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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은 27일 오후 2시부터 한미 FTA 협상중단을 촉구하며 국회 본관 3층 로텐더홀 앞에서 시한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장소가 다르다. 청와대 앞, 국회 본회의장 앞, 그리고 국회 본청 앞 왼쪽과 오른쪽이다.

내용은 같다. 한미FTA 졸속협상 반대다. 그냥 반대가 아니다. 곡기를 끊고 하는 결사반대다. 입에 올리는 말도 격하다. '재앙(김근태)' '조공협상(천정배)' '경제식민지(임종인)'다.

똑같이 한미FTA 졸속협상 결사반대를 외치는데 단식 장소는 다르다. 똑같은 대의에 똑같은 의지를 가다듬었다면 함께 하는 것이 순리일텐데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일각에선 '쇼'라고 한다. 한나라당은 "표만 생각하는 대선용 정치쇼"라고 한다. 열린우리당과 상당수 언론도 동조한다. 언로가 막힌 것도, 사회적 약자도 아닌데 굳이 단식농성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김근태·천정배, 한미FTA 뒤늦게 반대하는 이유

말을 바꿨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해 9월 열린우리당 FTA 토론회에 참석해 협상 찬성 의견을 피력하면서 "찬성하면 친미, 반대하면 반미라는 식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정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천정배 의원은 법무장관으로 일하던 지난해 7월 "한미FTA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다시한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정부 합동 담화문에 서명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들이 문제삼는 건 순수성과 진정성이다. 정부는 지난해에 한미FTA 협상을 시작하면서 미국의 무역촉진권한에 맞춰 올해 3월말까지 시한을 정해놓고 협상을 하겠노라고 했다. 시동을 걸 때부터 졸속협상 우려가 제기됐었다. 그런데도 왜 처음에는 반대하지 않고 이제 와서 반대하느냐는 지적이다.

이렇게 보면 지적대상은 두 명으로 제한된다. 김근태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이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와 임종인 의원은 제외된다. 이들은 말을 바꾼 적이 없다.

김근태·천정배 두 사람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는 '혹시나' 했지만 지금은 '역시나'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때는 집권여당 의장과 국무위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노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치자. 정치의 속성은 변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기민하게 변하는 게 정치의 속성이다.

뜻은 같은데 단식은 따로

▲ `민생정치모임`의 천정배 의원은 26일 오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밖 출입문 왼편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27일 오전 천정배 의원이 출입문앞 천막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과거는 지우고 현재만 보자. 단식 장소만 다른 게 아니다. 정치적 거처도 다르다. 김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에 남아있고, 천 의원은 민생정치모임을 꾸렸다.

더 있다.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모임은 똑같이 한미FTA 지지를 외치지만 '딴살림'을 차렸다. 그 뿐인가. 한미FTA 졸속협상 결사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한미FTA 찬성론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게 손을 내민다.

중구난방에 가까운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현재만 볼 게 아니라 미래를 보면 된다. 분화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여권이 한미FTA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세력을 재편하는 과정에 들어섰다고 보면 된다.

먼 얘기가 아니다. 당장 이번 주로 한미FTA 협상 시한이 끝난다. 한 달 뒤에는 4·25재보선이 치러진다. 전자가 탈당의 명분을 쌓아준다면 후자는 탈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각시킬 것이다.

그럼 이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똑같이 한미FTA 졸속협상 결사반대를 외치는 김근태·천정배 두 사람이 따로 단식 농성을 한다. 그 이유가 뭘까?

주도권 잡기다. 한 데 모이려면 질서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중심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대선을 앞둔 상황이다. 세력의 중심이 '후보'가 될 공산이 크다.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누가 중심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하지도 않다. 더욱 관심을 끄는 건 그 다음이다.

유의해서 봐야 할 게 있다. 김근태·천정배 두 사람이 공히 외치는 것은 한미FTA 협상 그 자체가 아니다. 졸속협상을 문제 삼는다. 그러므로 일단 중단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한시적이다. 혹여 한미FTA 협상이 타결이라도 되면 '협상 중단' 요구는 사실상 실천력을 잃는다. 주장을 바꿔야 한다.

한미FTA 의제로 대선 전 선거연합?

난제가 돌출한다. 논리상으로는 '반대'로 이어가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협정문에 사인하는 6월까지는 '재검토' 주장을 내놓는다 쳐도 그 다음에 명확히 입장을 정해야 한다. 비준 반대 또는 찬성 입장을 정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대선이 본격화되는 시점과 겹친다.

비준을 거부하면서 대선 쟁점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럴수록 노선의 선명성은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게 있다.

한미FTA를 계기로 여권이 찬성과 반대 세력으로 분화한다 하더라도 대선 막판에 가서 선거연합을 하게 될 공산은 매우 크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멸이라는 걸 이들도 잘 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세력을 연합하고, 선거운동을 연합해도 공약을 연합할 수는 없다. 한미FTA를 매개로 분화한 두 세력이 선거연합을 이루려면 공통의 공약을 내놔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대선 구도는 비준 찬성과 반대로 단순화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태그:#한미FTA, #결사반대, #졸속협상,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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