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해 8월26일 제1차 6자회담 참석을 위해 북한 쪽 대표인 김영일 부상이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1차 6자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 연합뉴스 배재만
오는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2차 6자회담이 미국의 강경자세와 한국,일본의 동조로 별 성과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회담도 실패할 경우 '대화의 모멘텀'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며 북한과 미국이 더욱 극한적인 대립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짙다.

지난 3일 북한이 2차 6자회담을 수용한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낙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이번 회담은 지난해 8월말 1차 회담이 열린지 무려 6개월만에 개최되는 것으로 그동안 당사국 사이에 많은 접촉이 있었고 무엇보다 북한이 북미 불가침 협정 체결 요구를 사실상 철회하고 핵 동결 의사를 밝히는 등 유연한 자세를 보인 것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를 이번 6자 회담에서 정식 의제로 다루겠다며 "북한이 자백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한국과 일본이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고농축우라늄은 사찰을 통한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미국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과 관련한 증거를 공개하지 않은 상태다. 북한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번 6자회담에서 한미일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자백하라"고 주장하고 북중러가 "있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자백하냐"고 맞설 경우 서로 말싸움만 벌이다 끝날 수도 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부터 미국의 보상을 전제로 '핵 계획 포기'와 '핵 활동 동결'은 물론 "핵무기를 더 만들지 않으며 시험도 하지 않고 이전도 하지 않으며 평화적 핵동력공업까지 멈춰 세울 수 있다"까지 밝혔다.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렇게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기존의 플루토늄 문제 외에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고있다. 즉 북한의 태도 변화로 핵 문제에 진전 기미가 보이자, 부시 행정부 특히 강경파들이 이번 6자회담을 실패로 몰고가려는 의도에서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다시 쟁점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10월의 재앙

지난 1994년에 1차 북핵위기는 그해 10월 제네바 합의로 일단 봉합되었다. 그러나 지난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문제가 불거지면서 2차 북핵위기가 발생했다. 2002년 10월 3~5일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미 행정부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을 시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10월 16일 발표된 미국의 주장은 ▲북한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북한은 미국을 비난하면서 그들은 북미기본합의가 파기된 것으로 간주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수년간 계속되어왔다 는 것 등이었다. 미국은 북한 쪽에게 관련 증거를 제시했고 이에 견디지 못한 북한이 시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행정부의 발표 뒤 북한은 ▲켈리 미국 특사가 아무 근거자료도 없이 우리(북한)가 핵무기 제조를 목적으로 우라늄농축 계획을 추진하여 조미기본합의문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미국의 가중되는 핵압살 위협에 대처하여 우리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즉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 대비해 핵무기를 가질 '권리'를 말했는데 이를 부시 정권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왜곡했다는 것이다. 양 쪽의 주장은 팽팽히 맞섰으며 지금까지도 진위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는 "지난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국교정상화,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과와 경협상식의 보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북일평양선언'을 발표했다"며 "김대중 정권도 미국의 압력을 거부하고 계속 남북경협을 추진했다. 부시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행동에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북일평양회담 전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이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라는 증거를 제시했으나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평양으로 갔다"며 "이는 미국이 제시한 증거가 별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 행동에 동조하지 않고 믿었던 고이즈미 정권까지 대북 교섭에 나서자,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사건을 의도적으로 터뜨렸다는 것은 국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켈리의 방북 뒤 2차 북핵위기는 시작됐다. 북한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며 이 합의의 주요 내용이었던 연간 50만t의 대북 중유공급을 2002년 12월에 중단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북한의 경수로 공사도 중단해 사실상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 17일 평화네트워크 주최로 '2차 6자회담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적극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 오마이뉴스 김태경

잠잠하다가 최근에 부각

2차 북핵위기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둘러싼 미국의 의혹제기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북미 협상에서 이 문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주요 쟁점은 북한이 8000개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문제였다.

그러다 최근 북한이 핵동결 의사를 밝히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자 미국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쟁점화하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정황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즉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에 우라늄 농축기술을 수출했다는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 "칸 박사가 지난 1990년대 10여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해 핵무기 연료를 만드는 원심분리기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을 도왔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만들 수 있는 원심분리기의 재료인 고강도 알루미늄을 수입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계속해서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부인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고농축우라늄은 농축도가 0.71%인 우라늄 235를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농축도를 90% 정도로 높인 것을 말한다.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데 쓰이는 원심분리기 한 개는 높이 2m에 지름이 40~50㎝ 정도다. 원심분리기 한 개를 아무 고장없이 1년간 가동했을 때 고농축 우라늄 30g이 나온다. 원심분리기 40개를 한 세트로 했을 때 1년에 1.2㎏ 정도 생산할 수 있다.

히로시마급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농축우라늄 25㎏이 필요하다. 즉 원심분리기 850개를 1년간 풀 가동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핵폭탄 2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심분리기 1700개가 필요하다.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사찰을 통해 발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원심분리기는 전력소비가 적고 모든 원심분리기를 한 군데 모아놓을 필요가 없이 분산시켜 운영할 수 있다. 1000여개의 원심분리기를 한 곳에 모아놓는다고 해도 300평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주석궁에 숨겨놓아도 된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얻을 때는 크립톤-85라는 방사능 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탐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고농축우라늄 생산과정에서는 방사능이 극히 미약하다.

고농축우라늄 시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북한 지역의 의심 지역을 미리 선정 한 뒤 반경 수 ㎞ 범위로 농축과정에서 누출되는 미량의 우라늄 분진을 포함하고 있을 환경시료를 채취해 분석하는 방법 밖에 없다.

검증 과정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군사시설도 사찰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없이 김정일 정권이 모든 시설을 사찰하도록 허용할 리는 없다.

전문가들 "사찰을 통한 검증 불가능"

원자력정책센터 강정민 박사(핵공학)는 "고농축우라늄은 사실상 사찰을 통한 검증이 불가능하다"며 "그래서 미국은 북한에게 자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자백한다고 해도 미국은 미흡하다며 계속 물고 늘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강도 알루미늄은 다용도로 항공기의 부품, 포탄의 탄피 등에도 쓰인다. 북한이 고강도 알루미늄을 수입했다고 이것이 곧 원심분리기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미국은 이라크가 고강도 알루미늄을 수입했다는 것을 대량살상무기 개발의 유력한 증거로 주장했으나, 조사결과 이는 포탄의 탄피로 쓰인 것으로 밝혀졌다.

강 박사는 "파키스탄의 칸 박사 얘기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설사 기술 유출이 있었다고 해도 파키스탄이 대량으로 원심분리기를 북한에 보내지 않은 이상 설계도만 있다고 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원심분리기는 분당 5만~7만번 정도 회전을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단히 성능 좋은 모터와 전자제어 장치가 있었야 한다. 북한은 원심분리기의 분당 회전수의 절반도 안되는 미그기 엔진도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북한의 기술수준으로 고강도 알루미늄과 설계도만 있다고 원심분리기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어떤 증거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8000개의 핵연료봉을 처리하면 5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더 시급한 것은 이 문제인데 이는 놔두고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는 농축우라늄 계획을 문제삼는 것은 미국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번 6자회담과 관련해 정부에 의견을 전하기 위해 오는 19일 오전 이 차관보를 면담할 계획이다.
ⓒ 연합뉴스 황광모
완강한 미국의 태도

현재 미국의 태도는 완강하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13일 미국기업연구소(AEI)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이 주관한 세미나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은 파키스탄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증언으로 미뤄볼 때 미국의 평가보다 훨씬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은 플루토늄 핵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고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과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도 완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워싱턴 포스트>도 16일 부시 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 대표단은 이번 6자회담에서 플루토늄 계획과 별도인 고농축 우라늄(HEU) 계획을 북한이 완전 공개하고 해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라며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계획을 시인하지 않는 다면 어떤 합의도 이룰 수가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태도에 한국 정부가 적극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지난 1월23일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핵 폐기든 동결이든 고농축 우라늄을 포함해야 한다"며 "미국은 확고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승주 주미 대사도 지난 11일 "지난 2002년 10월 평양방문에서 미국은 심증과 증거가 있어 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 문제를 제기했고 최근 여러가지 정황및 증거는 그런 의혹을 더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부시 행정부 정책에 꽤 비판적인 인사까지도 증거를 본 사람들은 북한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해 의심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 문제 분리해야

이런 정부의 태도에 대해 많은 국내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실체도 불분명하고 미국이 관련 증개를 공개한 적도 없고, 검증도 불가능한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미국이 들고 나온 것은 의도가 명확한데 이에 한국정부가 동조하는 것은 6자 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는 것이다.

강정민 박사는 "이수혁 차관보나 한승주 대사가 대체 무슨 뜻으로 미국에 동조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미국이 제시한 증거들이 신빙성이 있을 지 모르지만 해석에 따라 판단은 다를 수 있다. 핵 기술자들이 아닌 이 분들이 다향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들어봤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전쟁이 끝난 지 10개월이 되도록 그 어떤 대량살상무기도 발견하지 못했다.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6자 회담에 대해서 여전히 낙관하는 전망도 있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고농축우라늄 문제가 불거진 것은 미국의 협상 테크닉으로 본다. 미 강경파들이 온건파가 주도권을 쥐는 것을 견제하고, 북한의 높아진 기대를 한풀 꺽으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이번 회담에서는 풀루토늄 문제는 해결하고 고농축우라늄 문제는 다음 3차 회담으로 넘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를 한국이 그대로 방치한다면 문제는 커질 것이다. 한국 정부가 애초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의제화시키는데 적극 동조하다가, 그대로 두면 6자회담이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좀 더 중립적인 태도로 돌아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조성렬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는 플루토늄 문제와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분리 처리해야 한다"며 "지난 1998년 8월 북한이 대포동 1호 탄도 미사일을 발사해 미사일 문제가 한창일 때 금창리 핵시설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금창리 핵 시설 의혹은 이제 시작된 것이다. 이 문제는 뒤로하고 북한의 탄도 미사일 문제를 먼저 논의하자'고 미국을 설득해 '페리 보고서'가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음 3차 6자회담 때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논의하던지, 아니면 북한이 주장한 '북미 전문가 회의'를 구성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해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미국이 북한에게 고농축우라늄에 대해 자백하라고 하는 것은 그들도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미국의 정보도 정확하지 않았다"며 "한미간에 정보는 공유할 수 있지만 판단은 독자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숨쉬기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