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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도 안 드는 솔밭 속에 공원이라는 명목으로 조성된 야생화 화단이 있다. 심은 야생화도 원추리, 옥잠화, 하늘매발톱, 꽃잔디, 패랭이, 구절초, 벌개미취, 돌단풍 등 하나 같이 햇볕  없이는 살 수 없는 것들뿐이다. 이 화단이야말로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생태맹(生態盲)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다.-방장산(봉명산 군립공원) 다솔사편에서

 

어디 이곳뿐이랴. 유감스럽게도 이와 같은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이제 흔한 모습이다.

 

시화호와 새만금은 정부의 개발지상주의 생태맹이 초래한 대표적인 희생물이랄 수 있다. 논란중인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추진이나 4대강 정비사업, 계양산 골프장 건설 등도 생태맹들이나 할법한 한심스런 작태들. 여기에 지방자치의 세수원 확보를 위한 수많은 개발까지 가세, 우리의 자연환경은 이런 생태맹으로 오늘날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사찰생태연구가 김재일의 '108 사찰 생태기행 시리즈' 출간목적은 정부의 이런 개발지상주의 개발과 이런 저런 이유들로 훼손당하고 있는 우리 숲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한다. 이 책 <산사의 숲, 침묵으로 노래하다>(지성사 펴냄)는 시리즈 두 번째 책.

 

저자의 안타까움은 우리가 자연유산(환경)에 관심을 갖고 지켜내야 하는 이유와 사명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찰 주변 생태 보존의 필요성을 책의 머리말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 수 백 년 동안 지키고 가꿔온 우리의 숲과 나무들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점점 제 설 곳을 잃고 외마디 울음을 흘린다. 도시가 발달하고 어느 날 산 하나가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수 백 년 전부터 사람만큼이나 자연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던 옛 선조들의 숨결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우리가 돌보지 않는다면 수십 수 백 년 뒤 후손에게 남겨질 자연은 우리가 받은 것보다 훨씬 작고 초라하게 변할 것이다. 땅이 사라지기전에, 풀과 나무와 곤충과 새와 동물들이 제집을 잃고 우리 땅에서 영영 모습을 감주기 전에, 선조들이 남긴 귀한 자연유산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출발한 것이 이 책으로 묶은 108 사찰 생태기행의 시작이었다.-책속에서

 

그런데 왜 하필 사찰 주변의 생태계인가? 그리고 왜 하필 108 사찰인가?

 

'명산대찰'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이름난 산과 큰 절'이라는 뜻인데, 이 말만큼 우리의 자연환경을 잘 표현한 말도 드물 것이다. 이름난 산치고 유서 깊은 사찰 한 둘 품지 않은 산이 없고 유서 깊은 사찰치고 맑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찰들은 가야산 해인사, 모악산 금산사, 치악산 월정사 등처럼 산과 사찰이 함께 불리곤 한다.

 

그동안 사찰 숲을 관찰하고 공부하면서 배운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옛 수행자들이 나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당대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중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를 드나들면서 숲의 전령사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배롱나무, 파초, 불두화, 상사화, 차나무, 참죽나무 등이 스님들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식물들이다.-책속에서

 

이렇게 들여온 나무들을 사찰 경내에 심거나 사찰 주변 숲에 심어 가꾸었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유서 깊은 사찰일수록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나 숲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나무들을 심고 가꾼 것은 사찰과 사찰의 수행자들이다.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고창 선운사의 송악, 화성 용주사의 회양목, 진안 마이산 은수사의 줄사철나무 군락과 청실배나무 등은 수행자들이 심고 가꾸어 온 대표적인 노거수들이다.

 

영광 불갑사의 참식나무 숲, 강진 백련사의 동백나무 숲, 고흥 금탑사의 비자나무 숲, 고창 선운사의 동백나무 숲, 방성 백양사의 비자나무 숲, 부산 범어사의 등나무 숲, 정읍 내장사의 굴거리나무 숲 등은 나무 한그루가 아니라 군락을 이룬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들로 오랜 세월 사찰과 함께 해온 것들이다.

 

이들 나무와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는 단지 오래된 노거수여서가 아니라 이들 나무와 숲이 우리나라 자연환경과 식생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와 절대적인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혹자들은 대사찰 주변의 숲들을 우리나라 자연환경의 허파라는 말까지 할 정도이다. 사찰의 나무와 사찰 주변 숲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오늘날 개발지상주의 정부의 정책 등으로 우리의 자연환경은 물론 사찰 주변의 숲들까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사찰들의 자연경관과 사찰 생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불사, 자연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임도건설, 최근 급증한 등산객들까지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더 이상 방관해선 안 될 절대적인 이유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의 책에 불교문화재에 대한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만, 사찰 주변의 자연 환경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가 거의 없다. 과거에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당연했고 특별히 훼손되는 일도 거의 없었으니 이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중략)옛날에는 환경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찰 주변의 자연환경을 기록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중략)비록 개인의 작업이지만, 우리 시대의 사찰 숲에는 무슨 나무와 풀들이 있고 어떤 곤충이 살고 무슨 새들이 날아드는지 기록으로 남겨 놓고 싶었다. 이런 기록이 있어야 후손들이 사찰 숲의 변화와 파괴 정도를 가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책속에서

 

개발지상주의 생태맹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108사찰 생태기행 시리즈

 

그런데 왜 하필 108사찰인가? 저자에 의하면 '108'이라는 숫자가 주는 상징성 때문이다. 불교에서 '108'이라는 숫자는 인간이면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번뇌를 상징한다. 환경문제는 인류의 생멸이 걸린 구체적이고도 상징적인 번뇌이자 화두이기 때문에 108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굳이 108개 사찰로 한정했단다.

 

이 책은 앞으로 10권까지 출간할 '108 사찰생태 시리즈' 두 번째. 첫 번째는 <산사의 숲을 거닐다>로 강화 낙가산 보문사, 고양시 북한산성 중흥사지와 태고사, 인제 설악산 백담사와 봉정암, 속리산 법주사, 덕숭산 수덕사 등을 답사, 기록했다.

 

제2권인 이 책에서 답사하고 있는 곳들은 관악산 연주암, 경기 광주 청량산 장경사, 안성 사운산 청룡사와 석남사, 공주 계룡산 갑사, 서산 천수만 간월암,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와 부안 능가산 내소사 등 12사찰과 사찰 주변 숲, 그리고 그 숲의 작은 암자들이다.

 

저자의 생태기행은 사찰에 접어드는 길목부터 시작,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전각들과 옛 수행자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내 구석구석, 이용자들의 편리를 위해 근래 신축한 사찰들의 공양간과 해우소 및 주차장,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길이 어지간해선 머물지 않는 전각 뒤, 사찰을 품고 있는 산과 주변 암자,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등산로와 그 산의 정상 등이다.

 

저자는 이런 곳들에 어떤 풀과 어떤 나무들이 자라 어떤 숲을 이루고 있는지 어떤 곤충과 어떤 새들이 날아드는지 등을 조목조목 들려준다. 또한 근래 사찰의 신도들나 등산객들을 위해 많이 지어지고 있는 사찰 건축물들의 장·단점, 생태를 고려하지 않는 건축물들의 대안을 생태적인 시각으로 조목조목 설명 제시하기도 한다.

 

참나무류는 잎의 모양으로 구분한다. 왼쪽 잎의 가장 큰 잎부터 시계 방향으로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의 잎이다. …(중략)(책속 참나무 잎 사진 설명 중에서)…법화골은 참나무골 우점지역이라서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곤충을 볼 수 있다. 참나무류는 많은 곤충을 먹여 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버드나무 다음으로 많은 곤충을 포용하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참나무류 나무에 약 369종의 곤충들이 살고 있다는 조사가 발표되기도 했다.-책속에서

 

저자는 이처럼 어떤 곳에 어떤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는지 단지 나열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만의 특성과 역사까지를 사진과 함께 들려주고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는 훨씬 많아진다. 이런지라 이 책을 통해 그동안 흔하게 봤지만 이름을 몰랐던 나무들의 이름과 특성, 우리 생활과 연관된 역사를 알게되는 수학을 얻었다.

 

저자는 또한 일반인들이 어떻게 자연을 느끼고 생태 탐방을 해야 하는지, 사찰에서는 어떤 노력으로 사찰 숲을 지켜야하는지도 조목조목 알려준다. 저자는 '생태'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부터 환경단체 '두레생태기행'을 만들어 이 땅의 구석구석을 생태기행중이란다. 생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지침서로 삼으면 좋은 길잡이기 될 법하다.

 

이제까지 사찰을 역사·문화적 시각으로 다룬 책들은 무수히 많았다. 생태를 다룬 책들도 무수히 많다. 또한 최근 등산인구가 늘면서 기행문처럼 쓴 산행기나 등산로 등을 설명하는 지침서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처럼 사찰의 역사와 문화재는 물론 사찰의 나무와 사찰을 품고 있는 산의 속살까지 다룬 책은 없었다.

 

우리는 근래 참 많은 자연환경을 잃었으며 일부 자연환경들은 발전이란 명목의 탈을 쓴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여전히 논란중이다. 이 책, 이 시리즈가 부디 많이 읽혀져 우리 생태 보전과 살리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부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자연환경을 돈벌이로만 이용하려는 생태맹들의 감은 눈을 뜨게 하는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산사의 숲, 침묵으로 노래하다>(김재일 지음/지성사/2009.3.5/17,000) 이 책은 '108사찰 생태기행 2권'으로 앞으로 10권까지 출간될 예정입니다.


산사의 숲, 침묵으로 노래하다

김재일 지음, 지성사(2009)


태그:#사찰생태연구소, #두레생태기행, #김재일, #지성사, #108사찰 생태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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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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