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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애 달래듯이 하며 지렁이가 몸을 편다 싶을 때 줄자를 대놓고 셔터를 눌렀다. 길이는 30센티미터가 조금 넘었다. 사진을 찍고는 제일 축축해 보이는 밭 구석에 지렁이를 모시고 가서 흙으로 잘 덮어주었다. 지렁이 한 마리가 1년에 평균 10킬로그램의 거름을 만들어낸다는데, 너는 덩칫값을 꼭 하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사람 중에는 먹기만 하고 빈둥빈둥 노는 사람도 있지만 지렁이는 먹는 것 자체가 일이니까 덩치만 크고 빈둥거리는 지렁이란 있을 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다만 남의 밭으로 넘어가지만 말라고 당부했다. 남의 밭에 가면 맹독성 농약 때문에 명대로 살지 못할 테니, 이 밭에서 좋은 짝 만나 자식 많이 낳고 자자손손 천수를 누리라고 축복을 해주었다. - <땅 살림 시골 살이>

'논두렁 밭두렁 태우기' 이제 그만!

<땅 살림 사골 살이> 겉그림
 <땅 살림 사골 살이> 겉그림
ⓒ 삶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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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살림 시골 살이>(삶이 보이는 창 펴냄)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전희식'의 최근 산문집이다. 저자는 <오마이뉴스>에 주로 생태적인 삶과 생명을 살리는 농사 이야기, 치매에 걸린 어머니 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저자는 1994년에 귀농, 현재는 장수군 덕유산 중턱의 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데, 책은 이런 그가 농사를 지으며 가족과 시골마을 사람들과 복닥복닥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와 더불어 생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닭과 개, 우렁이와 지렁이, 곡식들과 풀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는 삶의 지혜 등도 담고 있다.

특히 인상 깊게 읽은 것들은 봄날 못자리 만들기 모습을 통해 농사지을 사람들이라곤 노인들이 대부분인 우리 농촌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꼬부랑 일꾼 다 모였네'와 봄바람에 불이 날까, 조심스럽게 논두렁을 태우는 어른들의 조바심은 나 몰라라 불장난을 하는 통에 산불이 날 뻔 했던 어린 날 한때를 떠올리게 하며 읽게 한 '논두렁 태우기'란 글이다.

불을 놓아 해충의 알과 해충들을 죽이고자 해마다 봄이면 농촌의 마을마다 연례행사처럼 행해졌던 '논두렁(논둑) 태우기'는 '해충과 함께 익충까지 죽일 뿐더러(해충 11%,해충의 천적 89%가 죽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흙 속 원생동물들과 미생물들의 먹잇감까지 죽이며, 도열병 등을 예방하지 못하기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단다. 이런지라 요즘은 논두렁 태우기를 반대, 예전처럼 굳이 권장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밭두렁을 태우다 불이 산으로 번져 산불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논두렁 밭두렁 태우기의 효과 없음에 대한 소문이 좀 더 적극적으로 퍼져야 할 것 같다.

닭에게 궁전같은 집지어 바치고 항복한 사연

집에서 기르는 개가 새끼 낳는 과정을 생태 다큐멘터리 보여주듯 들려주는 '금이의 첫 출산', 옆집의 밭들을 작살내 다리가 분질러질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어머니의 비호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닭들과 한판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궁전 같은 집을 지어 닭에게 바치고 항복하는 과정을 그린 '살아남은 닭, 구원된 나'도 썩 재미있었다. 꿈에 이따금씩 나타날 만큼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추억이 많은 고향의 옛집 구석구석들을 떠올리며 읽을 정도로.

해마다 이즈음 우리 집 마당에는 암탉이 품어 태어난 병아리들이 종종거리곤 했는데, 자칫 높은 하늘 위에서 뱅뱅 돌며 먹잇감을 찾는 소리개나 작은 구멍만 있어도 감쪽같이 헤집고 들어가 토끼며 닭을 여지없이 작살내곤 하던 삵괭이에게 빼앗기기 십상인지라 어미 닭을 벗어나는 병아리를 쫒아 마당 구석구석들을 헤집고 다녀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리운 정경인데 그때는 병아리 쫒아다니는 것들이 왜 그리 지겹기만 하던지.

아마 나처럼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농촌의 일상과 풍경을 담은 이 책 <땅 살림 시골 살이>는 이미 까맣게 잊은 지 오래인 고향과 봄이면 담 밑에 소박하게 피어나던 '제비꽃'이며 '괭이밥' 등과 같은 풀꽃들을 떠올리게 하여 함박 그리움에 빠져 들게 하리라.

아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작목반이 있다고 해서 환경 농업인 연수를 대구로 다녀왔다. 작목반 회장님의 헌신성과 자신감 그리고 유기농 자재를 직접 다 만들어 쓰신다는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다. 나를 포함한 30여 명이 버스로 대구까지 오가는 동안 강의 시간과 대화 시간, 뒤풀이 시간에 하나하나 적어봤더니 일본에서 온 말이 많았고 한자어의 문어체도 많았다. 그보다 심각힌 것은 지배층의 이데올로기가 노골적으로 침투해 있는 말들이었다. 친환경 농사를 하겠다는 말은 죽음의 농사를 그만두고 살림의 농사, 생명의 농사를 하겠다는 것인데 우리말을 엉터리로 사용하는 것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다 싶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 <땅 살림 시골 살이> '생명 살림 농사와 우리말 쓰기'중에서

'생명 살림 농사와 우리말 쓰기'란 이 글은 참 유용하게 읽었다. 저자가 '예컨대 이런 것'이라며 고쳐 쓸 것을 권하는 말들은 관행농법, 농약, 수도작, 추비, 멀칭, 시비, 미강, 축분, 우분, 계분, 돈분, 웰빙. 저자는 이 말들의 부적절한 쓰임에 대해 지적하고 어떤 이유 때문에 어떤 말로 바꿔 쓰면 좋은지 낱낱이 설명한다.

농약: '농독'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독이지 절대 약이 아니다. 약은 좋은 것으로 이해되고 꼭 필요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더 이상 '독'을 '약'이라 할 수는 없다. 짐작하건대 농약이라는 말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미국 다국적 곡물기업들의 지원과 후원 아래 필리핀에 대규모 농업시험장을 운영하면서 통일벼를 만들고 화공약품을 개발하면서 '약'이라고 한 것 같다. 물론 '독약'이나 '사약'처럼 생명을 죽이는 것도 약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농촌의 파탄을 막고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농독이라고 불렀으면 한다.

시비: '거름주기'라고 하면 될 것을 꼭 그렇게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지 다들 시비, 시비한다. 더 품위가 있다고 여기는 걸까? 시비를 말하다 보니 '액비'라는 말도 생각난다. 그냥 '물비료'라는 말이 이해가 빠를 것이다. - <땅 살림 시골 살이>에서

외에도 오늘날처럼 농약과 비료로 짓는 농사는 관행농법이 아닌 '화학농법'이나 '화공농법'으로, 논은 물론 밭에도 벼를 심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논에만 벼를 심으니까 논벼를 말하던 수도작은 '벼농사'나 '논농사'로, 추비는 '웃거름', 멀칭 혹은 피복은 '덮개'나 '씌우개', 미강은 '쌀겨', 축분과 우분, 계분, 돈분은 그냥 '소똥', '닭똥', '돼지똥'으로, 웰빙은 '참살이'나 '온살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그 이유들을 이처럼 설명한다.

요즘은 그동안 많이 알려진 '하나로마트' 대신 '파머스마켓'과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농협 매장들도 많나보다. 저자는 자신이 사는 지역의 농협 매장이 그렇다며 영어를 섞어 써야 유식한 줄 아는 풍조를 못마땅해 한다. 아울러 그린 투어는 '녹색체험'이나 '풀빛체험', 팜 스테이는 '농가체험' 정도가 마땅하다, 민족의 식량, 미족의 생명을 만드는 농민들만이라도 먼저 우리 농사 말을 바로 써야 한다는 말로 이 글을 맺는데, 솔직히 이런 내용은 저자 나름의 깊은 철학이 바탕이 되고 있는 글들이라 참 좋은 여운으로 남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IMF 등의 영향으로 귀농 인구가 조금씩 늘면서 귀농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점차 익숙해질 무렵인 1994년에 생태적 삶의 필요성으로 귀농, 지금은 전북 장수군 덕유산 중턱에 살면서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활동을 비롯 관련 활동들을 두루 하고 있으며 '생명살이 농부학교'를 운영하고 있단다.(아래 박스 기사 참고)

이런 이력 때문인지 <땅 살림 시골 살이>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나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생명 살림 농사와 우리말 쓰기'와 같은 이야기들도 많고, 나처럼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도 공감하며 웃음 지으며 추억 속 고향을 떠올릴 만큼 정겹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4월 16일) 최근 귀농인구가 급속하게 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귀농을 한 사람들이 적응에 실패하지 않도록 사전 준비를 충분하게 해야 한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귀농인들에게 저자 스스로 귀농인으로 귀농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제는 어엿한 농부인 저자의 이 책이 그 어떤 책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함은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시민기자 '전희식'은 누구?
"시골 와서 농사짓고 산 지 16년째가 되다보니 농사짓고 살면 뭐가 좋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정말 뭐가 좋을까요? 시골 와서 농사짓지 않았으면 이런 책을 낼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듭니다. 책을 내는 것이 좋은 일이냐를 떠나서 틈틈이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제 경우는 시골에 와서 그게 가능해졌습니다. 매년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보따리 싸 들고 산에 들어가서 명상 수련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시골 와 살았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형편없는 제 돈벌이 능력을 고려할 때 이렇게 온전한 자연식품으로 밥상을 차린다는 것도 사골 와 농사짓고 살지 않았다면 엄두를 못 낼 일입니다. 성격도 많이 누그러워진 것 같고, 몸도 건강해졌고, 아이들도 잘 자랐고, 세끼 밥 안 거르고 잘 먹고, 여력이 닿는 대로 이웃을 도와가며 살고 있으니 큰 복이다 싶습니다. 무엇보다 병들고 늙으신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 있는 것도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기에 망정이지 도시에 줄곧 살았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땅 살림 시골 살이> 저자의 말 중에서 '전희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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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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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그 해 겨울, 어머니와 나는'과 치매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똥꽃>으로 많이 알려진 전희식 시민기자는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농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1958) 곡절 많은 학창 시절을 겪었고, 한때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었던 그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생태적 삶에 대한 자각 때문. 1994년 전북 완주로 귀농, 이후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모시기 좋다는 이유로 2006년에 전북 장수로 거처를 옮겼다.

2011년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로 일하면서 대안공동체인 '밝은마을'의 이사와 생명ㆍ환경ㆍ개벽 운동 단체인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로 활동. '보따리학교'와 '100일 학교' 일에 열심이며 '생명살이 농부학교'를 운영한다.

쓴 책으로는 귀농 생활을 담은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와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담은 <똥꽃>,<엄마하고 나하고>가 있다. - 책 속 프로필과 저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 참고

덧붙이는 글 | <땅 살림 시골 살이>|저자:전희식|삶이 보이는 창 |2011.1.24|값:12,000원



땅 살림 시골 살이 - '똥꽃' 농부의 생태 스케치

전희식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11)


태그:#귀농, #귀농운동본부, #논두렁 태우기, #전희식, #삶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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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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