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양태영이 19일 오후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남자체조 평행봉 결승전에서 무대를 등진 채 돌아앉아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양태영이 19일 오후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남자체조 평행봉 결승전에서 무대를 등진 채 돌아앉아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송주민


'비운의 체조스타' 양태영, 그는 경기 내내 앞을 바라보지 않았다. 무대를 등진 채 돌아앉아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결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경쟁 선수가 연기를 하는 순간에도,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울려 퍼질 때에도 그의 시선은 고정돼 있었다.

입은 굳게 다물어진 상태였다. 표정도 잔뜩 긴장돼 있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체조 평행봉 결승전. 양 선수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경기였다. 경기를 앞둔 양 선수의 얼굴에는 절박함만이 가득 서려 있었다.

"4년 전 도둑맞은 금메달, 이번엔 꼭 따고 싶었는데..."

 한국의 양태영이 19일 오후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남자체조 평행봉 결승전에서 평행봉 연기를 펼치고 있다.

한국의 양태영이 19일 오후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남자체조 평행봉 결승전에서 평행봉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2004년의 아테네,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 현장에서 그는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당시 남자체조 개인종합 경기에 나선 그는 완벽에 가까운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금메달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심판의 어이없는 오심이 뒤따랐고, 다 잡은 금빛 메달은 일순간에 그의 품에서 달아났다.

양 선수는 도둑맞은 금메달을 맥없이 바라보며 고국 행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양 선수의 이름 앞에는 '비운의 스타'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게 됐다.   

"큰 시합에 나갈 때마다 부상을 당하게 되고 심판의 오심을 받게 되는데, 그건 우연의 일치라고 보고, 이번에는 꼭 그런 모습 떨쳐내고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은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래서 은퇴마저 미루고 이번 올림픽에 출전했다. 우리나이로 29살(80년생). 체조 선수로는 환갑의 나이였다. 그에게 '다음을 기약하자'란 말은 더 이상 위로가 될 수 없었다.

평행봉은 그의 주 종목이자 4년 전 아테네에서 아픔을 겪었던 바로 그 종목이었다. 8위에 그쳐 아쉬움을 샀던 지난 14일 개인종합경기에서도 평행봉만큼은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선보이며 16.350점으로 1위에 올랐다. 경기를 앞둔 양 선수는 "개인종합 결승에서 했던 것처럼 평행봉 연기를 한다면 메달을 충분히 딸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4년 전 기억이 그를 한없이 초조하게 했을까? 아니면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을까?

 한국의 양태영이 19일 오후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남자체조 평행봉 결승전에서 경기를 마친뒤 시합장을 걸어 나오고 있다.

한국의 양태영이 19일 오후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남자체조 평행봉 결승전에서 경기를 마친뒤 시합장을 걸어 나오고 있다. ⓒ 유성호


평행봉 결승경기를 앞둔 양 선수는 경쟁 선수의 연기에 눈길 한번 주지 앉으며 무대를 등지고 앉았다. 한국 관중들의 '양태영 파이팅'이라는 함성 소리에도 그는 미간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약간의 스트레칭과 심호흡만 거듭할 뿐이었다. 모든 집중을 자신에게만 쏟아 부으며 끊임없는 자기주문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베이징서도 풀지 못한 '한'... 표정 굳어버린 양태영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왔다. 8명의 선수 중 7번째로 평행봉을 잡은 양 선수는 마지막으로 호흡을 한 번 크게 가다듬은 후 '한풀이' 연기에 들어갔다. 바로 앞서 연기를 펼쳤던 유원철 선수도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맏형'의 설욕전을 지켜봤다. 

부담감이 컸던 탓일까, 연기 도중 연결동작에서 힘이 들어가 다소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연출됐고, 공중동작에서는 다리가 약간 벌어지는 실수를 범했다. 그래도 크게 나쁘진 않았다.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연기를 펼쳐 기대를 걸어볼 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착지였다. 평행봉에서 내려와 마루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한쪽 발이 뒤쪽으로 크게 밀렸고, 양 선수는 착지 장소에서 한 걸음 이상 뒤로 물러난 채로 연기를 마감했다. 무대에서 내려온 양 선수의 표정은 이내 굳어버렸다. 유원철 선수와 코치진이 다가와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를 했지만, 그의 감정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아 보였다.

결국 그의 성적은 15.650점이 나와 8명의 선수 중 7위에 그쳤다. 결과는 냉혹했다. 전광판에서 자신의 성적을 확인한 그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애써 감정을 추슬러 보려 했지만 얼굴 가득 드리운 침울한 기색은 숨길 수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4년간 애타게 기다려 온 올림픽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비운의 스타' 양태형, 그의 환한 웃음은 베이징에서도 볼 수 없었다. 경기를 마친 양 선수는 베이징 체조경기장을 말없이 걸어 나가며 다시 오기 힘든 길을 떠났다.

 한국의 양태영이 19일 오후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남자체조 평행봉 결승전에서 메달권을 벗어나자 코치진이 위로를 해주고 있다.

한국의 양태영이 19일 오후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남자체조 평행봉 결승전에서 메달권을 벗어나자 코치진이 위로를 해주고 있다. ⓒ 유성호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양태영 체조 평행봉 남자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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