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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이 가장 따뜻한 겨울이라고들 한다. 지구기온상승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겨울 역시 추운 건 매한가지다. 북극 한파로 불리는 냉기류의 남하 현상으로 매서운 한파가 이어졌으며, 적설량은 서울 기준 최대라고 한다.

이 겨울날을 코앞에 두고 총파업을 결의했고, 얼어가는 땅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으며, 해를 넘긴 지금도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이하 고객센터)들이다. 이들의 요구는 "책임도 권한도 없다"는 하청구조에서 벗어나 공단이 직접 채용하라는 것이다.

왜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은 겨울날 거리로 나섰나

이번 파업은 2021년 파업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서 제외되었다. 정규직화 여부는 사측의 자율의지에 맡겼지만, "책임도 권한도 없다"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구조를 방치하는 하청구조의 고질적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정부 나름대로 정규직화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단계를 분류했다고 하지만, 콜수 압박에 휴식은커녕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증언이 생생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청인 공단이 하청업체에게 주는 인건비의 일부는 하청업체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원청이 얼마의 돈을 주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격무에 시달렸다. 정기적인 시험도 봐야 했다. "책임도 권한도 없다"는 하청업체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갈취할 합법적 권한 위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해온 셈이다.

다행히 2021년 파업의 결과로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공단의 소속기관으로 전환되기로 했다. 구체적인 전환의 방법은 공단 내 여러 주체들과 외부 전문가가 모인 협의체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한계가 있지만 하청업체 신분에서 벗어나 공단의 노동자라는 정당한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시 파업에 나섰다. 공단이 소속기관 전환 약속을 폐기히고 공개채용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입사시험 치른 노동자들에게 다시 공개채용? 

이에 노동자들은 이미 고된 노동강도로 인해 퇴사자도 많고, 신규 채용도 미달되는 상황에서 공개채용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의 일환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필자가 바깥에서 바라보기엔 노동조합을 와해하기 위해서 공개채용을 통해 노동자 간의 경쟁을 유발하고, 연대의식을 저하해 노동조합을 탄압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진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 공단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일은 청년들에게 꿈의 기회이자,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경쟁이란 고난이도 입사시험이고, 즉 정규직의 지위는 높은 시험 성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하니 현재 본부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시험도 치지 않고 정규직이 될 수 있냐며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요구가 마치 특혜인 양 매도한다. 2021년 당시 정규직 노조 내 청년세대들은 지도부를 향해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시 탈퇴하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과거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과정의 '공정성' 논란이 고객센터 노동자들에게 옮겨 붙은 것이다.

그러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억울하다. 아니, 이들을 향한 매도는 매우 부당하다. 길게는 10년 이상, 짧게는 2년에서 4년 이상 상담에 응해왔던 이들이 새롭게 시험을 쳐야 할 합리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업무 특성 상 수많은 상담정보를 습득하고 있고, 매우 높은 노동강도로 일해왔다는 점에서 "시험도 치지 않은 이들"이라는 것은 가혹한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들이 시험을 치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업무 특성상 복잡한 건강보험 제도를 꿰고 있어야 하는 탓에 자격, 부과, 징수, 보험급여, 장기요양 등 5개 과목 각각에 대해 모두 시험을 치른 노동자도 있다. 한 과목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갈 수도 없다. 입사 자격도, 계속 일할 자격도 스스로 입증해왔다. 이를 공단이 모를리 없다. 그러니 노조파괴를 위한 꼼수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지난 12월 18일,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서울에서 원주 본사까지 500리 행진을 했다. 그 추운 날 거리로 나선 마음을 절박함이라고 해야 할지, 당당함이라고 해야 할지, 노동자들의 속사정을 일일이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합리적 선택지를 두고서 공개채용 운운하고, 시험도 치르지 않은 특혜세력으로 매도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공단의 무책임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왔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양회동 열사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고 말했고, 방영환 열사가 "나는 살고 싶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바쳐온 그 시간이 수모당하지 않는 새해를 바란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의 투쟁이 눈에 밟힌다. 이 투쟁이 꼭 승리해서 그들이 당한 수모가 공단이 행한 과오로 바뀌는 그날을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건우 님은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국민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 #김용균재단, #김건수, #고객센터비정규직, #소속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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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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