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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5년이 흘렀습니다. 5주기를 맞아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하는 김용균과 안전한 일터에 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다시 5년 뒤에는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라며 김용균에게 보내는 편지를 싣습니다.[기자말]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사업장인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이 제정됐다. 2019년 당시 문재인 정부가 제작한 포스터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사업장인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이 제정됐다. 2019년 당시 문재인 정부가 제작한 포스터
ⓒ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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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동지, 사실 생전에 김용균 동지를 알지 못했으니 '동지'라 불러도 될까 싶습니다만, 비록 사후에라도 저와 김용균 동지가 바라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서는 같은 뜻을 가진 동지라 여깁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김용균 동지의 말은 불행히도 동지가 죽은 다음에야 우리 귀에 닿았습니다. 김용균 동지, 평안히 쉬고 계신지요? 저는 건설노동자 박세중입니다.

5년 전 뉴스를 접했을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하다가 죽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쳤습니다. 많은 이가 함께 울며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고, 또 많은 이가 위험 작업을 낮은 곳으로 내치는 자본의 생리에 분노했습니다. 김용균 동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김용균법'이라 불리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많은 노동자가 목소리를 냈습니다.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초석이 될 법한 산업안전보건법을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또 다른 김용균 동지의 죽음을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법'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법 제정·개정을 요구하며 투쟁합니다. 김용균 동지가 떠나고서 2년이 넘는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산재 피해 유가족과 노동자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단식 투쟁으로 '기업살인법'을 요구했고, 건설노동자들도 중앙과 지역의 민주당사를 점거해 당론 채택을 요구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10만이 넘는 국민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동의했습니다. 이 청원을 올리신 분은 바로 김용균 동지의 어머님이시죠. 이렇게 만들어진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입니다. 

처벌 받지 않는 사업주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될 때 사용자 측은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법 시행을 앞두고서는 명절을 핑계로 많은 건설현장이 멈추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공사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휴일도 없이 일을 시키는 건설사가 결코 하지 않을 조치입니다. 절반에 달하는 가장 많은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건설업에서 '1호' 중대재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온 사회의 이목이 건설현장에 집중되었습니다. 당시의 기대대로라면 이 땅의 중대재해는 모조리 사라질 것 같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안타깝게도 또 다른 김용균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에 부칙을 두어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현장)에는 법 적용을 유예하여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됩니다. 전체의 80%가 넘는 중대재해가 50인(억)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건설에서는 공사를 분할 도급하여 50억 미만 현장을 만드는 일이 잦습니다. 그럼에도 현 정부와 여당은 법 적용을 또다시 유예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정부는 법의 실효가 없다고 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 제정 이후 중대재해는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법을 무력화하는 정부의 메시지가 나오고 수사-기소-처벌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면서 중대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실효가 없어 보이는 것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400여 건의 중대재해 가운데 기소된 건은 20여 건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업주를 합당하게 처벌해야만 법의 취지대로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수의 중대재해를 일으켜 노동자를 죽게 하고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 사업주들이 많습니다. 
 
이씨의 왼쪽에는 디엘이앤씨 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 권영국 변호사, 오른쪽에는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가 걷고 있다.
▲ 고 강보경 노동자 어머니 이씨의 추모 행진 모습. 이씨의 왼쪽에는 디엘이앤씨 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 권영국 변호사, 오른쪽에는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가 걷고 있다.
ⓒ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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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e편한세상'이라는 아파트로 잘 알려진 DL이앤씨가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만 7번의 중대재해로 8명의 노동자가 DL이앤씨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8번째로 사망한 고 강보경 노동자는 부산의 DL이앤씨 현장에서 창호 설치작업을 하던 중 6층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중량물 취급 작업이었음에도 이에 해당하는 안전조치가 전혀 없었으며, 추락방호망이나 안전난간도 없었고, 안전대를 지급하지도, 안전대를 걸 설비 등도 설치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산에 계시던 어머님과 누님이 서울의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시다가, 사후 100일이 넘게 흐른 뒤에야 사측은 겨우 사과했습니다. 사과는 했습니다만, DL이앤씨 경영책임자 누구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법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연이은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야 할까요?

건설현장에서는 갱폼이라는 초대형 외벽 거푸집에서 추락해 그 안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죽는 사고가 올해 들어서만 3차례 발생했습니다. 지난 5년간 21건의 갱폼 사고가 있었고, 22명이 사망했습니다. 물론 안전보건기준규칙에는 인양장비에 매단 채 해체작업을 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투입되는 노동자의 수와 공사기간을 줄여 조금이라도 이익을 취하려는 자본의 지시 없이 규칙 위반은 불가능합니다. 갱폼과 함께 떨어진 노동자들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갱폼의 볼트를 풀었을까요? 이어지는 갱폼 추락사고를 접하면서 김용균 동지가 생각났습니다. 세상 어느 노동자가 죽으려고 작업장에 들어가겠습니까. 

38명의 건설노동자를 죽게 한 2020년 한익스프레스 산재참사는 또 어떻습니까. 동시에 작업해서는 안 되는 우레탄 폼 뿜칠작업으로 유증기가 발생한 상태에서 배관 용접작업을 시켜서 불똥이 튀어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위험작업이었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무엇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리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화재의 근본적인 원인은 안전을 담보하지 않은 발주자의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때문이었고, 한 푼이라도 더 남기려는 시공사의 위험한 공사지시 때문이었습니다. 

노동자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다

지난 노동절,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 열사가 스스로 몸에 불을 당기셨습니다. 건설노동자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공갈 협박'이라 이름 붙인 정권에 대한 저항의 행동이었습니다. 정권은 건설자본의 민원을 해결하는 듯, 건설노조를 쥐어짜며 건설현장을 불법이 판치는 지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옥 같은 현장에서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의 투쟁은 멈출 수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군가에게 안전은 거추장스러운 비용일 뿐입니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느니 사고가 났을 때 벌금 내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가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건설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세계에서 김용균 동지를 만나 뜨겁게 포옹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박세중 기자는 건설노조 노안부장입니다.


태그:#김용균, #5주기, #일하다죽지않게, #김용균에게보내는편지, #오늘도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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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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