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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데려다 준 곳으로 가니 게스트하우스는 실제로 문을 닫았다. 그러나 나는 그곳이 내가 찾던 게스트하우스인지 아니면 기사가 일부러 문 닫은 게스트하우스를 골라 데려다 준 곳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작년의 경험이 학습효과를 발휘한 탓이다.

 

지도상으로 대충 위치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툭툭이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방향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봐라 문 닫지 않았느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이 기사가 데려다 주는 곳으로 갔다.

 

이거 작년과 똑같은 경우 아닌가. 내 마음은 조금 뒤틀렸다. 기사가 어느 게스트하우스로 데려다 주었으나, 내리지 않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게스트하우스 중 하나를 찍어(지트비라이 게스트하우스) 거기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적어도 기사가 권하는 곳만큼은 가고 싶지 않았다.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원하는 게스트하우스로 데려다 주었다. 도착한 후 나는 기사에게 협상한 금액보다 약간 더 주었다. 이러저리 끌고 다녔긴 했지만 오래 탄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리자 기사는 짐을 부려놓고 유적지 관광을 할 것 아닌지 물었다. 말하자면 자기 툭툭이를 대절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왠지 이 기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오늘은 쉬고 내일 구경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기사는 메모지를 꺼내더니 자기 휴대폰 번호를 적어 주면서 '씨 유 투모로우(See you tomorrow)'한다. 내가 대답이 없자 두세 번 반복한다. 그 표정이 간곡하다.

 

나는 어쩌면(Maybe)이라는 모호한 말로 답을 했다. 기사는 나의 표정이나 어투에서 거절의 기미를 눈치 챘을 것임에도 또 몇 번인가 '씨 유 투모로우'를 반복하며 툭툭의 시동을 걸었다. 그의 입에서 플리즈(please)가 안 나온 것이 다행이었다. 내가 돌아서자 기사는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갔다. 나는 기사가 카운터에 가서 커미션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는 그냥 갔다. 나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방에 들어가자 샤워부터 했다. 툭툭을 타면 더위에 찌든 매연이 콧속으로 사정없이 들어온다. 어떨 때는 머리가 띵하다. 나는 방에 들어가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하는 동안 기사의 눈빛이 떠올랐다. 기사는 내 나이 또래였을 것 같다. 아니 따가운 햇볕에 그을리고 가난에 찌들어 그렇지 실제 나이는 나보다 훨씬 어릴지도 모른다. 인상이 험하다고는 하나 그런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어찌 곱기만 하랴. 장동건이라도 매한가지가 될 터이다. 그도 분명 처자식이 있을 것이고, 그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를 사기꾼 취급을 하고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서부터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냐, 그는 분명 나를 이용하려는 속셈이 있었어.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문 닫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다음 나에게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갈 것이냐고 우리의 의사를 물었어야 되잖아. 그는 묻지도 않고 자기가 아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잖아. 그것만 보아도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이용하려 했던 거야.

 

방에 들어서자 서영이가 말했다.

 

"아빠 우리 내일 그 툭툭 탈거야?"

"글쎄, 왜?"

"그냥, 아까 그 아저씨 툭툭 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는 우락부락한 인상 때문에 엄마나 딸 모두 겁먹은 눈치였는데 사정을 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진 모양였다.

 

"그 기사가 아니더라도 툭툭이는 많아. 아빠는 꼭 그 기사에게만 타야 할 이유가 없는데."

"아까 아빠가 그 아저씨한테 너무 한 거 같애."

 

그렇게 말하며 획 돌아섰다.

 

내 딴에는 속기 싫어 최대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서영이한테는 아빠가 가난한 사람에게 도도하게 구는 거만함으로 비친 모양이다. 불현듯 몇 푼어치의 돈이 가져다주는 그 알량함으로 나도 모르게 권력을 행사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곳은 관광지이다. 그들 눈에는 우리가 잘 사는 나라에서 온 부자들이다. 적어도 해외여행을 다닐 만큼. 과거 우리가 일본인 관광객들을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았듯이 우리를 보는 그들의 눈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들에게 바가지를 썼다한들 얼마만큼의 바가지를 쓸 것이며 그들이 맘먹고 속인다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 아닌가.

 

이것도 여행의 일부고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바가지도 쓰고 속임수에 당하기도 하면서 여행의 이야기는 풍성해지는 것 아닌가. 과도한 금액이나 안전에 관계되지 않는 한 지나친 경계를 하지 말자. 그것은 이곳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열리면 많은 것이 들어오고, 닫으면 들어올 것도 못 들어오는 것은 만고의 진리 아니던가.  

 

"그래 그러자구나."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다음날 우리는 아유타야의 유적지가 걸어가도 될 만큼의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행 초기에 돈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이 커서 그런지 기사를 배려하기 위해 타지 않아도 될 툭툭을 탈 만큼의 여유가 우리에겐 없었다.

 

게스트하우스는 불친절했다. 에어컨이 너무 세 담요를 한 장 더 달라고 하자 30바트를 더 내라고 했고, 다른 데는 다 공짜인 로비의 커피도 10바트를 받았다. 시내 지도를 달라고 해도 없다고 그러고 무엇보다 카운터 여자가 성의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이 톡톡 쏘듯 말을 내뱉었다. 다음날 다른 배낭객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찾던 게스트하우스는 진짜로 문을 닫았단다.


태그:#PER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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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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