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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이게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나는 짐을 꾸렸다. 그리고 머나먼 그곳으로 떠났다.'

 

이런 식으로 비장하게 서두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삶의 비의를 깨우친 것마냥 에피소드보다는 아포리즘을 넣고, 마지막엔 '그래서 인생은 긴 여행이고, 여행은 짧은 인생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니었다. 나는 여행을 위해 무엇인가를 버린 것도 아니고, 여행 중에 성찰은커녕 성질만 돋운 적이 많았고, 여행이 끝나고 나서는 인생이 여행처럼 산만해서는 안 되겠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다면 나의 여행기도 그에 맞게 써야 되는 거 아닌가. 그렇다 솔직하게 쓰자. 여행기는 교과서가 아니라 교과서가 지루할 때 읽는 페이퍼북이 돼야 한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가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못 간다. 여행은 돈과 시간을 동시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자. 돈이 없는 대신 시간이 있고, 시간이 없는 대신 돈이 있다면 여행을 가지 못할까. 갈 수 있다. 나름대로 각자에게 충분한 자산에 특화하는 것이다. 돈이 적은 사람은 시간을 길게 잡되 돈을 적게 쓰고, 시간이 적은 사람은 돈으로 시간을 압축하는 것이다.

 

가령 방콕에서 치앙마이를 가려면 완행열차로 열다섯 시간을 가는 방법과 비행기로 한 시간 만에 가는 방법이 있다. 돈 차이는 열배가 넘는다. 이런 식이다. 물론 돈으로 때우는 것보다 시간으로 때우는 것이 여행의 진수를 훨씬 많이 건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돈보다 시간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적어도 여행이라는 매트릭스에서는. 나는 다행히 돈보다 시간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하는 사람보다 내가 부자라고 생각한다.

 

둘째.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순전히 혐오감 때문에 배척이나, 학대를 받는다거나 심지어 생명이 위협 받는다는 것은 매우 부조리하다. 설령 그것이 인간과 다른 생물 간의 관계에서라도 말이다.

 

아내는 벌레를 싫어한다. 지난 여름 찢어지는 비명 때문에 고뇌의 명상에 잠겨 있던 나는 뒷마무리도 팽개친 채 화장실에서 뛰쳐나왔다. 웬일인가 했더니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을 통과해 거실 창문에 붙어있던 것이다. 아내는 거의 사색이 되다시피 했다. 나는 매미 울음보다 아내의 고성이 더 괴로워 재빨리 매미를 잡아 날려주었다. 아내의 손에는 어느새 살충제 분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아니 내가 볼 일 보고 뒤처리를 원칙대로만 했어도 그 매미는 독가스에 의해 질식사했을 것이다.

 

개미만 봐도 무슨 철천지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족족 발라 버리는 아내 때문에 나는 자주 말다툼을 한다. 초기에는 얘네들이 무슨 해꼬지를 한다고 그렇게 삼년 묵은 웬수 대하듯 하냐고 타박하면, 모기에서부터 시작해 파리, 진득이, 송충이 등등 우리가 어려서부터 해롭다고 각인된 벌레들만 입에 올리며 우리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박멸해야 한다고 했다.

 

비약에다가 편견인 줄은 알지만 나 역시 그들과 한집안에서 같이 살고 싶은 맘은 없기 때문에 딱히 반박할 말이 별로 없었다. 나는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공격 루트를 바꿨다.

 

"니가 무슨 귀족집안에서 곱게 자란 별당아씨라고 벌레라면 기겁을 하냐?"

"싫은 걸 어떻해, 보기만 해도 온몸이 근질거리는데."

 

아내 역시 막무가내로 나왔다. 생의 4분의 3을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상자에서 지낸 아내에게 벌레는 생명이기 이전에 주거환경을 방해하는 침입자에 불과했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내에게는 벌레 아니 곤충이라는, 우리보다 훨씬 작고 연약한 생물과 공존해보는 경험이 필요했다.

 

셋째.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초등학생인 딸아이의 소원은 학원에 다니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학원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데 자기 혼자 털래털래 집에 오는 게 오히려 창피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5학년이 돼서부터는 학원 다니는 친구들의 고단함을 눈치챘는지 학원 다니고 싶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아니 오히려 엄마의 협박으로 통했다.

 

"너 그런 식으로 하면 학원 보낸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에서 부산으로 전학을 왔다. 그때 처음으로 기차를 탔고, 배라는 것을 처음 봤다. 배라고 하면 강물에 떠 있는 나룻배 밖에 연상되지 않았던 나에게 운동장 크기만한 배는 내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대함이었다. 당시 부산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 5층였는데 그 어마어마함이라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 낯섦은 내 사고를 뒤죽박죽 만들었다. 말도, 집도, 거리도, 옷차림도.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도시라는 곳에 온 게 아니라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에 온 것 같았다.

 

그때의 문화적 충격이 그후 나의 삶에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사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형과 함께 시내 구경을 하던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면 그것은 분명 충격였음에 틀림없다. 자기가 사는 곳이 전부라고 생각되던 곳에서 다른 세계와 조우했을 때의 느낌이라니. 아뿔싸,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 딸이 내가 도시에 왔던 바로 그 나이 아닌가.

 

그래, 이참에 우리 딸도 학원에 등록시키자. 강사는 엄마 아빠 플러스 외국에서 만나는 사람, 교실은 남국의 어느 하늘 아래, 수업은 이동식인 이른바 체험학원.

 

이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했다.

 

오십대 초반인 아빠.

사십대 초반인 엄마.

십대 초반인 딸.

이렇게 셋이서 배낭을 꾸렸다. 말레이 반도 이천오백 킬로미터를 여행하기 위해.

덧붙이는 글 | 지난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16일까지 우리 가족 세명이 태국 롭부리에서 시작하여 말레이 반도를 따라 싱가폴까지 여행했습니다.


태그:#PER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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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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