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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콜에서 출발한 우리는 이식쿨 호수 주변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지로 통하는 촐폰아타(Cholpon-Ata)로 향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주말이면 비슈케크나 이웃나라 카자흐스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휴양 차 이 도시를 찾는다고 한다. 

촐폰아타 가는 길에 잠시 들른 '보스테리(Bosteri)'는 온갖 잡상인들이 넘쳐나는 유원지 분위기였는데 촐폰아타에 들어서는 순간 번잡스럽지 않은 휴양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촐폰아타에는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손꼽히는 최고급 리조트들이 많은데 우리가 묶었던 '카프리즈 리조트'도 그중 하나였다. 
  
하늘 위(이식쿨 호수 해발 1,600m 위치) 바다라 할 수 있다.
▲ 휴양도시 촐폰아타 하늘 위(이식쿨 호수 해발 1,600m 위치) 바다라 할 수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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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맵 촐폰아타 위치(붉은 점 지역)
▲ 촐폰아타  구글 맵 촐폰아타 위치(붉은 점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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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바다에서 수영을

'캬~.'

모래사장 선베드에 누워 홀짝거리는 맥주 한 잔,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대본도 없는 맥주 광고를 찍고 있었다. 아무 정보 없이 이식쿨을 접하면 호수라는 생각은 1도 없을 수밖에 없다. 사실 내륙 국가인 키르기스스탄에서 이식쿨 호수는 바다와 같다.

이식쿨 호수를 돌다 보면 호숫가 곳곳에 파라솔을 펴고 쉬고 있는 키르기스인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들에게 이식쿨은 어느 곳이든 맘에 드는 곳에 차를 대고 자리를 잡으면 그곳이 휴양지고 바다가 되었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에게 이식쿨은 쉼을 주는 바다였다.
▲ 촐폰아타 근처 바닷가 풍경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에게 이식쿨은 쉼을 주는 바다였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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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일 차로 접어든 우리는 촐폰아타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리조트 내 해변 아니 호수변으로 향했다. 리조트 내 호수변 모래사장에는 비치파라솔과 선베드가 깔끔하게 도열해 있었다.

우리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선베드를 빌렸다. 그곳에 누워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홀짝거리던 맥주 맛은 '음 꿀컥~' 뭐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포장이 심하다고 생각할테니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저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입안에 침만 고일뿐이다.
   
석양을 배경으로 호수에 뛰어들던 청년들의 밝은 얼굴이 그립다.
▲ 호수에 다이빙하는 키르기스스탄 청년 석양을 배경으로 호수에 뛰어들던 청년들의 밝은 얼굴이 그립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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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는 리조트 내 야외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모래사장 끝에 무대처럼 보이는 둥근 지붕의 개방형 원형 건물이 있었고 둥근 무대 주변으로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마다 가족 단위 손님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했다. 끼니 때마다 먹었던 키르기스 대표음식 샤슬릭과 한두 가지 음식을 더 주문하고 빠질 수 없는 맥주를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등을 기대고 늘어져 있으니 마침 호수 저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온몸이 확 풀어지며 황홀한 기분이 올라왔다. 호숫가에서 마신 맥주 탓인지 석양 노을 탓인지 다들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실 이때부터 광란의 밤 징조가 보였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한두 잔의 맥주를 더 시켰다. 알딸딸해진 기분과 포만감에 의자 깊숙이 몸을 늘어뜨리고 잠시 망중한을 즐겼다. 그러는 사이 해가 완전히 져서 주변은 어둑어둑 해졌다.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며 식당 중앙은 무도회장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때 검은 선글라스를 쓴 디제이가 나타나더니 몸을 흔들며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젊었을 때 클럽에서 듣던 리드믹컬 한 고음이 스피커를 타고 날아와 고막을 때리며 심장을 흥분시켰다.

두 아저씨로부터 시작된 댄스 배틀

"야 나가자."

그때까지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작부터 음악도 있었고, 조명도 번쩍거리며 돌아가고 있었지만 무대 위에는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데스파시토(DESPACITO- Luis Fonsi)가 흘러나왔다. 친구가 내 손을 끌었다. 황홀한 저녁노을에 취하고, 반주로 마신 맥주 취기에 달아오른 우리는 무대 중앙에 뛰어들어 아저씨 막춤의 진가를 보여 주었다.

우리는 청년 시절 함께 추었던 탈춤도 섞어가며 무대를 휘저었다. 한동안 지켜보던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이 한두 명씩 무대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무대는 사람들로 꽉 찼고 순식간에 무도회장 분위기로 바뀌면서 마치 댄스 배틀장에 온 것 같았다. 

한참을 그들과 하하 호호 거리며 놀다 체력의 한계를 느껴 살짝 빠져나왔다. 앉아서 그들 모습을 지켜보니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자기 춤을 추며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함께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애들은 가'라는 분위기에 나이 드신 어른들은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을 텐데 키르기스 사람들은 달랐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많이 달라졌다 하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여전히 그런 모습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오래된 사람이라 그런지 조금은 그런 모습이 부러웠다. 여하튼 유목민의 후예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참 잘 즐기며 사는 것 같다는 말이다. 
  
개방된 원형의 식당은 무도회장이 되었다.
▲ 춤추는 키르기스스탄 사람들 개방된 원형의 식당은 무도회장이 되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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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에 소개 된 키르기스스탄 사람들

공교롭게 요즘 읽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중앙아시아 얘기가 나와 놀랐다. 읽어 보니 왜 이 나라 사람들이 잘 노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글이 있었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이야기는 사기열전 중 대원 열전 편에 나온다. 여행가이자 외교관이었고 비단길 개척자로 알려진 장건(? ~ B.C. 114)이 서역을 다녀와서 한무제(B.C. 156 ~ B.C. 87)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대원(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접경지역) 서쪽에서 안식(현 이라크 일대와 이란 서부지역)에 이르는 나라들은 말은 꽤 다르지만 풍속이 거의 비슷하여 서로 상대방 말을 알아들었다. 그곳 사람은 모두 눈이 푹 들어가고 수염이 많으며 사고팔기를 잘하고 아주 작은 이익을 두고도 다투었다. 그들의 풍속은 여자를 존중하여 여자가 말하면 남자는 그 말에 따랐다.'

가서 보니 2천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말은 달라도 상대방 말을 알아들으려 하는 적극적인 성격이 이방인에게도 개방적인 성격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이곳 사람들은 눈이 크고 푹 들어가 있었으며 남자들은 수염이 많았다.

나는 여행 가기 전부터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여행 중 수염을 잘라 버렸다. 다들 나보다 몇 배 더 멋진 수염을 달고 있는데 내 수염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춤추며 노는 모습을 보니 장건의 말처럼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적극적이고 여성들의 리드에 따라 가족들도 무대에 우르르 몰려나왔다.

여행자의 눈으로 한눈에 알아봤던 장건의 안목도 대단했고 2천 년도 넘는 훨씬 오래전 그 사실을 역사책으로 남긴 사마천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글을 쓰며 다시 사진과 영상들을 보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발이 오그라든다. 허나 뭐 어떠랴. 이 코로나 시국에 천상의 나라 하늘 위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춤도 추고 왔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아마 다시 가도 분명 무대에 올라 춤을 췄을 것임이 확실하다. '부끄러움은 순간이고 추억은 영원하니까.'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오마이뉴스 게재 후 브런치 개인 계정에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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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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