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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지문
▲ 동대문 흥인지문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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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문을 나서면 성 밖이다. 하지만 한양이다. 성 밖 십리까지 한양으로 간주해 준다는 성저십리(城底十里)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는 있다. 성내 사람과 성밖 사람이라고 구분 짓는다. 말씨부터 조금 다르다. 굳이 하대까지는 아니지만 성내 사람은 내림 말을 쓰고 성밖 사람들은 '이랬습죠.' '저랬습죠.'라며 '습죠.'를 달고 산다. 험한 일을 해도 성안 사람은 깨끗해 보이고 깔끔한 일을 하는 사람도 성 밖에 산다면 다시 한 번 쳐다본다.

흥인문 밖에는 나무전(廛)이 있다. 봄 한철에는 묘목도 팔지만 주로 땔감을 파는 시장이다. 멀리 강원도에서 뗏목을 타고 뚝도에 도착한 통나무가 달구지에 실려 들어오기도 하지만 주로 인근 야산에서 구운 취사용 숯과 난방용 땔감이다.

불암산과 수락산에서 채취한 땔감을 지고 이른 새벽에 출발하면 점심 때쯤이면 도착할 수 있다. 배고픔이 밀려오지만 나무를 팔아야 사먹을 수 있다. 냉수 한 바가지로 허기를 달래며 손님을 기다린다. 성내에서 괜찮게 사는 집 마나님이 나와 흥정이 붙어 팔리면 입이 귀에 걸리고 안 팔리면 가가에 반값에 주고 돌아가야 한다.

흥인문 밖 땔감시장 뒤편으로 가죽 만지는 사람들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골목 어귀에는 담비나 여우털로 옷과 목도리를 만드는 집이 헛집(假家)를 형성하고 있고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공방(工房)이다. 공방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목이 있는 신발을 만드는 화공방(靴工房)이 있는가 하면, 목이 없는 신발만을 전문으로 만드는 혜공방(鞋房工)이 있다. 사람들이 이곳을 신쟁이 골목이라 부른다. 골목에 떠꺼머리 총각 두 명이 나타났다.

1907년까지만 해도 나무장사가 성내에 들어왔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소 등허리에 장작을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나무장사
▲ 나무장사 1907년까지만 해도 나무장사가 성내에 들어왔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소 등허리에 장작을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나무장사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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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목에만 들어오면 왠지 으스스해."
"왜?"
"죽임을 당하고 가죽을 벗긴 짐승들 귀신이 나올까봐."
"사람이나 짐생이나 죽으면 그만인데 무슨 귀신? 너 죽으면 귀신 될래?"
"귀신은 아무나 되나? 억울하게 죽어야 귀신 되지."
"장가도 못가고 죽으면 총각 귀신 되잖아."
"싫다. 내가 죽으면 처녀귀신 하나 더 생길까봐 난 장가들련다."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중얼거리던 두 사람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뭘 만들고 있을까?"
"어느 대갓집 낭자 신발 만들고 있겠지."
"운혜?"
"야, 계가 가죽 만진 지 얼만데 여적 온혜와 운혜만 만들겠느냐?"
"그럼 당혜?"
"그럴른지도 모르지."

짝퉁의 비조, 동대문 밖 숭신방에 있었다

온혜(溫鞋)와 운혜(雲鞋)는 여자들의 비단신을 이르는 말이다. 당혜(唐鞋)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고급 신발이다. 그 당혜를 왕실과 권력실세 아녀자들이 신자 사대부집 아녀자들이 따라하기에 나섰다. 급기야 수요가 공급을 앞질렀다. 중국에서 들여오려면 3개월 이상 걸린다. 모방제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짝퉁이다. 그 당혜가 이 골목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떠꺼머리 두 사람이 왼쪽으로 꺾은 다음  낮은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경심 때 온다던 녀석들이 해가 뉘엿뉘엿할 때 오면 어쩌냐?"

무릎에 넓은 가죽을 바치고 비단신을 만들고 있던 막둥이가 벌떡 일어나며 반갑게 맞이했다. 점심을 경심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경기중부지방 출신들인 것 같다. 점심은 궁중이나 대갓집에서 먹는 음식이지 서민들은 언감생심 꿈도 꿔보지 못했다. 그냥 먹었다 생각하고 마음에 점을 찍고 넘어가는 것이 점심(點心)이다. 그 점심을 한강 이남 경기 사람들은 경심이라 불렀다.

"저 녀석이 꾸물대는 통에 늦었다."

을석이가 계수 핑계를 댔다.

"지금 만들고 있는 신발은 어느 댁 낭자 꺼냐?"
"김 참판댁."
"야, 넌 신발 만들면서 그 낭자 발을 만져보는 기분이겠다."

을석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게슴츠레한 눈을 희번득였다.

"아, 임마, 쉰소리 그만 해. 발은 발이고 신발은 신발이지 무슨 신 만지면서 발 생각이 나겠냐?"

계수가 을석이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건 그렇고 이 골목에만 들어오면 갖바치 소굴이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소리야? 신발쟁이면 신발쟁이지."
"이 신발 보면 모르겠느냐? 껍데기는 비단이지만 안은 가죽이지 않느냐? 신발 안쪽에다 가죽을 받친다고 해서 갖바치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막둥이가 짓던 신발을 들어보였다.

"신발짓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너희 주인이 장안에서 짜하게 알아주는 혜장(鞋匠)이었는데 기술 다 전수받았느냐?"
"니들 똥개 훈련이라는 말 알지? 풍산개는 '똥 먹지 말라'고 하면 주인이 먹어라 할 때까지 안 먹는데, 똥개는 때리면서 가르쳐도 금방 잊어먹고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거. 내가 시행착오를 얼마나 겪은 줄 아느냐? 완전 똥개 훈련이었다. 목이 긴 목화(木靴)나 태사혜(太史鞋)도 어렵지만 사실 여자들 작은 신발을 만드는 게 더 어렵거든. 헌데 쥔장이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고 돌아가셔 내가 이 개고생이다."

막둥이가 멧돼지 털을 들어 올리며 열을 올렸다.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는 하소연이다.

"그 멧돼지 털은 무엇에 쓰는 것이냐?"
"비단신은 너무나 부드럽고 섬세해서 바늘을 사용하지 못해 멧돼지털을 사용하지."

표지석
▲ 검단산 표지석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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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고향은 강 건너 검단산 아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나무꾼 노릇을 하던 그들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중간상인에 넘겼다. 흥인문 밖 나무전에서 팔리는 시세의 3분지 1이었다.

이 셈법에 심통이 난 이들은 직접 나무를 지고 암사동까지 걸어와 광진 나루를 건너 흥인문에서 팔았다. 허나, 팔리면 두둑한 돈을 손에 쥐었지만 땅거미가 지도록 팔리지 않으면 나무전에 넘겨야 했다. 그럴 때 그들의 손에 남는 것은 검단산에서 받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그들은 품질이라 생각했다. 잘 다듬어진 땔감을 가지고 오면 좋은 값에 빨리 팔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그 후, 좋은 나무를 때깔 좋게 꾸려가지고 온 이들의 나무는 나무시장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들의 나무는 점점 인기 있어 정승판서댁에서 선호하는 땔감이 되었다. 나무가 팔리면 대갓집에 배달해주던 이들 중 을석이는 황보인의 가동(家僮)으로 들어가고 계수는 권람의 하인으로 들어갔다. 붙임성이 없는 막둥이만 홀로 처져 신발 만드는 장인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다 신발 짓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너의 주인은 영상이라는데 영상이면 높은 사람이냐?"

계수가 을석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인지하만인지상이라고 하더라."
"그게 무슨 말인데?"

계수가 을석이를 노려보았다.

"이런 무식한 놈들 같으니라구. 한 사람에게만 밑이고 다 위라는 뜻 아니냐?"

막둥이가 신발을 뒤집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높은 사람이라 쳐주고 너의 주인은 요즘 뭐하냐?"

계수가 을석이 가까이 다가 앉았다.

"우리 주인이 김 정승을 비롯한 여러 재상과 모여서 의논하는 것을 엿들었는데 '임금을 폐하고 안평대군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한다'고 하더라. 임금은 나랏님인데 폐하고 세울 수 있는 것이냐?"

을석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껌벅거렸다.

임금은 나랏님인데 어떻게 쫓아내냐

"임금도 잘못하면 쫓아내야지."

계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임금님은 나랏님이고 왕비마마는 국몬데 어떻게 쫓아낼 수 있냐? 그럼 아버지가 잘못해도 쫓아내냐?"

막둥이가 사뭇 진지해졌다.

"안평대군이 우리 주인에게 '어떤 방법으로 군사를 동원할 수 있겠는가?'하고 물으니 우리 주인이 말하기를 '첫째는 임금이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할 날이 가까워오니까 수리하는 일이 늦었다고 아뢰어 환궁을 지체시키고 둘째는 이명민으로 하여금 군사 수천을 대기하라 이르고 셋째는 황해도와 충청도 군사를 배로 싣고 와서 마포나루에 대면 대군께서 새벽을 타서 거느리고 들어와 이명민과 합세하면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더라."
"정말?"

계수와 막둥이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군기감에 있는 병장기는 윤처공과 조번이 안평대군 집으로 운반하기로 하더라."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다.

"거사는 언제 한데?"

계수와 막둥이가 얼굴을 계수 턱밑으로 바짝 밀어 넣었다.

"열이틀이 좋을까? 스무이틀이 좋을까? 궁리하더니만 열이틀로 정하던데."
"정말?"

계수와 막둥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무지렁이라 하지만 군사를 동원하여 창덕궁으로 쳐들어간다니 오금이 저렸다.

겸재 정선이 그린 동대문 주변. 동문조도 부분. 앞쪽이 성내고 뒤쪽이 성밖이다.
▲ 동대문 겸재 정선이 그린 동대문 주변. 동문조도 부분. 앞쪽이 성내고 뒤쪽이 성밖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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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의 말을 전해들은 권람이 수양을 찾아갔다.

"간당(姦黨)의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지체할 수 없습니다."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라."
"일이 급박합니다."
"일에는 완급이 있느니라."
"어찌하여 손을 묶어놓고 종사를 저버리려 하십니까? 나리께서 빨리 결정하십시오."
"큰일은 가볍게 행할 수 없으니 여러 사람과 숙의해야 할 것이다. 한명회를 불러오라."

한명회의 꾀주머니가 절실히 필요했다. 권람이 한명회, 홍달손, 양정, 유수, 유하와 함께 들어왔다.

"제군들의 생각을 말하라."

엄중한 시기에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후, 좌우를 휘둘러보던 한명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낱 종에 불과한 천한 것들에게 천기누설에 준한 정보를 흘리는 것으로 보아 저들의 덫일 수도 있습니다. 나리께서 전하를 뵙고 역도들을 주살(誅殺)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밀계(密啓)하면 환관 김연과 한숭이 즉각 저들에게 고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목숨이 티끌처럼 날아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장래가 진실로 염려스럽습니다. 심사숙고하소서."

한명회가 제동을 걸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는 것이다. 나라의 장래가 염려스럽다니 더욱 미더웠다.

"역시 한방이다."

수양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날렸다.

"황송하옵니다."

한명회가 구부정한 허리를 더 움츠렸다.

"천하의 일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방도가 있을 것이다. 상경(常經)과 권도(權道)를 추구하려면 중(中)을 얻는 것이 곧 상경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봐라. 곧 입궐할 것이니 차비를 갖춰라."

정적을 깨고 수양의 목소리가 명례궁을 울렸다.


태그:#수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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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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