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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된지 1년을 맞았다. 필자는 새만금의 모델이 되었던 일본의 아리아케가이 이사하야 물막이 공사 완료 10년을 맞아 4월 12일부터 17일까지 '아이아케가이 바다와 갯벌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과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그 내용을 몇 차례에 걸쳐서 연재한다... 기자 주

▲ 다께보를 이용해 짱뚱어를 잡는 모습(1975년).
ⓒ 가시마시
아리아케가이 어민들은 이사하야 갯벌을 '아리아케가이의 자궁'이라고 부른다. 그 자궁이 병들고 있다. 생명을 잉태해야 할 이사하야는 물길이 막히고 어린새끼들을 품에 안아야 할 아리아케가이는 병들고 있다. 어민들은 물길을 열어라 목소리를 높인다.

작은 바지락을 뿌리면 1년 만에 어민들 손에 돈을 쥐어주던 갯벌이었다. 지금은 여름을 넘기는 것이 고비다. 바다가 오염되고 갯벌이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방조제가 물길을 막고나서 생긴 일이다. 그래서 어민들은 이같은 재앙이 방조제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바다의 자궁, 이제 생명을 잃고

이사하야는 아리아케가이의 서쪽에 위치해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이곳의 물길을 막은 주된 목적에 대해 "해일·홍수·배수불량으로 인한 재해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규모 재해예방은 간척사업이 아닌 해안제방과 하천제방으로도 충분하며 환경문제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재해관측 결과 이사하야만의 해수의 범람은 수백 수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정부는 1940년대 이사하야 상류에 큰 홍수가 발생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예방차원에서 계획했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거짓으로 들어났다. 오히려 방조제를 쌓아 방조제 밖 바다의 만조시 집중호우로 하천이 물이 불어날 경우 물이 역류하여 농지침수는 물론 시가지 침수가 예상된다.

이사하야 간척은 새만금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일본이 자랑하는 최대의 간척사업이다.

이 곳의 재해문제가 거짓으로 드러나자 일본 정부는 이제 간척 내부에 우량농지를 조성해서 생산성이 높은 농업을 실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에는 다시 환경농업을 하겠다고 한다. 미작 증산이 최대의 목표였던 전후 시대에 간척사업 추진은 수월했지만, 쌀이 남아도는 시대에는 설득력이 없는 정책이었다.

환경농업이라는 것도 부정여론의 무마책으로 내놓은 토지이용계획이라는 것이 어민들과 갯벌보전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웃나라를 비웃을 일도 아니다. 우리 새만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간척의 목적은 물론 이용계획에 대한 어떤 결정도 없이 막아놓고 내놓은 방안이 '농지조성'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내로라는 국책연구기관이 몇 년에 걸쳐 연구한 토지이용방안이다.

▲ 키조개를 캐는 아리아케가이의 어민.
ⓒ 이사하야구조본부
▲ 아리아케 가이 어민이 이사하야 방조제 옆에서 새우를 잡고 있다.
ⓒ 김준
"선생님, 아이가 울고 있어요"

이사하야 방조제 7㎞ 중 물살이 심해 마지막 1㎞를 막지 못해 고심하던 사업추진측이 기가 막힌 방안을 내놓는다. 그 계획은 남은 1㎞ 위에 지지대를 세워, 높이 6.3m, 폭 3.7m의 거대한 강판 200여개를 올리고 차례로 바다에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5, 4, 3, 2, 1, 0.

카운트가 시작되고 강판이 차례로 내려 꽂혔다. 그리고 생명의 물길을 절단하는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일본 전역에 생중계를 했다.

평생을 갯벌과 함께하며 이사하야 간척을 막기 위해 일본정부와 싸우다 2006년 7월 갑자기 운명한 야마시타 히로부미는 그의 <이사하야만의 짱뚱어 소동기>라는 책에 'TV로 물길이 막히는 것을 보고 아이가 울자, 엄마가 전화를 걸어 '짱뚱어를 도울 방법이 없겠느냐'며 울먹이던 전화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당시 TV를 본 많은 아이들과 일본인들은 충격에 싸였다고 한다. 시민들의 이런 반응을 보고 야마시다는 '이사하야는 막혔지만 우리는 지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고 생각했다.

어류의 산란과 어린새끼들이 자라기 위해서는 수심이 깊지 않는 바다와 갯벌에서 자라는 해초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곳에서 자란고기들은 이사하야만은 물론 아리아케가이로 나가 어민들의 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들 산란과 서식지역이 사라지면서 어류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바지락도 줄어들고 있다. 사가·후쿠오카·구마모토 등 아리아케가이를 둘러싼 대부분의 갯벌지역이 간척과 매립으로 사라져 이사하야만이 마지막 보류였다. 그래서 아리아케가이의 자궁이라는 말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

▲ 물길이 막히기 전 김 양식을 하는 이시하야만 어민.
ⓒ 나카오 칸고
▲ 김 양식을 마무리하고 갯가에서 회식을 하는 사가현 어민들.
ⓒ 김준
새와 어민들의 삶터, 갯벌

이사하야에서 서남쪽으로 1시간 거리 운젠시 시마바라. 아리아케가이의 하구에 속한 이곳은 고기잡이 배들이 많은 곳이다. 사가현이나 나가사키의 펄갯벌과 달리 모래갯벌이 발달해 있다. 운젠시는 이사하야 동쪽에 위치한 도시로 지금도 화산이 활동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나가사키와 사가처럼 갯벌이 발달하지 않아 일찍부터 그물을 이용한 고기잡이가 발달했다. 최근 이곳 주민들은 급격하게 감소하는 어획량에 걱정이 크다. 운젠시의 경관은 화산지형에 밭농사가 발달해 있어 마치 제주도를 보는 듯하다.

농사보다는 고기잡이 의존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높은 운젠시는 주로 문어·주꾸미·장어·키조개·서대·숭어·꽃게 등을 잡아 생활하고 있다. 포구에는 문어단지·장어통발·주꾸미주낙이 산처럼 쌓여 있다.

'소라방'이라 하여 소라껍질을 이용해 주꾸미 주낙을 놓는 것과 달리 이 곳에서는 피조개껍질을 이용해 주꾸미를 잡는다. 꽃게를 잡는 통발도 손질을 위해 햇볕에 말리고 있다. 이사하야만이 막히기 전 아리아케가이 어민들은 철따라 다양한 고기를 잡으며 살아왔다.

간척 전 이사하야의 3000ha의 갯벌은 키조개·굴·고막 등 패류와 짱뚱어와 망둥어 등 어류 그리고 게와 갯지렁이 등 다양한 저서생물들이 서식했다. 뿐만 아니라 도요새와 물떼새 등 철새들의 쉼터였다.

갯골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리아케의 동서쪽 사가현. 이 곳은 에도시대부터 간척이 진행된 일본의 대표적인 간척농업지대다. 제방을 사리에 두고 배들이 갯벌에 박힌 굵은 대나무에 묶여있다. 갯골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 곳 어민들은 갯골을 따라 배를 타고 멀리 나가 그물질을 하기도 하고 드러난 갯벌에서 바지락도 잡는다. 가까운 갯벌에서 짱뚱어와 망둑어도 잡는다. 일부 어민들은 김 양식도 하고 있다.

2007년 4월 하순 사가현 방조제 밖. 10여 명의 주민들이 짱뚱어와 망둑어(겡소갱)을 잡고 있다. 아리아케가이에서 짱뚱어와 망둑어를 잡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짱뚱어를 잡는 대나무 통을 '다께보'라고 한다. 뻘배를 타고 갯골을 따라 이동하며 짱뚱어 구멍에 대나무를 꽂아두면 짱뚱어가 들어간다. 사가현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짱뚱어를 잡아 나온다.

예닐곱의 어부들이 바지락을 캐기 위해 배에 오른다. 간척으로 가까운 갯벌이 막히면서 이제 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 바지락 밭으로 나가야 한다. 김 양식을 마친 7~8명의 어민들이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며 삽겹살을 굽고, 바지락과 가리맛도 불판에 올리고 있다.

아라이케가이에 위치한 사가현 갯벌은 이사하야 갯벌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김 양식지였다. 이사하야 갯벌은 막혀 김 양식을 비롯해 양식어업은 어렵지만 인근 가지마시·사가현·후쿠오카·구마모토 등 갯벌에서 김양식이 이루지고 있다.

▲ 망둑어와 짱뚱어를 잡는 어민이 펄스키를 타고 나오고 있다.
ⓒ 김준
▲ 아리아케가이에서 잡은 망둑어(겡소갱).
ⓒ 김준
바다가 변하고 있다

간척사업이 진행되면 가장 먼저 파괴되는 것은 갯벌이며, 하천에서 유입된 엄청난 양의 오염원을 정화시키던 역할도 사라졌다. 혼메이가와로부터 유입된 막대한 유기물은 이사하야를 통과해 곧장 아리아케가이로 유입되고 있다. 게다가 방조제 사업으로 조석과 조류도 약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곧바로 어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물막이 공사 후 4년. 아리아케가이의 김 양식장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생산량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물론 탈색으로 김 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김 양식의 성패는 조류와 유속에 의해 결정된다. 자연의 시간에 따라 수천 년 수만년 들고 나면서 만들었던 물길이 막혔으니 탈이 나는 것도 당연하다.

2000년 가을부터 2001년 겨울 아리아케가이의 특산물인 김 양식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 피해가 어민들만 아니라 인근 제조업자·유통업자 등에게 미치면서 사회문제가 되었다.

사실 간척 피해는 간척사업을 시작되던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간척사업이 시작되기 전 해면어획량(어류·패류·해조류·수산동물)은 6만 톤이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2만 톤이 줄고, 막히고 나서 다시 2만 톤이 줄었다.

아리아케가이의 김 생산량은 1996년에 사가현은 17억매, 후쿠오카 14억매, 구마모토 9억매를 생산했지만, 2000년 피해 당시에는 사가현은 10만매, 후쿠오카 6만매, 구마모토 7만매 정도로 감소했다. 이후 김 양식지를 옮겨 겨우 생산량은 회복되었지만 품질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김양식이 피해를 입은 것은 적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80년대 거의 발생하지 않던 적조가 이사하야 간척사업이 시작되던 1986년 이후 나타나기 시작해 물길이 막힌 1997년에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특히 김 양식이 크게 실패했던 2000년 적조발생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바다 생물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해수 1리터에 3㎎의 산소가 필요하다. 바닷물에 포함된 산소량(용존산소량)이 3㎎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산소부족(빈산소현상)'라고 한다.

아리아케가이는 조석과 조류의 차이가 크고, 해수가 위아래 잘 섞이기 때문에 산소부족 현상이 발생하지 않으며, 오히려 해산물의 생산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물길이 막히면서 쌓이면서 유속과 조차가 약화되면서 산소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사하야만의 제방 입구 유속은 이전 보다 10~20%감소했고, 고기잡이 어업이 활발한 시마바라의 경우 20~30%가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하천으로부터 유입되는 담수의 양과 방향이 바뀌고, 해수와 담수의 성층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성층화 현상은 저층에 산소공급을 차단해 빈산소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인근 현으로 확산되는 변화

▲ 문어잡이와 주꾸미잡이 어구.
ⓒ 김준
▲ 포구를 가득 채운 문어잡이와 장어잡이 어구.
ⓒ 김준
이사하야만의 간척사업으로 갯벌과 갯벌생물, 수질정화능력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리아케가이의 풍부한 어패류와 어민들의 생활 터전이 사라진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아리아케가이의 바다의 변화가 인근 현(구마모토·후쿠오카·사가·나가사키)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가 큰 지역의 어민들의 빚이 늘고 고향을 버리는 사람이 발생하고 있다. 김 흉작 이후 제조업체들은 폐업이 늘어 전업을 해야 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불행한 일도 발생하고 있다.

물길이 막힌 지 10년. 아리아케가이의 어민들은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어선어업, 잠수기어업, 맨손어업(패류채취), 김 양식 어민들이 힘을 모았다. 이들은 이사하야만과 아리아케가이를 풍요로운 보물의 바다로 되돌리는 일은 환경변화의 원인을 밝혀내고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우선 과거와 방제조공사 이후의 자료를 비교해 아리아케가이의 조류·조석·수질·저질·적조·산소부족 현상을 조사해야 하며, 수문을 열어 변화의 추이를 분석해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 수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 어민들과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태그:#어민, #갯지렁이, #짱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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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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