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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세계생명문화포럼'을 주도하고 잇는 시인 김지하씨.
ⓒ 정윤수

'2004 세계생명문화포럼'이 오는 11월 12일(금)부터 14일(일)까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일원에서 열린다. 지난해 12월 세계 17개국의 생태학자, 환경운동가, 사상가, 문화이론가들이 참여했던 첫해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에는 '한국의 생명담론과 실천운동'을 주제로 다양한 학술행사와 예술 행사가 열릴 계획이다.

이 행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 김지하 시인은 "금년 행사는 지난해 제시된 생명학의 이론적 근거를 더욱 확실히 하고 생명 담론이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함께 모색할 만한 것임을 확인하는 자리"라며 "그간 분산돼 진행돼온 생명운동의 대중적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김 시인과의 인터뷰는 최근 경기도 일산에 있는 김 시인의 자택에서 진행된 것을 간추린 것이다. 이 행사에 대한 보다 상세한 사항은 '생명과 평화의 길' 홈페이지 www.wlcf.or.kr를 방문하면 알 수 있다.

다음은 '2004 세계생명문화포럼' 행사와 관련한 김 시인과 인터뷰 요약.

- 담론과 토의가 많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예술 행사의 비중도 상당히 커졌습니다. 올해 포럼의 목적은 무엇인지요.
"올해는 지난해 제시된 생명학의 이론적 근거를 더욱 확실히 하고 생명 담론이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함께 모색할 만한 것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분산적으로 진행되어온 생명운동의 대중적 영향력을 높이고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운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해나가려고 한다."

- 프랑스의 철학자 필립 솔레르스는 지구를 '거대하게 회전하는 쇼핑몰'이라고 불렀습니다. 참으로 오늘날 지배적인 문명은 더 많은 것을 획득하기 위한 만인의 전쟁처럼 보입니다. 한반도의 불가피한 실존적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에 '모심과 살림'의 생명 운동은 자칫 한가로운 얘기가 되지 않을런지요.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지배적인 문명과 그 담론은 위기에 처해 있다. 폭염과 폭설, 괴이한 전염병, 전쟁과 폭력 따위가 일상이 된 현실 아닌가. 일종의 빅 카오스, 요컨대 갖가지 병적 징후와 도덕의 붕괴, 시장의 파탄과 전쟁의 욕심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터, 이러한 때에 서로 섬기며 나누는 살림의 생명 운동은 위기에 처한 한반도와 지구 문명에 대한 절박한 호소가 될 것이다."

ⓒ 정윤수
- 시인께서는 새로운 문명의 대안으로 동양적인 것, 특히 한국의 전통 사상에 주목해 오셨습니다. 그 바람에 '도인'이니 '국수주의'니 하는 오해도 낳았는데?
"우리 것이 곧 지고의 선이라고 한다면 그릇된 노릇일진대, 허나 우리 속에 내재된 세계적 보편성을 찾고 전지구인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적 원형을 찾는 것은 민족의 주체성을 세우는 일이자 동시에 민족의 틀을 넘어서는 보편성으로의 확장이다.

달리 말하여 지금은 역설의 시대, 곧 세계화와 지역화, 개인주의와 세계시민적 보편주의가 서로 교차하고 일치하는 대전환기이다. 그동안 서구는 배제의 논리를 앞세운 자본주의와 '정반합'의 기계적인 일치를 추구해왔지만 파탄나지 않았는가.

지금은 반대와 반대의 궁극적 일치를 찾아내야 한다. 백지 상태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전통 속에서 세계시민적 문화 원형과 그 보편성을 찾아내야 한다. 올해 생명 포럼은 바로 그와 같은 보편성으로의 확장을 꾀한다."

- 반대와 반대의 일치라고 하면 시집 <검은 산 하얀 방>을 이후로 거듭 말씀해오신 '흰 그늘'이 떠오르는데, 이 형용모순은 시적 직관인가요 아니면 담론인가요.
"이런 얘기라면 어떨까. 판소리… 그 애이불비의 깊은 소리에는 '그늘'이 배어있어. 우리네 전통 문화에서 그늘은 서구 정신분석학의 '그림자'와는 다른 것이야. 그림자가 욕구 불만이며 콤플렉스라고 한다면 그늘은 한을 오래 삭힌 것, 분노하기 보다는 속으로 다스린 것, 김치처럼 오랫동안 발효시킨 문화적 원형이지.

수난과 저항의 깊은 그늘이 오히려 새로운 세상의 에너지라는 점에서 19세기의 김일부 선생은 '그늘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소. 그런데 '흰 그늘'이라, 동아시아의 위기와 생명의 피폐함 속에서 문명의 대전환, 새로운 패러다임의 역설로서 어떤 극적인 순간의 깨달음과 혁명을 뜻하는 것!"

- 시인의 말씀은 때때로 반과학적이며 디지털과 인터넷으로 요약되는 젊은 문화와도 거리가 있다는 비판을 듣곤 하는데.
"전혀! 세계 문명은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있소. 모바일, 유비쿼터스, 잡노마드. 아마도 앞으로 인류는 주유소, 공항, 호텔을 점점 더 친숙하게 여길 것이오. 도시유목적 삶이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고 취업, 여행, 이주 등에 따라 전지구적 규모의 이동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차원에서 과학은 예전의 도구적 과학이 아니라 시적 직관과 새 문명에 대한 예지로 넘쳐흘러야지.

아울러 젊은 세대라, 그들은 지금 거대한 문명 전환에 있어 '의도하지 않는 집단적 예언'을 실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내가 4.19 때 대학생으로 거리 시위에 참여하고 그랬는데, 바로 그것이 '혁명'인 줄은 그 현장에서 느끼지는 못했던 것처럼. 월드컵에서 촛불 시위, 대선, 탄핵 저지 등으로 오면서 젊은 세대는 스스로 발화자이며 수신자로서 거대한 유목적 문명의 새로운 창조 세대가 되었으며 다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젊은 친구들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그야말로 바람 앞에 촛불인 채로 광화문에 모여 탄핵을 저지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 뭔가 거대하게 변하고 있구나. 그늘이로되 '흰 그늘'로서 문명의 전환을 예감케 하는구나."

- 현재 중국은 동아시아의 고대 문명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독식하려는 문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배척해온 치우천왕에 대해서 삼조당까지 만들며 공을 들인다고 하는데.
"치우천왕 이야기는 거대한 신화요 상징 세계다. 단순한 옛날옛적 이야기가 아니다. 치우천왕은 일찌감치 부족연맹체를 세운 4천여 년전의 고조선 문명과 중국 남방계의 농업 문명과의 치열한 문명 전쟁이다. 삼조당 이야기를 했지만, 최근 들어 중국이 고대의 신화마저 자신들의 역사에 귀속시키려는 것은 이른바 '중화'가 있어 주변부를 복속시켜 단일한 문명을 세우고 이로써 주나라 시작되어 문왕, 무왕으로 이어졌다는 계산일 뿐이다. 재야사학자들과 오래 전부터 우리의 고대 문명을 살피면서 이를 걱정해왔는데, 신화를 빼앗기면 역사를 빼앗기고, 역사를 빼앗기면 당장의 동북아 현실도 위기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 오는 12일의 포럼은 넓은 의미의 진보적 문예 진영에도 각별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비유컨대 현재 우리 문화는 인사동과 홍대 앞 사이에서 서성대는 듯합니다. 인사동의 노스탈지아와 홍대 앞의 이질적인 생동감 사이에서 시인께서 주창해오신 생명문화 운동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문화의 힘은 상상력. 중요한 것은 그 상상력에 오래 숙성된 시적 직관과 새 문명에 대한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어야지. 새로운 문명은 수학공식처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모스', 즉 혼돈적 질서로서 잉태되는 법, 이를테면 농경적이며 환경적인 것이 유목적이며 디지털적인 것과 만나고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궁극적으로 교차하며 낡은 것과 새 것의 교체 또한 혼돈적 질서를 겪어 완성될 것이다.

스스로 발화자이며 수신자가 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신뢰는 단지 그들이 젊어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한반도적 카오스모스의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파괴와 살육과 욕망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 생명을 구하는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은 한반도의 오래 숙성된 그늘과 젊은 세대의 유목적이며 적극적인 에너지, 곧 '흰 그늘'로 일치되어 틀림없이 새로운 기운으로 넘쳐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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