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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원, 19900원, 19900원, 29900원, 49900원. 99900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격표들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처럼 어떤 규칙에 따라 정해지는 듯한 가격의 이유를 궁금해 했을 법하다. 필자 역시 이 가격들이 무척 궁금했었다. <가격의 경제학>(책이 있는 마을)을 읽기 전에는.

없어도 그만인 100원 할인에 눈이 멀어 충동구매하는 소비자인 우리, 왜?

기껏해야 10원이나 100원, 200원을 깎아주고 있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이 가격에 흔들려 충동구매를 한 경험 또한 있으리라. 사실 이렇게 깎아준 100원이나 200원의 가치는 작다. 껌 한 통 살 수 없는 금액이다. 하지만 판매현장에서 이렇게 매긴 가격들이 이끌어내는 판매 상승효과는 대단하다고 한다.

'2만 원에 판매되는 제품을 지금부터 1만 9900원에 폭탄 세일합니다!' 홈쇼핑에서 나오는 세일소리가 들리자마자 수화기를 집어 드는 주부들이 많다. 말만 할인이지 고작 100원 인하된 것인데도 말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전화를 끊기도 하지만 대개 그냥 물건을 구매한다. 실제 소비자가 느끼기에 2만 원과 1만 9900원의 차이는 상당하다. 앞자리가 1이 되면서 1만 원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속에서

'없어도 그만인 그깟 100원 때문에 이제 다시는 충동구매를 하지 않도록 흔들리지 말아야지' 다짐 다짐하지만,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990원 균일가 세일을 하는 어묵이나 햄, 김밥재료 등을 보는 순간 조금 전에 했던 굳은 다짐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싸다는 생각만 앞세워 평소에는 고작 1~2개 샀던 것들을 4~5개 망설임 없이 집어 들게 된다.

계산대에서 예상보다 많이 나온 가격을 보면서 990원짜리 물건 몇 개를 싸다고 생각하여 더 집어 들었기 때문이라고 비로소 알아차리고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또 다시 비슷한 소비를 되풀이한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우리들이 쉽게 되풀이하는 문제다. 우리는 왜 이렇게 100원 할인에 유혹되어 흔들리기를 되풀이 하는 걸까?

<가격의 경제학>겉그림
 <가격의 경제학>겉그림
ⓒ 책이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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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매닝 박사와 워싱턴주립대 스프로트 박사는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와 관련된 연구를 하여 <소비자 연구 저널>이란 잡지에 재미있는 결과를 발표했다. 소비자들이 가격표의 첫째자릿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내용의 '왼쪽자리효과'.

2달러짜리 볼펜 A와 4달러짜리 볼펜 B를 학생들에게 우선 제시한다. 그런 후 4달러짜리 B를 3달러 99센트에 팔겠다고 한다. 이때 44%의 학생들이 B를 선택했단다. 그러나 뒤이어 2달러짜리를 1달러 99센트에 팔겠다고 하자 B를 선택하겠다는 사람은 18%.

저자는 '왼쪽자리효과'와 관련된 또 다른 실험을 소개한다. A그룹에는 1×2×3…×8=?을, B그룹에는 8×7×6…×1=?의 문제를 제시, 시간제한 때문에 어림짐작하여 내놓은 답에 주시한다. A그룹이 내놓은 평균값은 512, B그룹의 평균값은 2250. 곱셈의 시작이 1이냐 8이냐에 따라 예상 답에 이처럼 4배 가까운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이는 가장 앞에 놓인 숫자가 대단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예이자 나아가 사람들에게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기도 한다. 소비든 사람과의 만남이든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어떤 제품에 대한 첫 인식과 어떤 사람에 대한 첫인상에서 받은 것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대개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숫자를 접할 때에도 맨 왼쪽 자리에 집중한다. 즉 4달러짜리 펜이 3달러 99센트로 바뀌면 1센트 차이가 아니라 첫자리인 1달러의 변화로 인식해 마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소비자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를 응용해 미국의 할인점에서는 1.99달러, 10.99달러와 같이 상품에 9자로 끝나는 가격들을 많이 붙인다고 한다. 1.99달러는 실은 2달러다. 그러나 앞의 숫자 1에 주목해 1달러에 가까운 가격으로 받아들이고 예상보다 많이 구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의 현실이다. 우리 역시 언제부턴가 이와 같은 가격표가 익숙하지만 미국보다는 훨씬 미비하다고 한다. 29나 39처럼 아홉이 든 수에는 결혼이나 이사 등을 꺼리는 우리의 정서 때문에 9는 한편으로 꺼려지는 숫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 때문에 대개 할인점에서는 980원, 1480원, 5980원과 같은 가격 전략을 주로 쓴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것은, 소비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소비자들은 9000원보다 9800원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800원이 더 비싼데도 말이다. 이보다 더욱 매력을 느끼는 가격은 아예 100원을 깎은 8900원.

그런데 반대로 고급 이미지 느낌을 강조하려면 25만원, 1500만원처럼 딱딱 떨어지는 가격이 좋단다. 599999원보다 60만원이 훨씬 고급스럽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가격에는 사람들의 심리나 정서 등이 크게 작용한다. 소비자인 우리들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구매를 결정하는 모든 가격에는 어떻게든 많이 팔아 이윤을 많이 남겨야 하는 생산자들의 치열한 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가격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가격의 경제학>(책이 있는 마을)은 이처럼 우리가 거의 모르고 의식하지 않는 가격 결정에 관련된 것을 다룬 책이다.

'가격의 창의력'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
들어가는 글 중에 가격 창조, 즉 가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가 소개된다.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일이란다.

어느 해 기상이변으로 튤립이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거의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비관하여 자살하는 농부들까지 여럿 생겨날 만큼 사태가 심각했단다. 절망의 날들을 보내던 그들은 살길을 모색한다. 예전 같으면 우리 돈 1천원에나 팔았던 튤립 한 송이를 10만원에 팔기로 한 것.

"태풍의 사나운 공격에도 살아남은 이 튤립의 행운이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끈을 영원히 이어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이렇게 선전했단다. 그 결과, 이 튤립들은 불티나게 팔렸고, 농부들은 풍작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여 들였다고 한다. 이 경우 이들에게 바가지를 씌웠다고 욕할 순 없다. 이들은 1천원이라는 평범한 튤립, 즉 볼품이 없어 팔아먹을 수도 없는 꽃에 '사람과 사람사이를 영원히 이어 준다'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 그 가치의 효과를 팔아먹었기 때문에.

나아가 튤립 한 송이를 둘러싸고 다양한 현상들이 발생한다. 10만 원짜리 튤립을 구입하지 못하는 연인들을 위해 적은 돈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나오고, 튤립을 너무나 많이 심어 100원에 팔아넘겨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0만 원짜리 튤립이 더 이상 팔리지 않으니 무언가를 끼워 파는 등과 같은 또 다른 전략을 쓴다. 이처럼 가격은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위에서 설명한 '왼쪽자리효과' 외에 '원 플러스 원' '탕수육+자장면 혹은 짬뽕+만두'와 같은 묶음 메뉴, 공짜 핸드폰이나 화장품 샘플, 싸게 파는 물건, 무가지, 1000원짜리 동네 김밥 등 우리 주변에 흔한, 우리들이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당연하게 지불했던 가격 속 원리와 비밀들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설명한다.

어떻게 하면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을까? 생산자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끊임없는 전략들을 세운다. 이 때문에 가격을 둘러싸고 다양한 현상들이 발생한다. 생산자들이 가격을 매길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당연히 그 물건을 살 소비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가격이나 디자인 등 우선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려 한다. 이 때문에 물건의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정해지기도 한다. 즉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격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책 제목은 다소 딱딱하다.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할 이야기들 같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경제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이 아닌 우리들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란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감할 것이다. 우리들 누구나 가격을 정하는 생산자가 아니면 생산자가 매긴 가격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선물세트 가격에 붙은 거품에 대한 방송을 봤다. 커피나 샴푸 등의 선물세트에 포장비+반품비+인건비 등 50% 가량의 가격이 더 붙었기 때문에 세트 속 물건들을 모두 합하면 개별로 사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 게다가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물건보다 30g 가량 용량이 적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가격을 따지기 힘들게 만든다는 것.

책은 이제까지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알고 지불했던 가격 속에 숨은 것들을 다양하게 들려준다. 어떻게 하면 구매자들이 만족스럽게 지불하게 하면서 최대한의 이윤을 남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원하는 물건을 최대한 싸게 살 수 있을까? 할인점의 수많은 물건 값들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어떤 노력을 해야 가격에 현혹되는 충동구매를 막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조성기 (지은이) | 책이있는마을 | 2009-08-17



가격의 경제학

조성기 지음, 책이있는마을(2009)


태그:#가격, #시장, #값, #소비자,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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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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