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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1만2천원 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이 지난 4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한국노총 류기섭 사무총장 등 양대노총 관계자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1만2천원 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이 지난 4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한국노총 류기섭 사무총장 등 양대노총 관계자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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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천원의 아침밥'이 막 시행될 때의 얘기다. 천원의 아침밥이 시행되고 몇 주간 대학가 식당의 손님이 반절은 줄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전해준 식당은 싸고 양이 많기로 유명했었기에 의아했지만, 메뉴판를 보니 몇 년 새 가격이 2000원씩 올랐었다.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었고, 그 이후엔 물가가 올랐으니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격이 오르니 손님이 줄더라는, 출구 없는 긴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식당의 일화는 오늘날 한국경제가 처한 경제위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려운 말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는 오늘날 경제위기는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를 동반하고 있다. 노동자는 소득이 줄어 소비를 줄이고, 자영업자는 매출이 줄어 가격을 올린다. 모두 서로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주머니는 비었는데, 물가는 오른다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저소득층이다. 9일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하위 20%로 구분되는 소득분위 1분위는 벌어들이는 소득의 90%를 고정생계비로 지출했다. 공공요금 인상을 비롯한 물가상승으로 인해 고정생계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고소득층에서는 고급 자동차 소비가 늘었다고 한다.

경기침체의 심각성을 증명하는 통계와 보고서가 계속 발표되고 있다. 지난 7일 OECD는 세계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경기침체가 지금의 상태에서 고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1.5%에서 1.3%로 하향조정했다.

이러한 암울한 전망의 배경에는 15개월 동안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무역수지가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내수시장을 책임질 민간소비 성장률도 지난해보다 2.2%p 낮게 책정되었다. 수출과 내수시장의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무역 상황이 좋지 않아서 경제가 나빠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 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일까. 연일 노동조합을 향한 대대적 수사에 열을 올리는 등 지지율 챙기기에 급급한 정부에게서 그나마 한 가지 뽑으라면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제가 눈에 띈다. 말은 이렇다. 최저임금을 낮춰 사업주의 고용의지를 촉진해 고용률을 높이면, 고용효과로 인해 민간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 경제위기의 주요한 당사자인 저소득층에게 너무도 가혹한 이야기다. 이미 소득이 줄어 필수생계비만 겨우 지출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란 소리 아닌가.

사실 업종별 최저임금제 도입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현상유지론, 즉 동결론도 각박하긴 마찬가지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는 통계청이 조사한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통해 최저생계비를 계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 대토론회'에서는 최저임금 결정에 사용하는 지표의 현실화를 주장하며, 최저생계비로 월 255만 원이 타당하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는 작년 최저생계비에 비해 8.9%p 높은 것인데, 가계항목 지출 요소 총 13개 중의 11개 항목이 오르는 등 물가인상에 따른 현실적 지표 반영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최저생계비를 255만 원에 근거하면 최저시급은 시간당 약 1만2000원이 된다. 현행 최저시급보다 2500원가량 높은 것으로, 이전까지의 인상폭에 비해 큰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보니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많은 사회적 우려가 표출되고 있고, 정부 역시 자영업자 타격과 고용감소를 이유로 들며 최저임금 차등적용제와 동결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인하와 다름 없다.

그런데 나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제와 임금 동결이 경제성장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말이 잘 믿기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임금을 줄이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다시 자영업자를 비롯한 판매자들이 가격을 인상한다. 지금도 이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각종 보고서와 통계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 

게다가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제는 최저임금 도입 취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시장의 상황을 고려하며 결정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취지는 국민의 최저생계비용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사회보장정책이다.

즉, 최저임금은 경제정책을 보조하는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적인 삶의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공공요금 인상과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저소득층의 삶이 파괴되는 지금,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로 인한 후과는 다른 정책으로 보완해야 할 일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게으른 정치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이 줄었고, 자영업자가 고통받고 경제가 침체되었다는 윤석열 정부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최저임금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 월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정당한 인상 요구를 이기적으로 매도하지도 말라. 오히려 지금 가난한 이들이 윤석열 정부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해야 할 판이다.

최저임금을 올려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자영업자에 대한 대기업의 수탈과 높은 임대로 문제를 해결할 것,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내놓을 것, 최저임금으로도 생계를 꾸리기 어려우니, 삶의 기본적 권리를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할 것, 최저임금을 비롯해 실질적 임금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모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할 것.

최저임금에 자신의 책임을 맡겨놓고 국민들에게 윽박지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갈수록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게으른 정치를 반복할 것이라면, 자격 없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어떤가. 죄 없는 최저임금에 대한 비객관적 혐의를 씌우는 검사 대통령 윤석열은 수사도 못 하는 최저대통령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김건수님이 쓰셨습니다.


태그:#김용균재단, #김건수, #최저임금, #물가인상, #최저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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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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