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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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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로부터 15억 원의 배상으로 가정의 궁핍을 면하고 난생처음 여유있는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육신은 나날이 망가져갔다. 그런 중에서도 연구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흰 그늘'에 대한 명제가 남은 생의 화두가 되었다.

회고록의 제목을 <흰 그늘의 길>로 삼았을 만큼 이 명제는 오랫 동안 그의 심중의 열쇳말이었다. 우선 그의 어의 풀이부터 들어보자. 

그늘은 알겠는데 '흰'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죠. '흰'은 우리에게, 한민족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백(白) - 백두산의 백, 백의민족의 백, 이라고 하죠. 우리나라는 이미 환인 때부터 광명을 지향했다고 합니다. 태양 숭배, 새 토템인데 바로 이 ''이라는 것,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을 중심으로 하는 햇살, 빛, 새 중심의 살, 소리, 솔개, 이런 것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또 '叾', 봉황이라고 하는데 봉황, 임금의 뜻입니다. 원래 叾은 어둠입니다. 이 전부를 포함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입니다. 은 '크다, 날개, 중간, 높다, 임금, 애매함' 그러면서 '빛'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주 복잡하죠. 이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주석 3)

길 없는 길을 가면서, 환상과 환청, 환영에 시달리면서 '흰 그늘'의 의미를 찾는다.

그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늘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판소리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한(恨)입니다. 한은 아시죠? 어떤 마음의 지향이 장애에 부딪혔을 때, 침전되었을 때, 억압되었을 때 발생하는 심리상태를 한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다가 실연당한 정한(情恨)이 있고, 억울함을 당하는 원한(怨恨)도 있고, 우리 역사처럼 긴 시간을 남의 침략을 당했을 때는 망국한(亡國恨)이 있고, 이름 없는 백성으로 태어나서 굶주리고 억울하게 살다 가는 중생한(衆生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주석 4)

그의 생은 이 땅의 누구 못지 않는 한 많은 삶이었다. 긴 옥고와 감시, 풀려난 후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궁핍이 일상화되었다. 세속의 명예도 따랐고 상복도 있었다. 노령에는 거액의 배상금을 받았다. 

역사는 흔히 1880년부터 1914년까지의 서구 사회를 벨 에포크(Belle epoque) 즉 '좋았던 시절'이라 부른다. 자본주의 발전으로 사회ㆍ문화ㆍ경제 등에서 화려했던 시기를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다. 김지하에게 벨 에포크의 시절이 있었던가. 해남 거주 시절을 회상한다. 그때에도 떨치기 어려운 환상과 환청ㆍ환영에 포로가 되었다. 독한 술이 필요했다.

남은 생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흰 그늘>이름의 마지막 시집을 준비한다. 2018년의 새봄이다. 간단한 서문을 지었다.

마지막 시집이다.
교정하지 않는다.
마지막 다섯 줄 '아내에게 모심'
한 편으로 끝이다.
이제 내겐 어릴 적 한(恨)
'그림'과 산밖에 없다.
끝. (주석 5)

교정하지 않은 시 71수가 실렸다. 그는 이런 날에 대비하여 <회고록>에서 남겼다.

'흰 그늘'은 나의 미학과 시학의 총괄 테마가 되었다. '흰 그늘'을 통해서 '님'과 '틈'과 '무'와 '신명'과 '한'과 '이중성' 및 '생성' 등을 이해하고 정지용 시인을, 그리고 신세대를 이해하며, 시커먼 검은 옛 등걸에 새하얀 눈부신 꽃이 피는 이 모순된 '매화(梅花)의 이념'까지 모두 그렇다. (주석 6)


주석
3>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34쪽, 실천문학사, 1999.
4> 앞의 책, 29쪽.
5> <흰 그늘>, <자서>, 작가, 2018.
6> <회고록(3)>, 27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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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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