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8년 12월 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가 석탄 이송용 컨베이어벨트 상태를 점검하던 중 컨베이어벨트 사이에 끼어 사망하였다. 5년 전 김용균씨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산업현장의 안전관리 미흡과 온갖 위험한 업무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 수면 위로 끌어올린 너무도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김용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쏘아 올린,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와 '위험의 외주화'라는 이 사회의 화두를 붙들고 5년간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였고, 그 결과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었고, 중대재해 발생의 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물을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산업 현장에서 위험 요소는 무엇이고 사고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회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하고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산업안전보건법령 속에서 '페이퍼'로만 존재했던 '위험성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현장의 사고 발생 요소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김용균 노동자를 비롯해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삶을 기억하며 한 명의 노동자라도 더 살리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사회적 변화를 일으킨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사고에 책임이 있는 원청, 하청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결국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난 12월 7일 대법원은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사고에 대하여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책임자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하고 하청의 실무책임자 일부에게만 집행유예와 벌금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였다. 24세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지만 원·하청 회사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과연 대법원은 이러한 결론을 내려야만 했을까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실질적 고용관계에 눈감은 대법원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7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열린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재판부는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7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열린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재판부는 원청인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사망 사고의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 사건 쟁점은 원청 대표와 본부장의 구체적, 직접적인 주의의무 인정 여부, 원청과 피해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원청과 피해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 인정 여부, 원청의 안전조치의무 여부였는데,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면서 위 쟁점들은 모두 부정되었다.

특히 대법원이 원청의 하청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시·감독 사실을 인정하였으나 "실질적 고용관계"를 부인한 원심 판결 내용을 그대로 인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서부발전소는 전 공정이 컨베이어벨트로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석탄 운반업무만 분리할 수 없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분리하여 하청에 넘기다 보니 원청이 하청에 수시로 지시·감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원심은 원청과 하청노동자의 구체적인 지시·감독 행위를 인정하면서 "실질적 고용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 "이러한 지시·감독행위는 용역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급인으로서의 일반적인 지시권에 기초한 권한 행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구체적인 지시·감독 행위를 하여도 "실질적 고용관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였다.

원심의 이러한 논리라면 원청은 구체적 지시와 감독을 하면서도 도급계약을 이유로 "실질적 고용관계"로 판단받을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법원이 원청의 구체적인 지시·감독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고용 관계를 부인하는 이유에 대하여 판결문에 설시된 판결 내용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개정 전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해서 발생한 한계가 아니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구체적인 지시·감독을 하여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해야 하는 실질적 고용관계상의 사업주로 볼 수 있는지, 업무상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주의의무가 존재하는지에 관한 사실관계 및 법리 판단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판결로 보인다.

또한 법원은 '김용균 사망사고 발생 전 다른 컨베이어벨트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음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 사고가 김용균 사망사고가 발생한 설비와 그 형태나 작업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원청 대표이사가 사고발생에 대한 주의의무를 인식할 수 없었다'는 원청의 변명을 적극 수용해주었다. 다른 컨베이어벨트에서 발생한 사고로 이번 사고를 예방하는 인식을 갖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라면 동일한 장소와 기계에서 사고가 났어야만 인식이 가능한 것이란 얘기인데, 어떻게 안전점검과 사고예방에 대하여 이처럼 무책임한 판단이 가능한가.

김용균 사망사고가 발생한 석탄화력발전소는 컨베이어벨트로 석탄이 운반되는 연결된 업무이다. 당초 연결된 업무를 분절하여 일부 업무를 하청업체에 넘길 수 없는, 아니 넘겨서는 안 되는 업무를 분리하여 하청을 주는 것에서부터 사고의 위험성은 커져 버렸다. 형식적 법리인 "실질적 고용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원청은 면책되고 하청은 사업장 안전관리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하청노동자들은 관리되지 않은 위험 속에 방치되어 사고를 당한 것이다.

대법원은 형식적 계약관계로 가려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여 업무의 성격상 전체 공정이 연결된 경우 사업장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원청에 사업장 안전관리의 책임이 있다는 "실질적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렸어야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실질적 고용관계가 없다는 '형식적 법리'로 안전 관리와 사고의 책임에서 원청 대표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오랜 기간 이러한 형식적 법리로 원청에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는 위험한 사업장이 유지되는 데 일정한 책임이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기존의 잘못된 판단을 만회할 기회를 놓치고 5년을 기다린 유족과 시민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건의 실질적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면제하여 위험한 작업장이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가장 크다.

실질적 정의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한 대법원 판결의 한계와 아울러 이번 판결을 통해 경영 책임자에게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지운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을 더욱 더 느꼈다.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이 여러 공격을 받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적용되고 법 취지에 따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이 법을 지켜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문은영은 (사)김용균재단 감사이자 민변 노동위 노동자건강권팀 팀장으로 활동하는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입니다.


태그:#김용균재판, #대법원판결, #김용균재단, #문은영, #중처법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