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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된 지 1년을 맞았다. 필자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의 학술진흥재단(2005-005-J13702) 사업의 일환으로 새만금의 모델이 되었던 일본의 아리아케가이(有名海) 이사하야(諫早) 10년을 맞아 4월 12일부터 17일까지 '아리아케가이 바다와 갯벌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과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그 내용을 몇 차례에 걸쳐서 연재한다...기자 주

▲ 이사하야갯벌위령제 참가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 김준
방조제 위에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들판의 보리가 목탁소리에 맞춰 고개를 하늘거린다. 10년 전 이곳은 와라쓰보우(망둑어)가 뛰놀고 무스고로우(짱뚱어)가 갯벌을 뒤집어 쓰고 자맥질을 했을 것이다. 어민들은 뻘배를 타고 쓰보카끼(망둑어를 잡는 어구)를 휘저으며 놈들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눈치 빠른 칠게들은 작은 인기척에도 구멍 속으로 몸을 감추고, 미처 피하지 못한 놈들은 어김없이 도요새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곳은 육상식물이 자리하고 후미진 곳곳 간간히 염생식물이 혹시나 하며 고개를 내밀지만 이내 풀이 죽어 있다.

'보물의 바다' 유명해(有名海)의 자궁 간조(諫早)갯벌

아리아케가이는 일본 규슈의 서해안에 위치해 있다. 첫눈에 너무도 친근하다. 줄지어 세워진 김 양식 말목들과 돌을 쌓거나 대나무를 박아 울을 만든 바지락 양식장, 뻘배를 타고 망둑어와 짱뚱어를 잡는 모습 등. 서남해안 갯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갯벌에서 나오는 어민들이 금방이라도 '어디서 왔소, 뭐 하러 왔소'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나가사키현, 사가현, 후쿠오카현, 구마모토현으로 둘러싸인 아리아케가이를 어민들은 '보물의 바다'라고 부른다. 이곳은 평균 수심이 20미터를 넘지 않고, 각 현에서 내려오는 크고 작은 하천이 10여개가 넘어 넓은 하구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이중 나가사키의 이사하야시는 나가사키(長崎)·운젠(雲仙)·시마바라(島原)·오오무라(大村)의 중심에 위치해 교역의 중심에 자리한 도시다. 이곳 갯벌은 조석간만의 차가 6m를 넘고 갯벌면적만 3500ha로 단일갯벌로는 일본에서 가장 넓다(그래봤자 새만금의 1/10에 불과하다). 지금도 방조제 밖에서는 새우를 잡고, 바지락을 캐고, 김 양식을 하고, 키조개를 캐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민들은 이사하야만을 "아리아케해의 자궁", "천수해(泉水海)"라고 부른다. 모래와 펄의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이사하야만의 3000ha에 이르는 광활한 갯벌에는 다양한 어업자원이 풍부하고, 산란과 서식장소일 뿐만 아니라 각종 패류가 서식하기 때문이다.

아리아케가이의 갯벌은 일본의 현존 갯벌의 4%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갯벌연구가들이 이사하야만에 주목했던 것은 지역 고유종과 특산종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곳 갯벌에서 확인된 지역 특산종이 20여 종에 이르며, 조개, 바지락, 키조개 등 조개류와 새우, 숭어, 민어 등 어족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도요새와 저어새 등이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새들의 휴식장소로 매중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날아드는 '생태계의 보고'였다.

▲ 이사하야만을 막았던 200여개의 철판, 이를 단두대라고 부른다.
ⓒ 이사하야긴급구제본부 자료사진
단두대로 아리아케가이를 자르다

10년이 지난 그곳은 더 이상 갯벌이 아니다. 일본 최대의 간척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던 이사하야만 갯벌은 농지로 만들기 위한 개답공사가 진행중이다. 1983년 매립계획을 수립하고, 1986년 12월 전체 매립면적 3550ha, 계류지 1710ha, 농지조성 1840ha로 사업계획을 수리하였다.

그후 1989년 공사를 시작한 이후 1997년 4월 14일 200여개의 철판을 바다에 내리꽂아 물길을 막았다. 당초의 사업계획은 두 번의 변경과 사업재평가로 사업 중지와 재개를 반복하여 2002년 매립면적은 3542ha, 계류지 2600ha, 조성면적 942ha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2007년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사하야 방조제는 7km(7050m)에 이른다. 새만금이 자랑하는 33km와 비교되지 않는다. 물길을 막기 위해 293개의 철판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일본 전역에 방송되었다. 이를 두고 일본인들은 'ギロチイン'(단두대·斷頭臺)라고 부른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이런 이름을 사용했겠는가.

▲ 이사하야만 사업의 개요
ⓒ 김준
아리아케가이 재생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된 지 5년이 되었고, 다양한 재생사업과 방조제 안쪽 조정지수질개선을 위해 1000억 엔 이상의 세금이 투자되었지만 개선의 효과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농수성은 이사하야 간척사업은 "영농과 방제"가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사하야만의 간척의 역사는 600년경부터라고 한다. 지선어장의 작은 간척을 시작으로 전후 대규모 간척사업이 추진되었다. 1952년 대규모 간척계획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쌀생산의 과잉으로 1970년에는 계획이 중지되었다.

그후 중앙정부와 나가사키 지방정부는 수자원개발을 목적으로 계획을 부활시켰다. 당시 어민들의 강력한 투쟁과 식수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1982년으로 계획은 중단되었다. 그리고 다음해 간척규모를 축소하고 목적도 '방제'로 바꾸어 "이사하야 방제종합간척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재개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수문과 방조제를 열어라

새만금 어민들이 외치는 구호가 아니다. 2007 4월 14일 막힌 이사하야만, 10년이 지난 지금 이사하야만에서 어민들과 이사하야긴급구제본부, 일본습지네트워크(JAWAN, Japan Wetlands Action Network)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외치는 내용이다.

▲ 이사하야 10년을 맞아 아리아케가이를 살리자는 캠페인. 이사하야긴급구제본부와 지역어민들을 중심으로 행사기간 동안 아리아케가이 인근의 도시를 돌며 캠페인을 가졌다.
ⓒ 김준

▲ 행사 기간 동안 수문과 방조제를 열어 해수를 유통시켜라는 것이 가장 큰 이슈였다.
ⓒ 김준
이사하야만 갯벌에 살던 모든 생명들을 추모하는 '이사하야갯벌위령제'가 4월 14일 이사하야시 혼묘가와(本明川) 하구 하천부지에서 거행되었다. 매년 이루어지는 행사지만 이번은 물막이 10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었다.

저류지 옆에 마련된 행사장에는 '이곳은 저서생물들의 영령들이 잠든 곳으로 매년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영원세대(미래세대)를 위해서 이사하야갯벌 복원 요구한다는 큼지막한 글씨가 연단에 적혀 있다.

그 옆에는 2000년 사망한 이사하야만 간척사업 반대와 평생 일본습지보전운동을 해온 일본의 위대한 시민운동가 야마시다(山下弘文)의 영정이 마련되어 있다. 내부 방조제 사이로 저류지의 물길이 이어지고 멀리 방조제와 배수갑문이 아른거린다.

400~500여 명의 어민, NGO, 취재진들이 천변에 모여 두 손을 모우고 물길이 막히면서 죽어간 생명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묵념이 이어진다. 스님의 주도로 위령제를 마치고 NGO와 어민들이 연단에 올라 과거 이사하야 갯벌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최근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이어졌다.

방조제 밖 해수욕장 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민은 갯벌이 사라지고 고기도 잡히지 않아 해수욕장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외부에서 가져다 놓은 모래밭 위에 알 수 없는 해초들이 많이 생겨 이것도 쉽지 않다면 해수유통밖에 없다고 외친다. 당시 방조제 밖의 어민들 중에는 간척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들 후회하고 있다.

▲ 이사하야개설 위령제.
ⓒ 김준
이보다 앞서 방조제 밖 어민들은 4월 9일부터 13일까지 이사하야갯벌긴급구제본부와 함께 구마모토,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이사하야 등을 들며 시정에 '이사하야 재생을 위한 중장기조사 요청서'를 전달하고, 가두캠페인, 황색깃발과 메시지 모집(이사하야를 재생을 위한 소원을 노란 깃발에 적어 심포지엄과 위령제 장소에 내걸었다), 어민들과 교류회 등을 가졌다.

이 행사의 모토는 '이대로는 이사하야도 아리아케가이도 풍요로운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방조제가 막힌 지 10년을 갯벌과 바다와 지역사회를 살리는 전환점으로 삼기 위해 마련한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간척사업을 중지하고 수문과 방조제를 열어 갯벌과 바다를 되살리자'였다.

각 시장에게 전달된 요청서에는 아리아케가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조류와 조석의 약화, 적조와 빈산소층의 발생 등 '아리아케가이의 이변'의 원인으로 이사하야 물막이 공사를 지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어획량이 감소하고 김 양식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특히 '김 양식 제3자 위원회'는 중장기조사를 요청하고 있다.

최근 아리아케가이에 인공갯벌의 조성, 해저경운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미봉책일 뿐 '보물의 바다'를 재생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요청서에서 어민들은 '미래의 희망을 갖고 어업을 계속하고, 어린세대에게 아리아케가이의 어업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농수성이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을 빨리 완공하려 하지만 방조제 안쪽 수질을 기준치 보다 악화되고 있어 이대로 간척지에 농사가 시작되면 아리아케가이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며 거듭 중장기 조사를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 지역신문 1면에 이사하야만 10년 행사 관련 보도기사.
ⓒ 김준

덧붙이는 글 | 다시 욕심을 냈습니다. 바다에서 바다를 보다에 '섬이야기'와 '갯살림(갯벌이야기)'를 연재해왔습니다. 지난번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약속한 것처럼 사라진 갯벌과 바다의 이야기를 '고장난 바다시계'라는 연재이름으로 기록하려고 합니다. 그 출발을 일본의 이사하야만 간척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더디 가더라도 이해해 주시고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태그:#바다, #환경, #새만금,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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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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