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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바우처' 사업 중 노인 돌보미 일을 하고 있는 전인숙(50)씨.
 정부의 '바우처' 사업 중 노인 돌보미 일을 하고 있는 전인숙(50)씨.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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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좋아 '사회 서비스'이지, 실상은 정부가 기존의 '파출부'를 더 싼 값에 제공하는 거에 불과해요. 최저임금도 못 받습니다."


전인숙(50)씨는 지난 5월 정부의 '바우처(voucher)' 사업에 뛰어들며 가졌던 자부심이 온데간데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서비스 정책이라 남다른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실제 하는 일은 빨래·청소 등 주로 가사인데다가 한 달간 일해(주당 24시간, 이동 및 식사 시간 제외) 손에 쥐는 돈은 고작 60여만원이었기 때문이다.

'봉사정신' 하나로 버티고 있다는 전씨는 "유권자로서 이번 대선에 희망을 걸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사회서비스 일자리에 관심을 갖고 실속 있는 정책을 내놓는 후보가 없다"고 덧붙였다.

"모든 후보가 현 정권을 비판하면서, 정부가 벌이고 있는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왜 조목조목 따지지 않나? 대통령 후보라면 당연히 개선·보완책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닌가?"

"파출부로 전락한 사회서비스... 대선 후보는 무관심으로 일관"

21일 서울 개봉역 인근에서 전씨를 만났다. 기자는 지난 14일 대선시민연대가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가진 '사회서비스 일자리 분야 집단인터뷰(FGI, focus group interview)'에서도 그를 만난 바 있다.

바우처(voucher) 사업이란
바우처 사업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한 사회 서비스 제공 사업으로, 크게 노인 돌보미·중증장애인 활동보조·산모 신생아 도우미·지역사회서비스 혁신 사업 등으로 나뉜다.

이 사업은 서비스 이용자에게 일정 금액의 이용권을 주고, 이를 사용했을 경우 정부·지자체가 서비스 공급자에게 임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령 노인, 장애인 등 서비스 이용자쪽이 바우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월 3만6000원(본인부담금)을 정해진 은행 계좌에 입금시킨다. 이 계좌를 통해 정부는 월 20만2000원을 지원해준다. 이렇게 모인 23만8000원이 서비스 공급자의 임금으로 지급되는 것.

정부가 서비스 제공기관(민간)에 지급하는 비용은 2시간에 2만1000원, 추가 한 시간에 5500원이다. 이 중 서비스 제공자의 시간당 임금은 5600~6000원(기관마다 차이가 있음)이다. 이를 뺀 나머지 비용은 서비스 제공기관의 운영비(4대 보험) 등으로 사용된다.
전씨와 재차 대화를 나눈 이유는 사회 일자리, 특히 보건복지부가 벌이는 '바우처' 사업의 한계를 짚어보고 대선 후보들이 알기 어려운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사실 지난 집단인터뷰에서는 각 후보 진영이 내놓은 관련 정책이 추상적이거나 아예 없는 탓에 이를 비교·평가하는 게 난감했다.

자연스레 참석자들은 '공약 검증'은 하지 못한 채 "대선 후보들이 '일자리 몇 백만개 만들기'를 외치면서도 정작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서비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각 후보 캠프쪽이 대선판의 정치 공학에 따라 움직이는 탓에 정책 개발에 소홀한 것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사회 서비스는 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돌보는 일을 말한다. 특히 바우처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부터 시행하는 사회서비스 제공 사업으로, 노인 돌보미·중증장애인 활동보조·산모 신생아 도우미·지역사회서비스 혁신 사업 등이 있다.

전씨는 현재 '구로삶터 자활후견기관'에 소속돼 노인 돌보미 일을 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할머니 네 분을 일주일에 각 3시간씩 두차례 이상 번갈아 방문하며 돌봐주고 있습니다.

"사회서비스가 '김장' 담그는 일인가요?"

전씨는 먼저 '가정부'로 전락한 사회서비스 일자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전씨는 "노인을 돌보는 일에 집안일이 포함되지 않을 수 없지만, 일부 가정에서는 돌봄 일과는 전혀 무관한 싱크대 청소나 김장 등에 동원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노인의 보호자(주로 자녀)가 하는 부탁이라 거절할 수도 없다. 하인 부리듯 일을 시킬 때도 있다"고도 토로했다.

실제 전씨는 이날 구로역 인근에 사는 한 할머니 댁을 방문해 거실 청소를 했다. 물론 노환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할머니의 손발을 대신해 수저를 들기도 했다. 전씨는 "노인을 돌보는 일은 보람을 느끼겠는데 청소 등은 솔직히 꺼려진다"고 말했다.

최저 임금에 못미치는 임금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씨는 바우처에 참가하기 전에 가정부로 2년, 병원 내 간병사로 3년간 일한 바 있다. 당시 임금(시간당)은 현재 받는 돈의 2배가량이었다. 그러다 바우처 사업이 진행된다는 얘기를 듣고 '보람을 느끼며 일하자'는 생각에 이직을 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기대감이 컸죠. 사실 간병사 일을 할 때는 스스로 떳떳함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바우처는 정부 사업이라 다를 줄 알았는데, 일은 더 힘들고 처우도 더 좋지 않고…. 전혀 보람을 느끼지 못합니다."

전인숙씨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한 할머니에게 배즙을 갈아 먹이고 있다. 전씨는 현재 4명의 노인을 돌보고 있다.
 전인숙씨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한 할머니에게 배즙을 갈아 먹이고 있다. 전씨는 현재 4명의 노인을 돌보고 있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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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서비스? 고된 일에 임금은 시간당 5500원"

전씨는 바우처를 시작하기 전, 정부가 진행하는 80시간의 강좌 및 40시간의 실습을 거쳤다. 그런데 막상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보니 일자리가 없었다. 일부 지원자들은 바우처를 떠나기도 했다. 그는 "바우처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비스 신청자가 매우 드물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임금이 오르는 등 처우가 개선돼야 하는데, 임금이 시간당 5500원으로 고정돼 있으니 직업에 대한 비전도 없다"고 했다.

일을 하다 몸을 다쳐도 보상받는 일이 어렵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실제 전씨는 반신 마비의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을 오가다 허리를 다친 적이 있다. 그러나 하소연 할 데조차 없었다. 정부가 벌이는 사업에 참여하면서도 산재보험 처리 절차가 복잡해 보상 받기를 포기했다. 이 탓에 일주일간 일손을 놓아야 했다.

아파서 쉬는 동안에도 임금은 받지 못했다.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단말기'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가령 이용자(노인 및 보호자)가 서비스를 제공받은 뒤, 현장에서 바우처 카드로 '결재'를 해줘야 일한 대가를 인정받을 수 있다.

"건설 노동자와 다름없지요. 정부 정책에 따라 일을 하면서 '일당'을 받는 셈이지요.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제도를 만들었으니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민간기관이 사업 시행을 맡아하는 것도 그렇고. 젊은이는 뛰어들 엄두도 못 냅니다. 비전이 있나, 임금이 높나, 그렇다고 보람이 있나. 정부가 벌이는 사회 일자리? 참 빈약합니다."

'비정규직'보다 못한 사회서비스 일자리... 대선 후보들의 공약은?

전인숙씨가 사회서비스 이용자로부터 결재를 받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단말기.
 전인숙씨가 사회서비스 이용자로부터 결재를 받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단말기.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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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전씨는 현 대선 후보들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갔다.

"만날 빛 좋은 개살구 마냥 '몇 백만 일자리 창출'을 외칠 게 아니라, 여성들이 보람을 느끼며 사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실속 있는 정책을 내줬으면 좋겠어요. 일자리 창출안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어느 정책이 효과가 있는지도 분석해줬으면…. 현장을 찾아준다면 더 할 나위가 없지요."

각 대선 후보에 바라는 바를 묻자 전씨는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전반을 꼬집는 공약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에서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높다고 하는데, 차기 대통령은 그런 사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실제 유력 대선 후보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기업규제 완화 및 감세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도 사회서비스 일자리와 관련된 공약은 내놓고 있지 않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7% 경제성장률에 50만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사회서비스의 경우에는 여성 일자리 대책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간병인·가사방문 도우미 등의 일자리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은 내놓지 않았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공약은 비교적 상세하다. 권 후보는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사회서비스센터'를 설립해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이 센터에서 사회서비스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1년에 100만개씩 집권 5년간 500만개의 일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발표 바 있다. 그러나 별도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공약은 내놓지 않았다. 이인제 민주당, 이회창 무소속 후보도 관련 공약이 없는 상태다.

"일자리 몇백만개? 유치한 공약보다 일자리 질을 생각해야"

대선시민연대가 지난 14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3층 회의실에서 사회서비스 일자리 관련 집단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선 후보가 사회 취약층을 위한 사회서비스 공약에는 무관심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선시민연대가 지난 14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3층 회의실에서 사회서비스 일자리 관련 집단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선 후보가 사회 취약층을 위한 사회서비스 공약에는 무관심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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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열린 집단인터뷰에서도 사회서비스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무관심에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인 남병준씨는 "대선 후보들이 '몇백만개 일자리 만들겠다'는 유치한 공약이 아니라 국민이 필요로 하는 사회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최준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 정책국장도 "차기 대통령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수요조사를 철저히 해서 얼만큼의 예산으로 어떤 일자리를 만들어나갈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대선시민연대측에 따르면 돌봄 노동자에 대한 정부 통계조차 전무한 가운데 대부분의 노동자가 ▲근로기준법 미적용 ▲4대 보험 미가입 ▲장시간 노동 ▲복지시설 미흡 ▲유료소개소의 부당이익 취득 등으로 인한 피해를 감당하고 있다.

이에 공공노조 자활지부가 168개 지역자활센터 실무자에게 바우처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07년 6월 현재 바우처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26.8시간, 월평균 임금은 59만4000원에 불과했다.

또 바우처 참여자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적용돼야 할 법정복지혜택 적용율이 매우 낮은 실정이다. 세부적으로 사회보험 적용율은 분야별로 35~47%, 퇴직금 32.4%, 주휴일 24.4%, 연차 13%, 노동절 유급휴가 10.6% 등이다.

이에 대선시민연대쪽은 최근 여성 분야 정책과제로 '돌봄 서비스의 공공화를 통한 돌봄 노동자 권리 보장'을 선정하고 각 후보쪽에 공약 채택여부를 질의한 바 있다. 이에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정동영, 권영길, 문국현, 이인제 후보는 공약 채택을 약속했다. 


태그:#대선 공약, #공약 검증, #사회 서비스 일자리, #대선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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