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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2020년 12월 11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던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가 2021년 1월 8일 저녁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연 해단식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왼쪽은 고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씨, 오른쪽은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2020년 12월 11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던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가 2021년 1월 8일 저녁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연 해단식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왼쪽은 고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씨, 오른쪽은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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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그 사회가 속한 질서와 규칙, 합의 내용에 귀속되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은 시장경제체제이긴 하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규제를 모두 제거해버린 상태를 지향하는 사회는 아니다. 사회공동체가 유지되는 바탕 위해서 기업의 이윤추구가 가능할 수 있도록 적절한 규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원리에 기초하여 우리사회는 기업에게 노동자가 더이상 일하다가 죽지 않도록 안전한 환경을 마련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조치를 취할 법적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2021년 제정하여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자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기 위한 목소리를 모으더니 이제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움직임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7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으로 '기업인들의 투자 결정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규제인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야 한다'는 지시를 했는데 규제 철폐 대상 중 핵심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다음날 바로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이 참여하는 '킬러 규제 혁신태스크(TF)'가 구성되었다.

발족 직후 진행된 첫 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장이 출석한 것으로 보아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규제완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참고 : 뉴스토마토, 2023. 8. 9. 기사, '잇단 비극에도…중대재해처벌법 역주행 시동').

현 정부는 여소야대 상황으로 법안 개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어려움이 있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완화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시행령 개정 작업에 착수했는데 올 하반기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TF를 구성하여 올해 6월까지 정부입법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아직 개정안 마련이 되지 않은 상황인데, 정부는 올해 안으로 킬러 규제 철폐의 일환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 또는 무력화하기 위해 TF의 입장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소야대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9월 7일 내년에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기간을 늘리는 법률개정안을 제출했다. 국민의힘 임이자 국회의원을 대표로, 여당 국회의원 총 12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기간을 기존 2년인 2024년 1월 27일에서 2026년 1월 27일까지 늘리는 일부개정법률안을 낸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적용을 막아보려는 정부와 재계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진짜 기업을 죽이는 규제인가?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상당한 인력과 비용을 들여야 되는 상황이라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기업들은 기존에 들이던 안전보건에 관한 비용보다 지출비용이 많아졌기 때문에 기득의 이익을 누리는 입장에서 반발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투자유치가 어렵거나 기업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현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한 산업안전보건 규제가 소위 '킬러 규제'라는 인식은 기업 입장에 경도된 견해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가치 인정 기준에서도 벗어난 인식이다.

세계 투자자들과 기업들은 이미 기업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ESG 평가)하여 이를 근거로 하여 투자를 하고 있고 그중 산업재해 발생률 및 안전보건시스템을 어느 정도 갖추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지를 기업의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산업재해율이 높은 기업의 경우 낮은 평가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고 향후 경쟁력과 자본 유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산업안전보건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도록 촉구하고 예방의무를 다하지 못한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기업을 죽이는 '킬러 규제'라는 인식은 '기업 경영의 세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인식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규제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2022년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산업재해통계에 의하면, 총 재해자수는 13만 명에 이르고 사고재해자수는 약 10만 명, 질병재해자수는 2만3천 명이고 이중 사망자는 2223명(사고사망자수 874명, 질병사망자수 1349명)이다.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산업재해자 수가 보고되고 있는데 경제 및 산업규모와 수준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산업재해율은 매우 높다.

정부와 기업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업을 죽이는 규제라는 인식에서 기업의 사회적 의무로 인식하고 실제 산업재해율을 낮추기 위한 여러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데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와 내용을 '킬러 규제'라고 하면서 산업안전보건 예방체계 구축은 관심이 없고 기업의 무한 자유보장을 위해 각종 규제완화, 철폐 및 국회에서 제정한 법안의 기능을 축소시키는 시행령 마련에 집중하고 있어 걱정이다. 정부는 '킬러 규제'를 없애겠다는 정책은 실상 노동자들을 죽이는 기업('킬러')을 내버려두겠다는 것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변화를 위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대산업재해는 발생하고 있다. 아직 이를 두고 법의 효과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시행기간이 짧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정착하고 법적 효과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상당 시간 동안 적용해보고 살펴보아야 한다.

2022년 611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해 644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였는데(경향신문, 2023. 1. 19. 기사 '2022년 퇴근하지 못한 644명···건설업이 절반 이상') 올해 9월 현재 총 20여 건 기소된 것이 확인되어 기소율이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낮은 기소율에 더하여 최근 에쓰오일 불기소 사건(경향신문, 2023. 8. 22. '안전보건 임원을 '경영책임자'로 본 검찰…"중대재해법 무력화"')처럼 대표이사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CSO)에게 안전보건 관련 사항을 위임한 경우 대표이사를 경영책임자로 보지 않아 불기소 처분을 하는 사례가 확인되어 수사기관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 채석장 붕괴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삼표산업 사건에 대하여 검찰은 실질적 경영책임자인 삼표그룹 회장을 기소한 사례(경향신문, 2023. 3. 31. 기사 '검찰, 삼표그룹 회장 중대재해법 위반 기소… '오너 책임' 첫 사례')도 존재하는 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수범자이자 처벌대상인 '실질적 경영책임자'에 대한 법리적 논쟁이 진행 중이다.

법원도 각 사안별로 처벌 수준을 달리하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전과 획기적으로 양형수준이 높아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기소된 사건의 경우 무엇보다 과거 산업안전보건법과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시와 달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으로 그동안 처벌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경영책임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달라진 점을 체감하고 있다. 물론 양형수준은 구체적인 사안과 재판부에 따라 제각각이라 양형수준은 앞으로 해결해 나갈 문제이다.

한국제강 사건 판결문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한 법원의 판단기준을 다음과 같이 설시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와 시민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이는 근로자 등 종사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해치는 사회적 문제로서 예방의 필요성이 크다. 이러한 중대재해사고를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견지에서 최근에 새로운 법률이 만들어졌다. 즉, 안전사고의 예방효과를 높이기 위해 경영책임자 개념을 신설하고,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에게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한편, 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등을 중하게 처벌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와 일반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어 시행된 것이다."

위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했느냐, 즉 일하다가 노동자가 죽지 않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구축하는 데 진정 이 법이 기능하는지 여부를 제대로 평가할 일이지 '킬러 규제'라면서 멀쩡한 법을 흔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동자 죽이는 '킬러기업'이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적어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동의한 국민들의 인식수준인데, 정부의 정책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김용균재단 감사이자, 민변 노동위 노동자건강권팀 팀장으로 활동하는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입니다.


태그:#김용균재단, #실질적 경영책임자, #중대재해처벌법, #문은영, #킬러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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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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