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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뒷골목에 구청에서 허가받은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다.
▲ 성신여대 앞 길거리 포장마차 CGV뒷골목에 구청에서 허가받은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다.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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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등록금 천만원 시대'니, '88만원 세대'니 하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대학생들을 보면 한 개그 프로의 유행어, "니들이 고생이 많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시간 당 4000원을 받는다고 해서 아무렴 밥이야 굶을까 만은, 집에서 받은 용돈 혹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 대부분이 식비로 지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때다. 맛과 분위기를 중시하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요식업계가 성장하면서 한 끼 식사에 5000원은 기본, 기분 좀 내려면 1만 원은 족히 드는 탓이다.

가진 돈 많지 않은 대학생을 위해 성신여대 앞 로데오거리(서울 성북구 돈암동) 에서 찾은 '1000원의 행복'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름하여 '아무 이유 없이 단돈 천 냥 먹거리'. 이왕이면 '길거리표' 코스 요리로 골라봤다. 친구들과 할인쿠폰에 할인카드까지 죄다 모아 종종 방문하는 탓에 이제는 너무도 흔한, '패밀리 레스토랑' 가 본 티 좀 내볼까.

[애피타이저] 15년 간 핫바계에 몸담고 계신 '달인'을 만나다

'핫바계의 달인'이 손님을 기다리는 중, 1000원이라는 가격 뿐 아니라 맛도 훌륭하다.
▲ '핫바, 아무 이유 없이 1000냥' '핫바계의 달인'이 손님을 기다리는 중, 1000원이라는 가격 뿐 아니라 맛도 훌륭하다.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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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맛의 다양한 핫바들, 깻잎 핫바 강추!
▲ '아무이유없이 천냥 핫바' 10가지 맛의 다양한 핫바들, 깻잎 핫바 강추!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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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메인메뉴에 들어가기에 앞서 애피타이저(전채요리)는 필수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즉석 '핫바'로 결정! 앞에서 말 한대로 1000원이다.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정겨운 주인아저씨는 카메라 들고 다가온 나를 보고도 의연하시니 왠지 모를 '포스'가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핫바' 만드신 지 15년이나 되셨다니 '핫바계의 달인(?)'을 만난 거다.

깻잎 한 장이 다소곳이 달라붙은 깻잎 핫바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햄 핫바, 치즈인지 떡인지 모를 게 들어있는 핫바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천 원의 단가를 생각하면 아마도 치즈는 아닌가보다. 이 밖에도 총 10가지 맛이라는 데 이미 먹을 생각에 정신이 팔려 세어 보지는 않았다.

가장 인기 있는 핫바를 달라고 하니, '깻잎 핫바'를 추천해 주셨다. 금방 튀긴 핫바를, 앞에 놓인 '칠리·케첩·머스타드' 소스 중에 직접 골라서 뿌려 먹도록 돼있다. 물론 욕심 많은 내가 세 가지 소스 다 뿌려도 아무 말씀 안하셨다. 맛은? "정말 맛있다"라고 밖에는 표현을 못하겠다. 미식가가 아니라서 아쉬울 따름이다.

'핫바계의 달인'답게 말을 아끼는 아저씨에게서 15년 동안의 에피소드는 전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맛있다"는 말만은 자신 있게 하셨으니 이 정도로 소개는 된 듯하다. 맛보지 못한 나머지 '핫바'들이 아쉬웠지만 아직 전채요리임을 감안해서 자리를 옮겼다.

[메인 음식] 우동 한 그릇, 자장 한 그릇, 둘 다 먹어도 2000원이야?

서서우동을 먹기위해 손님들이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서서우동 서서우동을 먹기위해 손님들이 서서(?) 기다리고 있다.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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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메인 음식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면 파스타나 스테이크 정도가 되겠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에게는 국물이 최고요,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자장면이라면 더없이 좋겠다. 이름만 들어도 궁금해지는 '서서우동' 포장마차.

CGV 뒷골목에 늘어선 포장마차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건 아마도 이름 탓이고, 유독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건 메뉴가 모두 천 원인 탓일 듯싶다. 우동이나 자장면이란 게 돈 없고 출출할 때 생각나는 대표적인 저가 음식이지만 1000원이라 하니 더욱 반갑다. 동시에 '과연 맛있을까'하는 의심도 드니 사람 심리란 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000원이라니 사실 맛도, 질도, 양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곳에서 딱 두 번 놀랐는데, 첫 번째가 바로 양이다. 그릇이 넘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느 음식점에서나 먹었던 양과 다르지 않게 푸짐했다. 파도, 김도, 고춧가루도 아끼지 않고 팍팍 넣어주신다.

두 번째는 맛이라고 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쌓여있는 그릇의 양이다. 아직 저녁 시간 전 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다. 우동을 먹는 중에 주인아주머니의 조카라는 사람이 와 쌓여있던 그릇을 수거해갔다. 포장마차인 탓에 별다른 수도시설이 없으니 싣고 가서 씻어온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맛'은? '국물이 끝내준다'느니, '면발이 살아있다'는 말은 못하겠다. 핑계를 대자면 길거리의, 그것도 천 원짜리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맛'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실례가 아닌가 싶다. 간편하고, 빠르고, 싸고, 맛은 '먹을 만하다'는 것으로 '나쁘지 않다'는 평을 내려 본다.

맛에 대한 핑계를 조금 더 대자면, 언젠가 "밖에서 먹는 음식의 첫 맛이 '맛있다'라는 생각이 들면 99%가 '조미료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서서우동'의 국물 맛이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다행히 첫 맛도 끝 맛도 깔끔했다. 무엇보다 늦은 시간, 기사를 쓰면서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그 우동이니 메인 음식으로 합격이다.

그릇을 닦기위게 옮기고 있는 모습(좌)과 푸짐한 서서우동
▲ 서서우동 그릇을 닦기위게 옮기고 있는 모습(좌)과 푸짐한 서서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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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먹는 중에도 정장 입은 아저씨, 여대생 두 명, 엄마와 딸, 수다스런 아주머니 세 분이 거쳐 갔다. 주인아주머니가 바쁜 틈을 타 여대생 두 명에게 맛에 대한 솔직한 평을 들어봤다.

"맛도 맛이지만 푸짐한 인심 때문에 자주 와요. 국물도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고요. 무엇보다 가격대비 이 정도 음식, 어디 가서 먹을 수나 있겠어요."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면 자주 와요. 특별하지는 않지만 뒷맛이 개운해서 제 입에는 딱 맞아요."

주인아주머니는 '아주머니'라고 하기에는 죄송할만한 외모와 젊은 취향의 패션 감각이 남달랐다. 조심스럽게 수입에 대해 물어봤다.

"일급비밀이죠. 안 그래도 요즘 잘만 된다 싶으면 똑같은 노점들이 줄줄이 생겨서 걱정인데요. 그리고 1000원에 팔아 남기는 얼마나 남겠어요. 하루에 4시간 자면서 재료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거에 비하면…."

아주머니에게 한 그릇 팔면 과연 남는 게 있는지, 얼마나 팔아야 남는 건지 물으니, 그냥 웃으신다. 말해 뭐하나. 다다익선인 것을.

[디저트] 달리는 오토바이도 멈추게 하는 '천 냥 커피'

'굿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오토바이 타고 가다 멈춰 서 있다.
▲ 달리는 오토바이도 멈추게 하는 천냥커피? '굿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오토바이 타고 가다 멈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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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코스 요리의 끝은 디저트다. 이번만은 레스토랑과 별반 다르지 않게 아이스크림과 음료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가격은 역시 단 돈 1000원인 '굿모닝커피'로 가보자. 아메리카노, 생과일주스 등 대부분의 음료가 1000원이고, 길 다란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1000원, 메인요리가 아쉬웠다면 와플도 1000원이다.

아무래도 길거리 음식을 먹은 뒤 개운한 맛을 원한다면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추천한다. 커피전문점에 가면 3000~4000원은 하지만 여기서는 그 돈에 커피, 아이스티, 생과일주스 삼 종 세트를 맛 볼 수 있다.

커피는 마트에 파는 커피믹스일 것이고, 생과일주스에는 과일 향만 넣었을 거라고? 천만에. 생과일주스니 과일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고, 커피는 원두를 기계로 탬핑하는 과정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맛을 의심하는 내 눈초리를 의식하신 아저씨는 "한 번 먹어보면 안다"며 공짜로 한 잔 내 주셨다. 아저씨의 인심 탓인지 커피 꽤나 마셔봤다(?)는 내 입에는 3500원짜리 전문점 커피나, 1000원짜리 '굿모닝커피'나 다를 게 없었다.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남녀가 멈춰 서 생과일주스 두 잔을 시켰다. "단골인가 보다"며 말을 걸어봤다.

"아니에요. 지나가다가 목이 마른 참에 '1000원'이라고 적혀 있어서 멈췄어요. (먹어 본 후) 맛도 괜찮은데요?"

단돈 천원이라는 값은 달리는 오토바이도 멈출 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나보다. 또 다른 젊은 여성, 이 근처에서 일한다고 했다.

"거의 매일 쉬는 시간마다 와서 커피 마셔요. 아무래도 여기 커피에 익숙해지다 보니 다른 곳에 가면  비싼 돈 내고 커피 사먹기가 아깝더라고요. 웬 만하면 안 가요."

주인아저씨도 한 몫 거든다.

"요즘 브랜드 커피 많은데, 저희는 품질 차이가 거의 없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도 남아서 하는 건데 거기는 얼마나 남겠어요. 남는 돈이 다 가게 늘리고, 이미지 마케팅 값이죠. 대학생들도 돈 없고, 우리도 어려운데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1000원임에도 불구하고 커피 맛에 자부심을 가진 '굿모닝커피'아저씨, 손수 탬핑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 1000원짜리 커피도 로스팅한다 1000원임에도 불구하고 커피 맛에 자부심을 가진 '굿모닝커피'아저씨, 손수 탬핑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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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스럽지만 이번에도 역시 커피 한 잔을 1000원에 팔면 얼마나 남는 지 물어봤다. '대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그래도 남으니까 걱정 말라'는 아저씨. 뻔한 질문을 하는 나도, 뻔한 대답을 하는 그도 웃고 있었다.

다다익선의 정신(?)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충실히 지키고 있는 성신여대 길거리 음식 파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1000원이라는 싼 값 탓에 남들보다 몇 시간 일찍 일어나, 몇 배는 더 많은 손님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 뻔한 대학생들이 찾아오는 한, 물가가 아무리 요동을 쳐도 '아무 이유 없는' 천 냥 음식은 계속될 듯하다.

내 맘대로 '단돈 천 냥'에 '아무 이유 없이'라는 말을 갖다 붙였지만 아무렴 정말 아무 이유 없을라고? 너도 알고, 나도 알기에 아무 이유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군소리 말고 단 돈 천 냥으로 든든하게 배 채우고, 넉넉한 인심 맛보려면 성신여대 앞 로데오거리로 오시라!


태그:#길거리음식, #성신여대, #서서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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