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두' 다음엔 '이호'가 있다. 도두동 넓은 주차장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네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방황하지 말고 앞쪽, 곧 서쪽으로 계속 가자. 그러면 지금 걷는 해안도로는 이호 해수욕장 옆구리에 막혀 길이 끝나게 되어 있다. 차를 타고서 손쉽게 해수욕장에 닿으려면 이 네거리에서 남쪽 언덕길로 조금 따라가면 또 나오는 네거리에서 서쪽 길으로 진입하면 된다.

 

길따라 서쪽으로 걷는다. 네거리에 지어 올린 건물들을 지나치면 곧 시원한 바다를 만나게 된다. 저쪽에 바다쪽으로 향한 길다란 벽이 보인다. 그 벽엔 돌고래들이 파도 위로 멋지게 날아오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곳은 이호수원지이다. 백개포구로 향하는 길을 가운데에 놓고 두 곳으로 나뉜 이호수원지는 원래 '큰물'이라는 샘물이 있던 자리이다. 이름값 하느라고 그런건지 '큰물'은 오늘날에도 그 방법을 달리하여 마을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수원지 오른쪽 한켠에 신당이 있다. 이곳 마을의 본향당이다. '붉은왕돌 할망당'이라고 부른다는데, 당나무 뒤에 검붉고 큰 돌벽이 있다. 원래 도들오름에 있는 오름허릿당에 다니다가 이쪽으로 가지를 갈라서 모신다고 한다.

 

오름허릿당에 가는 길에 빈 허벅을 만나는 등 부정타는 일이 생겨서 그리하였다는 이유이다. 워낙에 목숨 붙잡고 살기 힘들던 시절을 견뎌온 사람들이라 사소한 것을 금기로 삼아 신경을 곤두세웠 그 마음을 되새겨본다.

 

 

다시 나와서 남쪽으로 오르면 바로 마을에 닿는다. 이 마을은 대체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바닷 바람 닿는 마을엔 집들이 낮고 돌담도 낮다. 초가들도 몇 채 보이는데 특히나 팽나무(폭낭)가 여럿 눈에 띈다. 육지는 어떤가 모르겠지만 이곳 제주도엔 마을마다 팽나무가 있다. 마을나무인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름, 바로 '당나무'. '신목'이라고도 하는 신당의 나무를 사람들은 신의 신체로 받아들인다. 삼색 물색을 나무에 달아 놓는 것은 그가 여성신인 '할망'에 해당하고 그 할망에게 어여쁜 옷을 입혀드리는 것과 같다. 이 신목의 대부분을 팽나무가 담당하고 있다.

 

팽나무를 가만히 보노라면 묵직한 힘을 느끼게 된다.

 

잘 자라고 오래된 팽나무는 그 밑동도 굵지만 줄기와 가지가 뻗은 형세가 매우 역동적이다. 곡선으로 휘어 용틀임하듯이 자라기 때문이다. 이 점은 소나무와도 닮았다. 하지만, 소나무가 홀로 선 듯 고고한 기상을 보이는 반면, 팽나무는 거기에 더해 할아버지의 풍성한 수염같은 안정감을 준다. 팽나무 밑동에 찰싹 달라붙어 위를 보면 줄기, 가지들이 커다란 타원을 그린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거기에 돋은 잎들이 합세해 둥근 그림자로 시원한 그늘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마음으론 지워버리자 다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전봇대, 그리고 전깃줄. 편리함을 위한 희망의 산물이 이 번 만큼은 다 된 밥에 빠뜨린 코와 같이 되어 버렸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여전히 검은 갯바위들이 맞이하는 바다, 많은 생명들을 품어 안은 곳. 얼마 걷지 않아 그 바다가 단절된 느낌으로 다가옴을 깨닫는다. 너른 공간을 잠식한 매립지 기반공사가 끝이 난 지 오래다. 아직 할 일이 없는 땅 위엔 누가 뿌려놓았는지 유채가 노란 꽃을 피워 뜻없는 장관을 연출한다. 해녀일 것만 같은 아주머니가 홀로 바릇잡이에 여념이 없다. 가까이 갈까 하다가 관두었다.

 

매립된 저 바닷가에서 보말(고둥 일종)을 잡았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내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것, 우리 후손의 것이기는 하기 때문에 못내 아쉽다. 저 매립지엔 호텔, 위락시설, 수족관 따위를 세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로이목마'가 떠오르는 빨간 조랑말, 하얀 조랑말 모양의 등대가 그 선두에 서서 힝힝거리는 듯하다.

 

물을 머금어 반짝거리는 모래들이 있는 해변으로 간다. 비수기인데도 이 이호해수욕장을 찾는 이가 그래도 적지 않다. 참, 해수욕장이라 해서는 안된다. '이호테우해변'으로 이름을 바꾼지 한참 되었다. 제주전통 뗏목배인 '테우'를 이호 지역에서만 탔을리는 없지만 이미 그리 이름붙였으니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참고로 '삼양 해수욕장'은 '삼양 검은모살 해변'으로 바꾸었다. 나머지 해수욕장들도 '--해변'으로 바꿀 것이라고 지역뉴스에서 알려 주었다. 이 맘때의 모래 해변은 한적한 그 맛에 거닐기 좋다. 북적대지 않으니 한결 여유로워지고 이내 사색하는 분위기로 옮아간다. 멀리서 해변을 바라보노라면 사람들은 너나없이 고개를 아래로 살짝 떨구고 걷는다. 폼난다.

 

부드럽고 검은 모살(모래)이 발자국을 만들고 하얀 조가비 껍데기가 유혹하는 발아래 풍경. 작대기로, 돌로 긁어내 사랑을 그리고 이름을 적어 꺄르르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없던 게 생겼다. 아니, 예전에 사라졌던 게 다시 만들어졌다. 아직 모래가 되지 못한 바다의 검은 돌들로 쌓아 만든 '모살원'이다. '원'은 밀물에 들어온 물고기를 가두어 썰물때에 잡는 장치이다.  예전에 없었던 것이 생기니 있었던 것은 또 사라졌다.

 

바로 해변에 있던 돌들이다. 맨발로 해수욕을 즐기는데에 방해가 되었을 테니 이 돌들을 끄러모아 원담 쌓는데에 쓴 모양이다.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다.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와 해산물들을 이 곳에 풀어 두고 참가자들이 맨손으로 잡게하는 행사를 치른다니 이번 여름에는 한 번 찾아와 봐야겠다. 이 모살원 안에 샘물이 있는데 '문수물'이라고 한다.  

 

해가 금세 넘어간다. '찰나'일 리가 없지만 '찰나'인 듯 아쉽다.

 

서쪽 지평선쪽으로 퇴근하는 해님이 붉은 노을로 하늘과 바다에 글을 써 놨다.

 

"내일 봐요~!"

 


태그:#이호, #제주여행, #팽나무, #이호테우해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