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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방울 이름을 빼앗은 파인애플

초등학교 1,2학년쯤인 것 같습니다. 처음 배운 영어단어가 'apple', 그 다음에 'fine'이라는 말을 배울 때 쯤 들었던 생각.

'파인애플은 왜 fine apple일까? 좋은 사과인가?'

뭐 나중에 Pineapple이란 정확한 단어를 알고 나서도
'Pine + apple = 소나무 + 사과. 아! 소나무에서 파인애플이 열리는구나.'

파인애플 나무?
 파인애플 나무?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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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파인애플은 당연히 나무에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한 번도 '파인애플 나무'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도 나에게 파인애플이 나무에 자란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냥 열대지방의 상징인 코코넛 나무가 그렇듯, 열대과일인 파인애플도 당연히 높은 나무에서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인애플에 대한 착각은 어쩌면 이들이 지은 이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시장에서 파인애플을 깎는 소년의 기술이 일품입니다. 우선 파인애플을 칼로 대충 벗겨주고, 조각도 같이 생긴 특수칼로 무늬를 만들어 줍니다.
 시장에서 파인애플을 깎는 소년의 기술이 일품입니다. 우선 파인애플을 칼로 대충 벗겨주고, 조각도 같이 생긴 특수칼로 무늬를 만들어 줍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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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대 말 중앙아메리카의 어느 섬에서 파인애플을 발견한 스페인 사람들이 이것을 가져왔을 때 영국 사람들은 겉모습이 솔방울과 비슷하다고 해서 솔방울(pineapple)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파인애플의 달콤한 맛에 반한 사람들은 솔방울이 파인애플과 혼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히려 솔방울의 이름을 '파인콘(Pine cone)'으로 바꾸어 버렸답니다. 솔방울 닮은 과일이라, 중국 사람들이 파인애플을 황리(黃梨, 노란 배) 또는 펑리(鳳梨, 봉황 모양을 한 배)라고 부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발상입니다.

이후 세상 곳곳을 돌아다닐 때마다 파인애플을 가지고 다닌 콜럼버스 덕분에 파인애플은 거의 모든 열대지방에서 자라게 되었고, 특히 하와이는 파인애플의 대량재배, 즉 플랜테이션 덕분에 파인애플의 본고장처럼 여겨져 우리나라 사람들도 파인애플 재배를 위해 노동 이민을 가기도 했었습니다. 현재는 태국, 브라질, 인도네시아에 이어 필리핀의 생산량이 많은데 국내에서 판매되는 파인애플은 주로 필리핀에서 수입됩니다.

파나이 섬의 파시는 파인애플 생산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파나이 섬의 파시는 파인애플 생산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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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무관심이 키운 파인애플 나무

일로일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파시는 파인애플 생산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파인애플 농장으로 가려면 파시 시내에서 경사로가 계속되는 산길을 지나야 합니다. 파인애플은 고도가 높고 바람이 잘 통하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파인애플 농장이라는 말을 듣고도 파인애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광활한 땅에 멀리서 보면 흡사 알로에가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아... 짧은 줄기를 중심으로 뭉쳐 자란 잎들 사이로 파인애플 덩어리가 보입니다. 다시 보니 더 많은 개수가 보입니다. 또 다시 보니 모든 포기에 크고 작은 파인애플이 달려있습니다.

파인애플, 편견을 벗어버린 사람의 눈에만 보입니다.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넘겨버리는 것들, 그렇게 무관심 속에 내버려둔 무지의 땅에서 진실이 왜곡된 파인애플 나무들을 키우고 있었던 겁니다.

파인애플 농장입니다. 광활한 땅에 멀리서 보면 흡사 알로에가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파인애플 농장입니다. 광활한 땅에 멀리서 보면 흡사 알로에가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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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열매의 실체를 찾았습니다. 우리가 먹는 파인애플은 밭에서 올라오는 꽃대위에서 자란 열매였습니다.
 파인애플 열매의 실체를 찾았습니다. 우리가 먹는 파인애플은 밭에서 올라오는 꽃대위에서 자란 열매였습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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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은 소금을 찍어서 드셔 보세요

우리가 먹는 파인애플은 밭에서 올라오는 꽃대위에서 자란 열매였습니다. 허벅지정도 높이의 칼처럼 뾰족하고 긴 잎들이 사방으로 1미터까지 펼쳐져 있고,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는 잎은 청바지를 입어도 따가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강하고 두꺼운 잎을 보니 섬유소가 풍부해 필리핀의 전통복 '바롱'을 만들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인애플 밭이 끝나는 지점에 농장 주인의 집이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어느 농장에 들어가 '매출이 얼마? 몇 평이냐? 어떻게 수확하냐?'라고 물었을 때 친절하게 설명해줄 곳이 얼마나 있을까요? 나만 해도 '그런 걸 왜 묻지? 스파이 아냐?'라고 의심의 눈으로 보았을 겁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필리핀 사람들, 지나치게 솔직하고 친절합니다. 오히려 잘 깎은 파인애플 한 접시와 함께 소금을 내놓으며 대접합니다.

"소금 찍어 드세요."

수박에 소금을 찍어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파인애플에 소금이라, 무슨 조합인가 싶지만 속는 셈치고 한입. 마싸랍(맛있다)! 파인애플 특유의 신맛이 완전히 사라지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만 가득 느껴집니다. 소금은 파인애플의 단맛은 증가시키고 신맛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파인애플은 반드시 소금을 찍어 먹습니다. 물론 많이 먹으면 짭니다.

필리핀 시장에서 보통 한통에 20페소(500원)에 파인애플 한 통을 사먹습니다.
 필리핀 시장에서 보통 한통에 20페소(500원)에 파인애플 한 통을 사먹습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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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두꺼운 파인애플 잎은 필리핀 전통복 바롱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아실데몰로'에서 수녀님이 파인애플로 만든 바롱을 보여주십니다.
 강하고 두꺼운 파인애플 잎은 필리핀 전통복 바롱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아실데몰로'에서 수녀님이 파인애플로 만든 바롱을 보여주십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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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 모양의 머리 부분을 다시 심어 번식

파인애플도 다른 농작물처럼 심는 장소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1000㎡ 면적을 단위로 묘목을 심는다고 합니다. 1㎡당 20그루의 묘목을 심는다고 하니 제법 빼곡합니다. 보통 하나의 뿌리에 두세 개의 꽃대가 생기는데, 묘목을 심은 지 18개월이 지나면 첫 수확을 할 수 있고, 6개월이 지나면 또 다른 꽃대에 나온 열매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두 번의 수확이후에는 몸통을 먹고 남은 크라운(Crown, 왕관모양의 머리 부분, 묘목에 해당함)을 다시 심어야 합니다.

그동안 필리핀에서 파인애플을 사먹으면서 한 통에 20페소(500원)의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농장에 직접 오니 20개는 족히 넣은 한 자루에 100페소라고 합니다. 싱싱한 파인애플이 한 통에 150원, 우리나라와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파인애플은 다 익기 전 초록색이었을 때 수확하여 배송되는 도중 선상에서 익히게 되어 단맛보다는 신맛이 강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연에서 완벽하게 영글어서 진짜 파인애플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덤으로 파인애플 묘목도 두 그루 줍니다. 내년에는 집 앞 마당에서 빨간 파인애플 꽃이 피는 기대를 해봅니다.

파인애플 꽃. 파인애플은 표면에 있는 거북등껍질 같은 비늘 하나하나가 작은 과일인 셈입니다. 다시 말해 100여개의 작은 과일이 모여서 하나의 큰 열매를 이루는 셈입니다. 그러니 비늘 하나하나 속에는 파인애플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파인애플 꽃. 파인애플은 표면에 있는 거북등껍질 같은 비늘 하나하나가 작은 과일인 셈입니다. 다시 말해 100여개의 작은 과일이 모여서 하나의 큰 열매를 이루는 셈입니다. 그러니 비늘 하나하나 속에는 파인애플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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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이 자라면 중심에 붉은 꽃이 핍니다. 우리가 먹는 과육은 꽃의 씨방 부분이 자란 것을 먹는 것입니다.
 크라운이 자라면 중심에 붉은 꽃이 핍니다. 우리가 먹는 과육은 꽃의 씨방 부분이 자란 것을 먹는 것입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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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달라와(하나, 둘...)"

농장주인은 깎은 껍질 속에서 까만 씨들을 뽑아내 보여줍니다. 그동안 수없이 파인애플을 먹으면서 껍질의 일부라고 털어버렸던 것이 파인애플의 씨앗이었습니다. 파인애플 나무에 이어 파인애플 씨앗까지 연이은 충격입니다.

하지만 농장에서는 보다 질 좋은 과일을 빠르게 키우기 위해 씨앗보다는 크라운을 심는 꺾꽂이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 하와이에서 벌새의 반입을 금지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벌새는 파인애플의 꽃가루 전달의 가장 일반적인 매개체이기 때문에 벌새를 통해 파인애플이 씨를 맺으면 과일의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과육을 먹고 남은 크라운을 다시 심으면 파인애플 묘목이 됩니다.
 과육을 먹고 남은 크라운을 다시 심으면 파인애플 묘목이 됩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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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에 숨어 있는 황금비를 찾아라

이렇듯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파인애플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규칙에 의해 자랍니다. 파인애플의 꽃이 진 자리에는 6각형 모양의 비늘조각들이 모여 열매를 맺습니다. 비늘조각들은 우회전 배열과 좌회전 배열이 교차해서 붙어있는데, 차례로 세어보면 오른쪽 비스듬히 8열, 왼쪽 비스듬히 13열로 되어 있습니다.

파인애플에 이름을 빼앗겨 억울한 솔방울을 살펴보면 한쪽으로는 5개, 반대쪽으로 8개의 나선이, 데이지 꽃에는 21개와 34개의 나선이 있으며, 해바라기 꽃에는 55개와 89개의 씨앗이 나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 나온 모든 수를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5, 8, 13, 21, 34, 55, 89.

여기에 어떤 규칙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5+8=13, 8+13=21, 13+21=34... 이런 패턴이 계속 됩니다. 이탈리아의 수학자 피보나치는 '1, 1, 2, 3, 5, 8, 13, 21, 34, 55…'와 같이 선행하는 두 가지 숫자를 더해 바로 다음의 수가 나오는 규칙성을 찾아내었습니다. 뻗어나간 나선의 수는 파인애플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절대 피보나치 수열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더 큰 파인애플은 13개, 21개의 나선을 가지며, 더 큰 슈퍼 파인애플이라면 21개, 34개의 나선을 그리며 자랍니다. 먼저 나온 파인애플의 꽃잎을 비집고 나와 자라면서 최적의 성장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그들만의 생존 방식이 있었습니다.

8X13의 법칙을 벗어난 파인애플은 없습니다. 좀 더 큰 것은 13X21로 자랍니다.
 8X13의 법칙을 벗어난 파인애플은 없습니다. 좀 더 큰 것은 13X21로 자랍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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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든 택시강도가 된 사연

하루는 택시 안에서 파인애플을 먹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달달한 파인애플을 먹으니 마음까지 달달해졌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한 조각 건넸습니다.

"하나 드세요. 맛있어요."
"노우, 오, 노우"

아주 손사래를 치며 기겁을 합니다. 그러고는 룸미러로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음료수에 약 타서 돈을 뺏는 택시 강도가 있듯이 과일에 약 타서 기사에게 먹이는 승객 강도도 있나 봅니다.

파인애플 나무에 대한 여러 생각
1. 당근 파인애플 설 - 몸통은 땅속에 있고 잎만 밖으로 나와 있다.
파인애플은 뿌리?
 파인애플은 뿌리?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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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야자 파인애플 설 - 야자나무처럼 높은 나무 위에 주렁주렁 달려있다.

파인애플 나무
 파인애플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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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인애플 씨앗 설 - 파인애플을 통째로 묻으면 뿌리가 자란다.
또 다른 파인애플 나무
 또 다른 파인애플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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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파인애플 넝쿨줄기 설

파인애플 덩쿨?
 파인애플 덩쿨?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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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것 같습니다.

파인애플 나무
 파인애플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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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파인애플, #필리핀, #피보나치, #황금비, #파인애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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