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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선거 당선자 명부를 유심히 살펴보면 특색있는 결과가 하나 눈에 띈다. 비례대표를 제외한 여성당선자 6명 중 남구 제1선거구 한나라당 윤명희(광역의원) 당선자를 제외한 5명이 모두 민주노동당 소속이라는 것이다.

이들 중에 지역 전체 당선자 가운데 최연소인 동구 가선거구의 박문옥(30) 당선자가 있다. 동구는 민노당 출신 구청장이 이전 선거에서 2회(보궐선거를 포함하면 3회) 연속 당선된 곳으로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이 전략지역으로 선포하고 심혈을 기울인 지역.

그러나 정몽준 의원 계보를 잇는 무소속 정천석 후보(41.7%)가 민노당 김종훈 후보(24.8%)를 큰 표차(1만2615표)로 이기고 당선됨으로 그 아성이 무너져 버린, 민노당으로선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구지역에서 '최연소'와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당선된 박문옥 씨를 만나봤다.

지방자치, 동네 아줌마 오지랖이 필요하다

▲ 울산광역시 동구 가선거구 구의원으로 당선된 민주노동당 박문옥 후보
ⓒ 최완
지난 일요일 오후 동구 방어동 모 커피숍에서 만난 박 당선자는 웃는 얼굴이었지만 선거운동기간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듯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내 젊은 아줌마다운 입심과 수다로 여러 이야깃거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울산지역 민주노동당 여성후보 약진에 대한 평가는?
"민주노동당의 여성후보 당선율이 가장 높은 것은 30% 후반대에 육박했던 '여성할당제'에 있다. 물론 처음 이 제도 도입 시에는 당내에서도 다소 논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여성의 섬세함과 서민과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여성할당제' 실현은 당연한 결과였다.

'여성할당제'도입은 물론 30%이상의 여성후보자를 낸 선거구에 대해 '여성정치발전기금' 지원, 여성전용선거구 지정 등 당에서 파격적인 정책들을 마련한 것도 상당수 효과를 본 것으로 안다."

- 제도적 장치가 주요 이유였다는 것인가?
"제도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남성정치에 넌덜머리가 난 주민들이 여성의 섬세함에 손을 들어 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선거기간에만 지역에 얼굴을 내민다는 비난여론이 높은 시점에서 남성정치의 구태에 대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박 당선자의 '일갈'에 남성으로서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 당선자가 생각하는 여성 구의원의 장점은 무엇인가?
"'야무지고 꼼꼼하게 일하는 똑소리 나는 후보'가 이번 선거 때 슬로건이었다. 여성후보의 꼼꼼함이란 남성들이 공약으로 제시하는 무슨 거창한 사업들이 아니라, 초등학교 스쿨존(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 인근에 설치하는 교통안전지대 등의 공간) 확보와 같이 개발보다는 복지를 중시하는, 작지만 주민들의 생활과 직접관계를 맺는 실현가능한 정책설정에서 발휘된다."

민노당 북구·동구 의정활동 냉정히 평가해야

민노당의 아성이 무너진 동·북구청장 선거에 대한 평가도 중요한 대목이다. 아직 당내 지역선거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라 다소 조심스러웠지만 박 당선자의 개인적인 평가를 중심으로 인터뷰는 진행됐다.

- 박 후보가 당선된 지역인 동구 그리고 북구는 전통적으로 민노당이 강세였으나 이번 선거에서 그 아성이 무너졌다. 이 지역의 선거평가를 해 달라.
"구청장 선거만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구의원은 동구가 10명 중 5명(한나라당 2, 무소속 3), 북구가 9명 중 4명(한나라당 5명)이 민주노동당이다. 결코 당이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8년간의 구정활동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통한 변화와 노력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몽준 의원이 지지하는 동구 무소속 후보들이 대거 당선된 것에 대한 평가는?
"물론 정몽준 의원이 자신의 선거처럼 지원(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을 의미)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8년간의 구정활동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의원들의 활동이 다소 미흡한 지점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일궈낸 다양한 성과들 역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크다.

또한 북구지역 같은 경우는 패키지 선거운동이 이틀정도 밖에 안 열리는 등 부족한 점이 많았다. 다른 당은 시장후보까지 가세해 패키지 선거운동전략을 펼친 것에 비해 우리 후보들은 각자 자기선거에만 전념하는 등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

- 시장경선 과정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자. 시당 관계자의 이메일 발송사건 등 몇 가지 문제점들이 불거진 것이 사실이다. 민감한 부분이긴 하나 그동안 내부적으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정파문제'가 이번에도 보여진 것 아닌가.
"당원들의 힘으로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다소 아쉬운 점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정파간 문제는 답변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당내 선거평가를 통해 관련 내용들이 충분히 논의될 것이라 생각한다."

당내 정파문제가 분열양상으로 외부에 비춰지는 것을 경계해서인지 박 당선자는 이 부분에 대한 직답은 피했다. 아직 연령이 낮은 '새내기 정치인'에겐 다소 부담이 될 법도 하다. 그러나 박 당선자는 "당내 평가 때는 분명히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고 논의할 것"이라며 분명한 입장을 표시하기도 했다.

"똑소리나는 구정활동 펼칠 것"

▲ 인터뷰 내내 손을 계속 가려 확인해 보니 선거운동 기간 맞았다는 링거 주사자국이 나 있었다.
ⓒ 최완
인터뷰 내내 당선자를 찾는 전화가 계속해서 울리고 시간도 충분히 지난 터라 더 이상 박 당선자를 붙잡을 수 없었다.

- 마지막 질문이다. 어떤 구의원이 되고 싶은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 행사에 등장하는 코르사주(행사 참가자들이 가슴에 다는 꽃, corsage)를 없애거나 종이꽃으로 대처할 것이다. 수많은 행사에,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사용되는 꽃의 예산이 솔직히 아깝다.

이런 적은 예산을 아껴 지역 조손가정(부모없이 조부모와 손자·손녀가 함께사는 가정) 아이들의 학교 준비물을 지원하는 것과 같이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싶다."

다소 생뚱맞은 답변인 것 같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코사르주 1개에 보통 2000원 이상으로 보면 매 행사 때 100개, 한 달에 2회라고 가정한다면 1년 예산 480만원이 소요된다. 이는 한 끼 2500원 하는 초등학생 식대로 계산하면 1920명에게 점심을 제공할 수 있는 수치다.

"또 나이가 어리다는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서 예의바르고 배워가는 자세로 의원활동에 임하고 싶다. 사실 구청에 들어가면 나보다 나이 많은 공무원들이 여럿 계시는데 의원이라는 이유로 경어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두 시간 가까이 이뤄진 인터뷰를 통해 바라 본 박 당선자는 진보정당 전략지구에서 최연소로 당선된 여성후보로서의 모습보다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수다 떠는 아줌마에 가까웠다. 그러나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데는 거리낌 없는 직설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당을 떠나 박 당선자가 지역 최연소·여성 당선자로서 4년의 임기동안 지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성공한 지역 정치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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