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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국가 정보기관이라는 거대 권력의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 쉽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의 자기 고백은 거의 없었다. 자료를 열람할 때도 까다로운 절차를 밟았다." (이창호 전 국정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위원)

 

"노근리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가해자인 미군보다 오히려 한국정부에 야속함을 느꼈다. 노근리특별법이 진상규명 범위(1999~2001년 한·미 공동조사에서 유보된 희생자)를 제한해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 (정구도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및명예회복위원회 위원)

 

참여정부가 들어 국가차원의 과거사 정리가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실제 조사를 담당한 관계자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과거 국가의 잘못을 청산하는데 다소 기여했다"면서도 "앞으로 남은 과제가 더 많다"고 내다봤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 5개 과거사위원회는 28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과거사정리 활동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5개 과거사위 공동 토론회..."국정원, 자기 고백 없었다"

 

이번 토론회는 현재까지의 과거사정리에 대해 평가하고 향후 방향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경찰청·국정원·국방부 과거사위 등 국가 기관이 설치한 위원회의 활동이 사실상 종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 일제 청산과 관련된 위원회의 활동은 중반기에, 진실화해위는 2주년을 맞는 가운데 중간평가의 자리를 가진 것.

 

토론회 1부는 '국가기관 설치 과거사위원회와 제주4·3사건, 노근리사건 진실규명 활동 평가'를 주제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과거사 청산' 자체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정부의 작업이 아직 '걸음마'를 뗀 상태라 부족함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특히 관련 기관들이 자료 제출을 꺼리고, 관계자들이 함구함에 따라 진실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오는 12월 활동을 마감하게 될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이완범 위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은 "많은 시간과 인력·예산을 투입했지만 경찰 내부의 냉소적 시각과 타기관의 비협조로 인해 부실한 측면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김기설씨의 유서 원본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검찰쪽은 '경찰청과거사위는 이해당사자인데다가 객관적인 검증 능력이 없다'며 거절했다. 사본을 복사해오긴 했지만 원본이 아닌 탓에 필적을 감정하기가 어려웠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노태우 정권 시절 민주화세력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힌 사건으로 그간 끊임없이 조작 의혹이 제기돼 왔다.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했다'는 당시 필적감정 결과를 번복,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이창호 전 국정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부위원장도 "국정원은 자기 고백을 해서라도 과거 청산에 나서겠다며 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실제 자기 반성은 거의 없었다"면서 "'김형욱 실종사건'에 관여했던 전직 간부는 죽을 때까지 입을 닫았다"고 전했다.

 

또 이 전 부위원장은 "의혹이 제기된 97건의 사건 중 7대 사건만 선정해 조사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그 이유로 ▲시간과 인원의 부족 ▲조사 권한의 부족 ▲내부문서 입수의 어려움 ▲조사활동에 대한 안팎의 저항 등을 들었다.

 

국정원 진실위는 박정희 정권 말기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에 따라 이상열 프랑스 주재 공사 등이 김형욱씨를 살해했다고 지난 2005년에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양조훈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4·3 사건 추모기념일 지정 등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과제들이 아직 남아 있다. 이는 새로 발족될 제주4·3평화재단이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과거사위 많은 한계 있지만... 국민 인식 변화 등 성과도"

 

한편, 토론회 참석자들은 그간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에 부족함이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이기욱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부위원장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최근 신군부의 언론통제, 10·27법난 사건을 규명하는 등 많은 성과를 남겼다"면서 "과거사위 활동에서 민관이 상호 협력하면서 앞으로 우리 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국정원 진실위의 이창호 전 위원도 ▲잘못된 관행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우침으로써 국정원 내부에 긍정적이 영향을 끼친 점 ▲국가 정보기관으로 오랜 기간 가졌던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는데 기여한 점 ▲국제적으로 한국의 정보기관이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 점 등을 성과로 내걸었다.

 

이에 대해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사학과)는 "과거사를 정리하는 기본 목적은 과거의 잘못이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법률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과거사를 개별 사건으로 다루기보다 포괄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진상규명 활동을 진행시켜야한다"고 충고했다. 아울러 "과거사정리 작업의 목표·범위·방법론에 대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를 찾은 탁미선 삼청교육대피해자유족회 대표는 "군사정부 시절 국가 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을 위해 앞으로 진실화해위 등이 할 일이 많다"고 당부했다.


태그:#과거사정리위원회, #과거사위, #진실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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