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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룡 의원이 어제(4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내 수구보수들을 맹비난하는 과정에서 한마디를 얹었다. "대선주자들도 각자 생각하는 정체성을 밝히라"고 했다.
ⓒ 원희룡 의원 홈페이지

물구나무서서 권투하는 꼴이다. 한나라당의 색깔 논쟁이 그렇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여론조사를 했다. 결론은 간명했다. '탈이념 실용주의 정책노선'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권자들의 주관적 이념성향을 조사했더니 '중도'라고 응답한 비율이 36.9%로 가장 많이 나왔다. 차기정부의 이념성향에 대해서도 '진보'가 39.8%로 '보수' 17.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BRI@<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국가 정책과 정당 운영 등에서 한나라당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73.1%가 '진보'를 꼽았다. '보수'는 12%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이 물구나무 서있다고 평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국민 여론은 확고한데 당내 인사들은 엉뚱한 얘기를 한다. "친북좌파 2중대"를 운위하고 "북한에 맞장구나 치는 인물"을 거론한다.

욕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탈당을 요구하고 불출마를 강요하니 권투까지 감행하는 꼴이다.

잘될 리가 없다. 머리를 다치기 십상이다.

국민은 진보적 차기정부를 원하는데...

여의도연구소 조사 결과 '상황에 따라 지지정당을 바꿀 수 있다'는 응답이 40% 나왔다. 절대지지층 35%, 유입층 60.1%가 그렇게 답했다.

자칫하다간 다 된 밥상에 재를 뿌릴 수 있다. 한나라당이 좀 더 진보적으로 변모하기를 바라는 지지층이 구태의연한 색깔 공세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 정체성 논쟁이 지지정당을 바꾸게 만드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원희룡 의원이 어제(4일) 기자회견을 했다. 당내 수구보수들을 맹비난하는 과정에서 한마디를 얹었다. "대선주자들도 각자 생각하는 정체성을 밝히라"고 했다. 파장이 작지 않은 발언이다.

언론은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한다. 수구보수의 색깔 공세 배후에 박근혜 전 대표가 있다고 원희룡 의원이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원희룡 의원의 기자회견 이전부터 나왔다. 이명박 전 시장에 밀리는 박근혜 전 대표가 색깔 문제를 집중 제기함으로써 위기국면을 돌파하려 한다는 분석이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판결, 그리고 긴급조치 위반사건 공개로 곤혹스럽게 된 처지에서 탈출하는 한편 당내 지지층을 확대하기 위해 색깔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원희룡 의원이나 고진화 의원은 그 희생물이라는 것이었다.

언론의 이런 분석이 맞는다면 당내 갈등구조는 더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잡은 길은 '가지 않은 길'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길을 재삼 두들겨보고 건너겠다는 전략이다. 당내 고정 지지층을 기반으로 경선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전략이 이렇다면 이명박 전 시장과 갑론을박을 거듭하는 경선방식에서 경직된 태도를 강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심과 민심을 절반씩 반영한다는 애초의 경선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물론, 비율은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선거인단 수는 늘리자는 이명박 전 시장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경선 선거인단을 '성골 당원'과 '육두품 국민'으로 제한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자신의 전략이 주효할 수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이중고'

▲ 이명박 전 시장이 정체성 고백 요구에 응하면 지금까지 짭짤한 재미를 안겨준 '탈이념 실용' 이미지가 퇴색된다. 외면을 하면 '기회주의' '줄타기' 혐의를 받을 수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전 시장은 이중고를 떠안아야 할지 모른다. 한나라당에 새로 유입된 지지층의 상당수가 이명박 전 시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이런 그들이 지지정당을 바꿀 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곤혹스런 현상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당내 수구보수세력, 그리고 이런 수구보수세력을 비판하는 중도개혁 인물들로부터 양면 공격을 당할 수 있다. "정체성을 밝히라"는 요구가 원희룡 의원 뿐 아니라 다른 의원과 당원 입을 탈 수 있다.

정체성 고백 요구에 응하면 지금까지 짭짤한 재미를 안겨준 '탈이념 실용' 이미지가 퇴색된다. 외면을 하면 '기회주의' '줄타기'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어떻게 대응하든 남는 장사가 되기 어렵다. 최상책은 색깔 논쟁을 진정시켜 '탈이념 실용'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붙은 불이 쉬 꺼질지 미지수다. 원희룡 의원이나 고진화 의원은 '맞으면서 크는' 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들이 쉽게 발을 뺄 리가 없다.

설령 진화에 성공하더라도 만사형통이 되는 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선방식 고수 입장을 돌파해야 한다.

한편에선 색깔로 지지고, 또 한편에선 경선방식으로 볶는다. 전혀 별개의 차원이 아니다. 두 갈등구조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상승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게 한나라당의 사정이다. '물구나무 권투'가 레슬링으로 변하고 있다. 그것도 태그매치로….

태그:#색깔논쟁, #한나라당, #이명박, #김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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