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오성옥 선수(왼쪽)과 오영란 선수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오성옥 선수(왼쪽)과 오영란 선수 ⓒ 대한핸드볼협회


이 두 아줌마들은 지금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꽤 오래 한솥밥을 먹었다. 그런데, 성씨도 키도 모자라 나이까지 똑같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 아닐까?

둘은 171cm의 키에 만 나이로 서른 여섯이다. 이번 올림픽에 나가는 것으로 센터백 오성옥(오스트리아 히포방크)은 다섯 번이나 계속해서 올림픽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고, 문지기 오영란(벽산건설)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부터 시작해 네 번째다.

이들과 무려 열 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 스무 살 동갑내기 김온아(센터백)와 배민희(라이트윙) 등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진작에 어린 선수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겠지만 지금 형편은 그렇지만도 않다.

억울해서라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들 핸드볼 코트의 '미시즈 오'에게는 술자리도 아닌데 '2차, 3차'가 이제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으로도 잘 알려진 2004 아테네올림픽 결승전에서 그들은 숙적 덴마크와 만나 2차 연장전까지 눈물의 명승부를 펼쳤고, 올 초까지 이어진 2008 베이징올림픽 예선전 일본과의 재경기도 모자라 프랑스 님으로 날아가서 최종 예선리그까지 덤으로 뛰어야 했다.

정말 '우여곡절'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오죽하면 문지기 오영란이 문화방송(MBC)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동료들과 "이제 올림픽 나가는 거야?"라는 대화를 나눴을까?

이번 베이징 본선 무대만을 위한 과정도 그랬지만 지금까지의 금메달 도전사만 놓고 봐도 이들 단짝 아줌마들에게 베이징올림픽은 각별한 뜻이 담겨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지난 세 대회 내내 우리와 불편한 인연을 맺은 바 있는 덴마크가 이번 대회에 예선에서 미끄러져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덴마크와의 질긴 인연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결승전부터 시작되었다. 1988년 서울, 1992년 바르셀로나에 이어 3연속 금메달을 노리던 우리 여자대표선수들은 팀의 주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센터백 오성옥의 활약으로 덴마크를 쉽게 물리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후반전 체력적으로 문제를 드러내며 따라잡히는 바람에 연장 접전까지 펼쳤다.

특히, 이 경기에서 새내기 문지기 오영란은 후반전 5초를 남겨놓고 당시 정형균 감독의 부름을 받아 문향자 대신 골문을 지키러 나왔다. 29-29 상황에서 7미터 던지기(페널티드로)를 내준 것. 오영란의 유연함은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빛났다. 그는 중심을 낮추며 오른발을 쭉 내뻗어 보기 좋게 막아내고 말았다. 하지만 연장전에서 너무 쉽게 골을 내준 우리 선수들은 31-37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오성옥과 오영란의 대표팀 인연은 이로부터 쭉 이어지며 그간의 눈물과 땀을 함께 흘렸다. 덴마크와의 두 번째 불편한 인연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준결승전에서도 이어졌다. 이번에도 센터백 오성옥이 놀라운 기동력을 자랑하며 후반전 맹추격의 주역이 되었지만 경기 초반부터 벌어진 점수차를 끝내 좁히지는 못했다. 29-31로 그렇게 무릎을 꿇고 3, 4위 결정전에서도 노르웨이에게 잡히는 바람에 메달을 걸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대회가 되고 말았다.

2004 아테네올림픽 결승전은 헬레니코 인도어 아레나에 그들의 한이 묻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억울한 경기였다. 특히, 문지기 오영란은 100분이 넘도록 이어진 경기(전반전-후반전-1차연장전-2차연장전-승부던지기)에서 무려 스물 두 개의 눈부신 선방을 기록하며 분전했기에 그 누구보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덴마크와의 2차 연장전 8분, 결과적으로 마지막 승부처가 되고 말았지만 오영란의 선방은 분명히 승부의 쐐기를 박을 수 있는 발판이었다. 하지만 두 명의 폴란드 출신 심판(바움, 고랄치크)은 오영란의 손에 맞고 끝줄 밖으로 나간 공의 소유권을 덴마크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핸드볼 경기 규칙상 문지기의 몸에 맞은 공이 끝줄 밖으로 나갔을 경우에는 수비팀에게 공이 주어지는 것이기에 너무나 명백한 오심이었다.

그 순간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던 오영란의 허탈한 표정, 그 황당한 심판들이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가는데도 '염화미소'만 짓던 임영철 감독, 승부던지기를 실패하여 울다가 퉁퉁 부어오른 문필희(벽산건설, 레프트백)의 붉은 눈두덩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헬리니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림픽 핸드볼 여자 결승전에서 덴마크에 아쉽게 패한 한국팀 주장 이상은(오른쪽)등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며 퇴장하고 있다.

2004.8.29

헬리니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여자 결승전에서 덴마크에 아쉽게 패한 한국팀 주장 이상은(오른쪽) 등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며 퇴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다 보여준 그들에게 더 바라지는 말자"

이번 대회에 비록 그 불편한 인연의 맞수 덴마크가 나오지 못해서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벽을 넘지 못해서 못 걸어본 금메달을 승구 엄마 '오성옥'과 서희 엄마 '오영란'이 나란히 걸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동안 느껴왔던 억울함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는 느낌일 정도다.

그러나 곰곰 그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하던 과거 12~16년간을 떠올려보면 나의 바람이 지나친 사치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렇다. 그들이 메달을 목에 걸지 않아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4년 전 다짐했던 것들이 헛되지 않을 듯싶다.

그들의 눈물겨운 은메달 덕분에 핸드볼 경기장이 실제로 얼마나 추운지 직접 경험해 보았고 입장료도 받지 않는 핸드볼큰잔치 관중석에 앉아 덤으로 사은품까지 받아오지 않았던가?

이미 그들은 수준 높은 실력과 악착같은 근성으로 우리들 마음 속에 핸드볼, 아니 스포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선물했던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 이미 그들은 우리를 대표해서 뛰는 최고의 선수들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5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에서 여자 핸드볼 대표팀 오성옥 선수에게 이명박 대통령 친서를 전달한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에서 이명박 대통령 친서를 전달받은 여자 핸드볼 대표팀 오성옥 선수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가 함께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갑내기 '미시즈 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땀과 눈물을 통해 우리에게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을 쥐고 뛰며 한 가운데에서 우리 팀의 공격을 이끌어줄 오성옥은 출국 전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핸드볼은 나의 인생)을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먹고살려고 핸드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핸드볼이 좋기 때문이다."

'우생순'이라는 영화 속 한미숙(문소리 분)이 자신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제 자신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내용을 다루었기에 던진 한 마디였다. 이처럼 그들은 정말 그것이 좋아서 그 자리에까지 나가게 된 것이다. 단순히 금메달만을 위해 코트에서 땀과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영란도 문화방송(MBC) 인터뷰를 통해, "원없이 뛰고 오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정말로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오면서 갈고 닦은 실력을 원없이 발휘하는 장면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 또한 '행복'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오성옥, 오영란의 올림픽 메달 도전사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결승(오성옥 참가)
한국 28-21 노르웨이(올림픽 2연속 금메달 획득!)

★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결승(오영란, 오성옥 참가)
한국 31-37 덴마크(한국-은메달 획득)

★ 2000년 시드니올림픽 준결승(오영란, 오성옥 참가)
한국 29-31 덴마크(한국-4위)

★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오영란, 오성옥 참가)
한국 34-34(승부던지기 2-4) 덴마크(한국-은메달 획득)
오영란 오성옥 핸드볼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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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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