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른쪽 팔에 깁스와 팔걸이를 한 채 조선소 야드를 걸어가는 하청노동자
▲ 팔을 깁스한 노동자 오른쪽 팔에 깁스와 팔걸이를 한 채 조선소 야드를 걸어가는 하청노동자
ⓒ 필자 이김춘택

관련사진보기

 
여기, 오른쪽 팔에 팔 보호대를 한 채 조선소 야드를 걸어가는 하청노동자의 사진이 있다. 이 노동자는 며칠 전 작업장에서 미끄러져 넘어져 팔이 탈골되는 사고를 당했다. 탈골이면 최소 몇 주 동안 요양과 치료가 필요할 텐데 왜 팔 보호대를 한 채 조선소 야드를 걷고 있는 걸까? 이 사진에 제목을 붙인다면 아마도 '산재 은폐'라고 붙여야 할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 조선소 사망사고의 70% 이상이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일컫는 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조선업에서 65명이 사고로 목숨을 빼앗겼는데, 이 중 47명(72.3%)이 하청노동자였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되는 통계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시행규칙 제7조에 따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매년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원하청 통합 산업재해 현황 조사표' 내용을 보면, 2018년은 전체 400명 중 정규직노동자 280명(70%), 하청노동자 120명(30%)으로 정규직노동자의 산재 건수가 하청노동자보다 2배 이상 많다. 2019년도 전제 516명 중 정규직노동자가 355명(68.8%), 하청노동자가 161명(31.2%)이며, 2020년 역시 전체 513명 중 정규직노동자가 326명(63.5%)이고 하청노동자가 187명(36.5%)이다.*
 
대우조선해양(주) 원하청 통합 산업재해 현황 조사표
▲ 표1. 산재현황조사표 대우조선해양(주) 원하청 통합 산업재해 현황 조사표
ⓒ 본문 표.

관련사진보기

 
조선소는 노동자 수도 하청노동자가 정규직노동자보다 2배 이상 많고, 특히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직접생산 공정의 80% 이상을 하청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다. 그 결과 사망사고의 70% 이상이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왜 전체 산업재해 통계는 거꾸로 정규직노동자의 재해가 70%를 차지하여 하청노동자의 재해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일까?

이 같은 거꾸로 된 통계를 이해하는 열쇠 역시 '산재 은폐'라고 볼 수 있다. 사망사고 통계와 마찬가지로 전체 산업재해 통계 역시 하청노동자가 70%를 차지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면,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하청노동자 산업재해 통계는 실제 산업재해의 5분의 1에 불과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즉, 실제로 발생하는 하청노동자 산업재해의 80%가 은폐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다쳐도, 아파도... 쉬지 못하는 하청노동자들 

산업재해보상법 제40조는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경우 요양급여를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산업안전법시행규칙 제73조 역시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에게 산업재해조사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도록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2014년 3월 13일부터는 4일 이상의 '요양'이 아니라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하도록 산업안전법시행규칙을 개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산업재해조사표 제출 기준을 '요양'에서 '휴업'으로 바꾼 것은 사용자에게 산업재해를 합법적으로 은폐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

다시, 팔이 탈골된 재해를 당했음에도 출근해서 조선소 야드를 걸어가는 하청노동자 사진으로 돌아가 보자. 하청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게 되면 하청업체에서는 산재신청보다는 공상으로 치료하기를 권유 또는 강요한다. 아주 큰 사고나 장애가 뚜렷이 남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같은 하청업체의 뜻을 거슬러 하청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산재를 신청하든 공상으로 처리하든 사업주가 고용노동부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만약 다친 노동자가 집이나 병원에서 요양하지 않고, 일은 하지 않더라도 출근해서 하루종일 탈의실이나 휴게실에 있다가 퇴근한다면? 사진 속 하청노동자처럼 최소 4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골절 재해를 입었더라도, 출근을 하게 되면 3일 이상의 '휴업'에 해당하지 않아 사업주는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하지 않아도 무방하게 된다. 즉 노동자의 산재를 합법적으로 은폐할 수 있다.

그래서 조선소 하청업체는 노동자가 공상처리에 동의하면 "공상기간 동안 일을 안 하더라도 출근하면 일당의 100%를 지급하지만, 집에서 쉬면 일당의 70%만 지급한다"고 말한다. 노동자가 산재가 아닌 공상처리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평균임금의 70%가 나오는 산재 휴업급여로는 당장 생계유지가 어려워서인데, 공상으로 집에서 쉬면 일당의 70%만 지급한다고 하면 결국 재해 노동자는 공상 기간에도 집에서 쉬지 못하고 출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무법천지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는 매일매일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하다 다쳐도 큰맘을 먹지 않고서는 감히 산재신청을 하지 못한다. 또한, 공상처리를 하는 경우에도 집에서 맘 편히 쉬면서 치료하지 못하고 반 강제로 다친 몸으로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그 결과 하청업체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음에도 법이 정한 바에 따라 고용노동부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하지 않고 산재를 은폐한다.

고용노동부는 재해 노동자의 충분한 치료를 가로막고, 사업주가 산업재해를 은폐할 수 있도록 조장하는 산업재해조사표 제출 기준을 현행 3일 이상 '휴업'에서 과거의 4일 이상 '요양'으로 다시 변경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소 하청업체가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일이 없는지, 재해 노동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는지, 산재신청을 했다고 불이익 당하는 일이 없는지 적극 지도, 감독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은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공개하여 제공하던 '원하청 통합 산업재해 현황 조사표'를 2021년 통계부터는 비공개 결정하여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비공개 이유가 그 내용이 해당 기업의 "경영상,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해당 기업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보다 기업의 영업비밀과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김춘택님은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입니다.


태그:#김용균재단, #이김춘택, #대우조선하청노동자, #산업재해조사표, #산재은폐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