외씨버선길로 달려간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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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수목원 탐방을 급히 서둘러 마쳤다. 애들 걱정, 혼자 곰탕이나 데워먹을 남편 걱정에 상경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춘양을 하나라도 더 담기위해 쇼퍼의 본능을 살려 서둘러 쇼핑을 하기로 했다. 

평상시 친한 서벽리 이장님이 하는 사과밭에 갔다(마음씨 좋은 이장님은 지난겨울 나를 초대해 난생처음 본 김치 개구리찜을 나눠주셨다. 결국, 두 마리의 개구리는 내 뱃속으로 들어왔단다). 한여름이지만 저온 창고에 보관된 신선한 사과즙을 사러 말이다.

백화점에서 파는 사과즙과는 비할 수 없는 신선한 100% 순도 사과 맛. 게다가 50봉지에 25000원. 이게 웬 떡인가. 그녀들은 감탄했다. 지갑들이 마구마구 열렸다. 한여름이지만 잘 저장된 사과는 갓 딴 사과처럼 아삭아삭했다.

가격도 착해, 품질도 최상인 봉화 사과즙을 차에 가득 싣고 우리는 달렸다. 억지춘양시장으로. 

세상은 누릴 줄 아는 자의 것
 
더운 여름날에도 5일장이 섰다
▲ 억자춘양시장전경 더운 여름날에도 5일장이 섰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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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 옷걸이에는 각종 몸뻬, 개구리 무늬 작업복, 챙 넓은 작업모자 등이 즐비했다. 한참 밭일이 많을 때니까 말이다. 과감한 꽃무늬 패턴의 화려한 아방가르드 풍에서 절제된 미니멀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몸뻬는...... 멋졌다!
 
장날 가게 앞에 몸뻬들이 걸려있다
▲ 그대 이름은 몸뻬 장날 가게 앞에 몸뻬들이 걸려있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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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언니들은 필자가 일장 연설한 독립생활에 깊은 감흥을 받은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일까? 언니들의 시선은 이내 몸뻬에 꽂혔다. 텔레파시가 통한 듯 열 개의 손이 몸뻬들 사이로 분주히 움직인다. 5천 원이라는 말에 지갑도 바빠졌다. 먼저 지갑을 연 언니는 커피 한 잔 값인데 내가 쏠게 하며 한턱을 낸다. 따라온 남편들은 몸뻬보단 조끼를 골라 입는다. 어찌 이리 원단이 좋냐고 호들갑이다. 

몸에 착 안기는 느낌이 옷이 편하다나 뭐라나…. 게다가 주머니들도 많아 이것저것 담기에 제격이라고 한다. 속도 모르고 그저 좋아하는 순진한 그들. '이곳은 우리가 접수한다.' 우리의 독백이다.

단박에 시장을 가로막는 '낯선 익숙함'이 상인들을 웃게 한다. 한껏 신이 난 우리는 잠시 더위를 식히러 억지춘양시장을 따라 흐르는 운곡천으로 걸어 나간다. 양재천도 프랑스 센강도 부럽지 않다. 발끝으로 느껴지는 이 청량감과 시원함! 아 행복하다. 밟는 대로 디디는 대로 모두 우리 땅이었다. 그렇다. 세상은 소유하는 자의 몫이 아니라 누릴 줄 아는 자의 것이다. 
 
억지춘양시장 옆으로 흐르는 운곡천에 걸어가 봉화해본다
▲ 억지춘양시장 옆 운곡천에서, 양재천도 부럽지않다 억지춘양시장 옆으로 흐르는 운곡천에 걸어가 봉화해본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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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갈급함에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눈에 띄는 이름하여 첼로 다방! 알록달록한 시트지 위에 Coffee Shop이라고 쓰여있다.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근사한 테이크아웃 카페는 아니지만, 다방 앞으로 앉을 수 있는 긴 의자와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될 만큼 큰 잔을 가득 채운 찐하고 달달한 이름하여 다방 커피. 맛이 끝내줬다. 
 
억지춘양시장 안에 자리한 이름하여 '첼로다방' 앞에서 찐한 밀크커피를 마시다
▲ 첼로 다방 앞 테아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억지춘양시장 안에 자리한 이름하여 "첼로다방" 앞에서 찐한 밀크커피를 마시다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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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늘어선 즐비한 음식점들, 돼지국밥 냄새가 스멀스멀 묻어난다. 킁킁거리며 큰 잔에 출렁이는 커피 한 사발을 마셔본다. 아! 아! 참~ 좋다. 어떠한 언어도 형용할 수 없었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대는 비로소 내게 꽃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필자의 독백이기도 하고 서울 그녀들의 고백이기도 하다. 춘양은 언니들에게 꽃이 되었고, 언니들은 춘양의 그대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춘양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푸른 하늘과 구름, 땅이 맞닿아있다. 펼쳐진 털부처꽃은 하늘에도 땅에도 의미가 되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야생화언덕 전경이다
▲ 나는 춘양의 그대 푸른 하늘과 구름, 땅이 맞닿아있다. 펼쳐진 털부처꽃은 하늘에도 땅에도 의미가 되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야생화언덕 전경이다
ⓒ Dr. Sue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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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소유함을 넘어선 탈소유, 그것이 누림의 시작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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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근무중 홍익대에서 도시디자인과 인간의 감성으로 박사 2018 평창동계올림픽 국제방송센터(IBC) 총괄팀장 2012여수세계박람회 BIE 실사 등 PM, 국내외마케팅PM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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